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예치하는 여생은행에서 펼쳐지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누군가를 위해서 나의 생명을 양보할 수 있을까? 부모가 되어보니 자식이 아픈 상황에 대신 아픈 게 낫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 생각은 나를 보는 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식의 목숨이 다급한 상황이 된다면, 나의 생명을 예치하고 싶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울 것이다. 작가님의 특이한 이력을 몰랐다면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셨을까 더 궁금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소위 N잡러라고 하시는 이누준 작가님은'노인돌봄 지원 전문원'이라는 직업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생과 사의 경계를 마주하셨기에 이번 작품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몇 년 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실습을 나갔던 요양원에서의 시간은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나이 들어감을 느끼는 동시에 나의 젊음도 언젠가는 사라질 것이며, 나에게도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것을 느꼈다. 그곳에서 만나본 어르신의 죽음은 짧은 만남에서의 시간이었지만 충격이었다. 그런 죽음을 마주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을 알게 되면서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잠시 자격증을 접어두고 책을 좋아하는 독자로 머물러있다.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된 하나는 일하던 곳을 그만두게 된다. 잠시 쉴 거라는 말을 했지만, 이직을 알아보던 중에 우연히 들르게 된 여생은행은 전설로 느껴지던 뜬 소문이 아니었다. 절실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 이곳은, 자신의 생명을 주고 싶은 누군가를 상담하면서 이루어진다. 하나가 처음 그곳에서의 일을 목격한 것은 손주에게 여생을 선물하고 싶은 노부부였다. 그곳에 방문한다고 해서 모두 여생을 예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생을 예치하게 되면, 여생을 예치하는 사람에게 병이 있는 경우 병까지 이관된다. 여생을 계약하러 온 사람이 계약을 하지 않는다면, 여생은행에 방문한 기록은 지워진다. 누군가에게 여생을 주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게 되면 그것은 무효가 된다. 여생을 이관하고 나면 그 사람과 마지막 한 번만 만나야 한다. 여생을 받지 않겠다고 계약한 사람이 있다면 하루의 시간을 주고 거절한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다. 그런 순간에 자신의 생명을 주려는 의도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나는 상담을 하면서 자신의 상식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경우를 보게 되었다. 서로 한번 밖에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면서도 서로에게 여생을 선물하려고 방문한 친구들, 자신의 엄마를 살리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여생을 맡기려고 하지만 미성년자인 고 하루는 혼자서 결정할 권리가 없었다. 보호자의 허락이 떨어져야 하는 상황에서 고 하루가 그동안 몰랐던 진실과 마주했을 때의 슬픔과 오해가 풀리는 순간은 감동으로 와닿았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위해 여생 크라우드 펀딩까지. 다양한 에피소드로 이끌어나가는 속에서 나의 삶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 또한 위로받는 힐링 소설이었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