기억의 기억들
마리야 스테파노바 지음, 박은정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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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본질과 기록의 의미에 대한 경이롭고도 사적인 탐구

현대 러시아 문학계의 혜성이 보내온 첨단의 글쓰기 부커상, 전미도서상, 페미나상, 메디치상, 더블린문학상 외국어문학 후보작 등 많은 문학상에 이름을 올린 작품을 만날 때는 사실 부담으로 다가온다. 왠지 그런 작품들은 다소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은 오롯이 나의 문제이리라.

소설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논픽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설과 논픽션 사이에서 방황하면서도 화자가 킬카 고모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고모의 일기장을 통해 자신이 알지 못했던 기억을 끄집어내고 있다. 정확한 시간적인 순서에 의한 것이 아니지만 고모의 단편적인 기억을 통해 기록에 의한 기억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는 화자를 따라 누군가의 기억을 보게 된다. 사소한 기록으로 가득한 이 일기장은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품어왔던 꿈, 가족사를 쓰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만든다. 단순히 고모와 자신 주변의 이야기가 아닌,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살아온, 5대에 걸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킬카 고모가 돌아가신 이후 고모가 남긴 크고 작음 물건들 속에서 흩어져있는 추억을 하나하나 떠올리고 정리하고, 그 속에서 글을 적고 있는 화자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순간을 남기고 싶어 사진을 찍거나 글로 남긴다. 그리고 그 기록들은 그대로 남아 그때의 감정과 상황을 누군가에게 전해주게 된다. 내가 사라져 버린 세상에 남겨진, 영원히 죽지 않는 기록들. 그 기록에 생명력은 남아 있는 것일까?

기억은 전해지고 역사는 기록된다. 기억은 정의를 역사는 정확성을 중시한다. 기억은 도덕을 말하고 역사는 집계하고 오류를 정정한다. 기억은 개인적이고 역사는 객관성을 꿈꾼다. 기억은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 기초한다. 즉각적인 개입이 필요한 절박한 고통에 대한 연민과 공감. 동시에 기억의 영역은 투사와 환상과 왜곡으로 가득 차 있다. 과거로 얼굴을 향한 현재의 환영들로. p.120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지고, 바뀌어버리고, 증발해버리는 기억들을 찾아가면서 그들의 과거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런 과거와 마주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개인의 기억속에 잠재해있고, 영향을 주고 있는 역사의 한 부분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기억의 기억들 맨 마지막에 수록되어 있는 가계도를 통해서 화자가 탐험해 나가고 알고자했던 그들의 기억이 어떤 의미였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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