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 없음 - 삶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해 쓴 것들
아비 모건 지음, 이유림 옮김 / 현암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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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약속된 삶은 없다. p.352

나의 인생에 누군가 써놓은 각본이 있다면 어떨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으로 마주하는 결과들의 연속이다. 살아가면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은 적이 없듯, 삶 자체가 완벽할 수는 없다. 누군가 써놓은 각본인 것처럼 인생에 찾아온 위기와 그 뒤 위기가 해결되고 결말을 맞으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해피엔딩은 이야기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는 여러 번의 위기를 겪어 마치 자신의 삶이 롤러코스터와 같다고도 할 테고, 어떤 누군가는 위기를 겪을새도 없이 평온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알았던 걸까? 어떤 미래가 이미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p. 129 ~ p. 130

《각본 없음》은 2013년 제65회 에미상에서 각본상까지 받을 정도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아비 모건이 자신의 남편 제이콥이 쓰러지고, 그가 깨어나지 못하는 시간들, 그리고 깨어났지만 그전의 제이콥이 아닌 다른 제이콥이 된 후에도 놓지 않고 곁을 지키며 지내온 시간의 기록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테지만 그녀가 쓴 작품 속 주인공들처럼 단단하고 주체적이었던 아비 모건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는 것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삶의 파트너로 살아가던 아비 모건과 제이콥. 제이콥이 쓰러져 응급상황에 병원을 찾아가게 되고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거라는 아비 모건의 기대와는 다르게 제이콥은 오랜 시간 병원에 머물러야 했고, 그를 지키는 그녀의 삶이 시작되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삶의 길로 접어들어버린 그녀와 가족들의 삶. 어떤 이야기든 끝을 알아야 하는 성격의 아비 모건에게 알 수 없는 삶의 시작은 불안으로 가득 찼을 것이다.

《각본 없음》은 단순히 그녀가 그의 곁을 지키며 지나온 시간들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쓰러지기 전의 시간들. 그리고 그와 그녀가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시간 속에서의 작은 갈등들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그가 깨어났을 때, 아비 모건을 알아보지 못하던 제이콥의 모습에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모든 이들에게 옅은 미소를 보이면서도 자신에게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하는 남편을 보는 마음은 슬픔 그 자체였으리라. 그러면서도 어떤 원망의 말도 할 수 없었으리라.

깨어났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어야 하는 아비 모건의 마음. 겉모습은 제이콥이지만 자신이 알고 지내던 제이콥의 모습이 아닌 그를 바라보면서 그를 지키는 아비 모건. 그리고 그를 지키던 와중에 유방암 진단을 받은 그녀. 책을 읽으면서 불행은 불행을 데리고 오는 것일까 하는 착각마저 들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책 속에서는 담담히 항암치료를 받고 수술을 받는 모습이 담겨 있어 그녀가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아비 모건에게 닥친 슬픔의 기록들을 읽으면서 슬픔을 이토록 담담하게,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건네듯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 속에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누군가 내게 나의 인생을 정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어떤 삶을 그리게 될지 생각해 보게 되는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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