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잠든 지적 사고를 깨워라!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 우리는 평생 배우면서 살아간다. 처음살아보는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배우며 살아가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삶에 대해 배우며 살아간다. 그리고 아이들과 살아가면서 부딪히면서 배워간다. 단순히 배우는 삶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 뿐만아니라 지식에 대한 목마름은 떠나질 않는다. 그래서일까?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라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끌렸다. 지적 욕망에 대한 동질감을 느낀 순간이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에서는 단순한 지식에 대한 갈망을 자극하는 책이 아니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필요한 지식에 대해서 언급한다.크게 세파트로 나누어져 배움의 의미, 삶의 지혜, 관계의 법칙에 대해 우리에게 지적 사고에 대한 자극을 주고 있다. 우리의 삶은 배움으로 시작해서 배움으로 끝난다. 변화하는 세계에서 바뀌어가는 세상에 대해서 배워야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배워나간다.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은 단순히 물질적 육체적 쾌락속에서 그치지 않는다.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고, 그 배움에 있어 이성적인 배움도 포함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를 쓰신 양원근 작가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탐구하고 배우는데 있어서 가장 훌륭한 지름길은 독서라고 언급하셨다. 독서를 하면서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고,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길잡이로 알려주신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소설을 좋아하는 편독가인 나에게는 조금 더 자극이 되는 이야기였다. 성인들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 중요한 것을 알지만 그것을 읽고 실천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찾아서 읽어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식만을 추구하고 살아갈 수없다. 지식적인 것만 믿고 있다가는 생활속의 지혜를 놓치기 싶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말처럼 말이다. 가령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해서 생활 속의 융통성도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 삶의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꽃이 언제 필지는 신조차 모른다는 저자의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안에 다양한 가능성의 씨앗을 품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씨앗이 언제 싹을 틔워 열매를 맺을지는 어느누구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무작정 기다리고만 있어야 할까? 인생은 기다림이기에 그 기다림에서 행복을 향해, 좋은 생각을 가지면서 나아가야할 것이다. 삶이 고되고 힘겨울지라도 나아가다보면 행복과 마주하게 될거라는 생각으로 나아가야 한다. 어차피 나아가도 고되다는 생각으로 포기해버린다면 내안에 잠들어 있는 가능성은 발견하지 못하게 된다. 포기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지혜 또한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기에 살아가면서 여러집단에 소속된다. 그 소속된 집단에서 모두 만족할 수는 없다. 관계를 맺다보면 나와 맞지 않아서 힘든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 사람을 다 이해하고자 설득하다 보면 지치게 되고 관계에 대해 회의적이게 된다. 모든 관계에서 원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은 의도로 한 이야기도 상대방이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것이기 때문이다.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서로간의 배려와 이해에서 비롯되어진다. 결국 관계 또한 삶의 지혜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이의 소통에서 지혜를 발휘하고, 그 지혜를 바탕으로 관계를 맺어나가다 보면 관계를 맺는것 또한 수월해지지 않을까? 미처 몰랐던 내안에 잠든 지적사고, 그 사고를 자극하면서 배움의 의미와 삶의 지혜, 관계의 법칙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던 나는 죽을 때까지 지적이고 싶다였다. 삶에 있어서의 지적임을 통해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