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장서에 담긴 비밀을 담은 동화 우리의 역사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그동안 모르고 지나쳐온 역사의 한 면을 만나기도 한다. 소설과 동화와 같은 이야기에서 만난 순간은 더욱 반갑기도 하면서도 몰랐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기도 하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아픈 기억인 일본의 지배를 받던 그 시기에 조상들은 끊임없이 독립을 위해서 노력해왔고 일본 세력의 괴롭힘에 당해왔다. 종이 신발 또한 그런 아픔의 역사를 담고 있으면서도, 나라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종황제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 선비들과 함께 경성에 당도하게 된 김창옥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의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게 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중에는 유림의 선비가 없다는 사실이 김창옥에게는 부끄러웠다. 김창옥뿐만 아니라 독립선언서를 본 다른 선비들 또한 그랬다. 부끄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파리 강화회의에는 선비들의 이름으로 독립청원서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일본의 감시는 삼엄했고, 독립청원서를 작성하기 위한 그들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일본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짜 제사상까지 차려두고 향을 피우고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일본의 순사는 작성하고 있는 중에도 들이닥쳤다. 어렵게 작성한 독립 청원서를 파리로 보내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내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장터를 돌던 김창옥은 방법을 생각해 내고, 독립 청원서는 '종이 신발'로 모습을 바꾸게 된다. 갑작스러운 순사들로 이웃집으로 도망을 가던 김창옥의 손에는 종이 신발이 들려있었다. 김창옥은 종이 신발을 들고 맨발로 강을 건널 때 발이 다치면서도 계속 길을 걸었다. 기차에서 일본군의 검문 속에서도 독립청원서를 지켜낸 김창옥. 선비들의 의지와 마음이 담긴 독립청원서는 영어, 중국어, 불어로 번역되어 파리로 전해졌다. 일본 순사들의 눈을 피해 서명을 하고, 그것을 숨기고 가기 위해 종이 신발로 만들었던 지혜. 그 시절의 시련을 우리가 겪어보지는 못했지만 독립에 대한 염원은 그대로 전해져왔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