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할 말 많은 아이들의 시끌벅적 화합 대소동 다르다는 것이 다름으로 끝나지 않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그들은 힘겨움을 느낀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지만 자신이 가진 조건이 달랐을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장애를 안은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들이 아이를 대하는 모습에 두 번 상처받곤 한다. 너무나 순수해서 의도치 않은 일이 생겨났을 때 결국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 결국 부모도 아이도 함께 상처받게 되는 것이다. 날 부르지 마!에서는 두 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날 부르지 마!>에서는 발달장애를 앓고 있는 민호와 그의 친구 병성의 이야기다. 민호는 발달장애로 남들보다 느리고 구사하는 단어들도 극히 제한적이다. 친구인 병성의 이름을 부를 때도 '병신'이라고 할 정도니 말이다. 병성은 그런 민호의 부름이 언제나 속상하기만 하다. 자신의 이름을 바꾸고 싶어질 정도니 말이다. 그런 병성이 민호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일이 생겨난다. 민호의 의도와는 다르게 화장실 앞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 성폭력을 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담임 선생님의 회의까지 소집된 것이다. 민호가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부르지 않아 기분 상하게 하는 것은 뒤로하고 병성은 5학년 학급을 찾아가 자신의 기억 속 민호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오해를 풀 수 있도록 해준다. 아이들은 병성이의 이야기를 듣고 민호에 대해 이해하게 되고 그런 민호에 대한 오해를 풀게 된다. 둘의 이야기를 보면서 민호는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소중히 아껴주고 부탁을 한 것도 아닌데도 스스로 나서서 오해를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얼마나 힘이 될지 느껴졌다. 민호는 그런 고마운 마음을 급식에 받은 등갈비로 전한다. 민호가 고기를 주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표현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민호네 반에서는 아이에 대한 편견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할 말 있는 아이들>에서는 뇌병변 장애를 가진 언니 민주의 동생 민정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언니와 함께 가고 언니의 모습에 놀림받는 것이 싫어 혼자 학교를 가겠다면서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선다. 민정의 친구 수정은 공부 잘하고 언제나 칭찬받는 언니 수연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떼고 부르면서 수연의 머리띠를 망가뜨렸지만 혼이 난 것이 속상하다. 그런 두 아이의 반에 라희가 전학을 오게 되고 말수 없는 라희의 모습이 조금은 재수 없다고 느끼지만 민주가 다급한 상황에서 옷을 벗어 도와준 라희의 모습에 호감이 생긴다. 그렇게 민정과 수연, 라희는 어느새 삼총사가 되어 현장학습 가서도 신나게 놀다가 돌아온다. 헤어지기 아쉬운 마음에 갔던 놀이터에서 갑자기 쓰러지게 된 라희의 모습에 당황하고 있는데 병성이 나타나 위급한 상황에 도움을 주고 라희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라희는 자신의 모습을 본 민정과 수연이 자신을 피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러워하지만 민정과 수연은 라희에게 마음으로 다가간다. 날 부르지 마!를 읽으면서 오해와 편견을 대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어쩌면 오해와 편견은 어른들의 말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른들의 선입견이 만들어낸 오해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반영되어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들도, 장애를 가진 어른들도 따스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