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를 쓰신 래연 작가님께서 프랑스 문학에 심취하게 된 이유는 랭보 때문이라고 한다. 랭보가 누구일까? 프랑스 시인인 랭보, 그로 인해 프랑스 문학을 전공을 결심하신 것을 보면 그에 대한 그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었던 거 같다. 인형극 에세이라는 생소한 장르를 접하게 된 것도 그 열정 덕분이기에 랭보 시인님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지는 듯하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를 읽으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인형극을 접하게 되어 색달랐다. 인형극이라고 하면 단순히 인형에 줄을 매달에 움직이면서 보여주거나, 그림자 인형으로 보여주는 인형극이 전부였는데 인형극을 보기 위해 10년간 6번이나 이 축제에 다녀오셨다고 하니 어떤 누구보다도 인형극에 대한 즐거움이 남다르셨나보다.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를 읽는 내내 가보지 못한 곳을 엿볼 수 있다는 설레임과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님의 어릴적 이야기가 번갈아 언급되어지고 있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의이야기를 읽다가 어릴적 나의 이야기를 보는 듯하여 순간 멈칫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어릴적 너무나도 엄격했던 아빠가 화가 날때는 두려움에 떨었고,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밥상을 엎는 바람에 뜨거운 국이 왼쪽 발등 위로 쏟아져 흉터가 되어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다. 그 흉터를 볼때면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런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다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가님의 이야기에 나도 모를 용기로 고백해 본 것에 불과한 이야기이지만, 벗어나고 싶었던 청소년기의 기억이 떠올랐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에 임시 가교가 세워진다. 유랑극단들이 잠시 닻을 내린 막사들에는 우리가 떨어뜨리고 잃어버린 꿈들이 즐비하다. 이제 여기서 영원을 엿보다 다시금 차가운 현실 세상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리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우린 늙음도 죽음도 언젠가 멈추고 모두 고향에 가게 될 테니까, 어린이가 되어 손을 맞잡게 될 것이므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시간은 우리에게서 결국은 아무것도 빼앗을 수 없다. p.21 래연 작가님이 아니셨다면 인형극 축제을 알지 못한채로 살아갔을것이다. 작가님을 따라 여행하며 인형극을 보는 즐거움은 책을 보는 내내 어릴적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어릴적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던 피노키오가 바람구두를 신었다는 작가님의 발상또한 너무 신선했다. 바람구두를 신고 어디까지 날아갈 수 있었을까?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문득해본다. 세계 인형극 축제에서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처럼 나도 훨훨날아가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인형극을 보는 동안의 모습과 여행지에서의 이야기들, 낯선 곳에서의 모습은 여행을 떠날 수 없는 독자에게는 대리만족이었다. 게다가 프라스 아르덴 신문에 '연거푸 방문한 손님'이라는 신문'을 한 식당의 마담으로부터 받았을때는 얼마나 기쁘고 설레였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마치 랭보에 대한 사랑의 얼마나 정열적인지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그런 열정이 내게는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잠시 해본다. 나는 이루지 못한 열정을 엿보면서, 바람구두를 신은 피노키오 이후에는 어떤 작품으로 다가 오실지 기대되어지면서 책을 덮어본다.#바람구두를신은피노키오 #래연지음 #도서출판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