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죄의 경계
야쿠마루 가쿠 지음, 남소현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11월
평점 :
번화가에서 일어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한 명의 생존자
버려버린 과거 속에 묻어놓은 약속 "제 딸을 살해한 놈들을 15년 후에 죽여주세요!"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던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의 저자 야쿠마루 가쿠의 신작인 《죄의 경계》를 만났다. 이 작품에서는 묻지마 범죄의 배경에 자리 잡고 있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과 범죄 피해자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책을 읽는 동안 피해자가 겪고 있는 상황 속에서 느껴지던 억울함이 그대로 전해져 안타까웠던 반면에, 뻔뻔스러운 살인자의 모습에서는 불쾌감과 분노를 가져다주었다.
불행은 예기치 않은 순간 찾아온다.
자신의 생일날 만나기로 약속한 남자친구 코헤이가 갑작스레 약속을 취소하게 되고, 기분이 좋지 않던 아키리. 어긋나버린 약속에 기분이 상했지만 생일 기분이라도 내기 위해 케이크를 사러 가는 길이었던 번화가 시부야역 교차로. 갑작스레 달려와 도끼를 휘두르는 남자로 인해 아키라는 죽음의 순간과 마주한다.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죽음을 맞게 된 순간 "약속은 지켰다고... 전해줘."라는 유언과도 같은 말을 하고 죽은 아키히로. 아키라는 아키히로 덕분에 목숨을 건졌지만 일주일 넘게 혼수상태였고, 몸에는 상처가 가득했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으로 아키라는 삶에 대한 희망도 없어져 버렸다.
남자친구인 코헤이에게는 이별을 고하게 되고, 본가로 내려가게 되지만 아키라는 좀처럼 예전 같은 활기를 찾기는 힘들다. 자신의 얼굴에 난 상처를 숨기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잠이 들면 찾아오는 살인자의 모습에 불안감만 커져간다.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겨우 잠을 자고, 가족들에게 예민하게 구는 아키라.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망치게 될까 봐 본가에서 떠나 홀로 살기 시작하는 아키라. 그녀의 삶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상처가 아문다고 하더라도 기억 속의 상처는 누가 치료해 줄 수 있을까? 불행과 함께 걸어가는 삶을 살아야 하는 아키라.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핑계 삼아 교도소에 가고자 했다는 뻔뻔스러운 말을 내뱉는 케이치. 케이치의 과거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쇼고는 케이치에 대한 과거를 조사하고 그의 현재의 모습을 담은 논픽션 도서를 출간하려고 한다. 피해자의 삶은 아랑곳없이 그녀의 집을 찾아가 원고를 건네고, 그녀에게 케이치에 대한 생각을 묻는 모습에서 마치 내가 아키라가 된 듯 분노와 화가 솟아남을 느꼈다. 마치 살인자인 케이치가 엄마의 제대로 된 양육과 보살핌만 있었다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을 거라는 뻔뻔함, 그 뻔뻔함을 옹호라도 하는 듯한 쇼고의 모습이 불편했다.
아키라는 자신을 살려주고 죽은 아키히라가 남긴 마지막 말을 전해야 할 사람을 찾기 위해 코헤이와 아키히라의 과거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아키히라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전달하게 되는 아키라는 삶에 희망을 얻게 되고 재판에까지 출석하게 된다. 힘든 상황에서 제대로 된 노력도 하지 않고 원망을 하다 죄의 경계를 넘어버린 인생. 그 의미 없는 인생에 대한 반성, 케이치는 과연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될까? 케이치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해서 누구나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 강렬함을 가져다준 《죄의 경계》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주관적으로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