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스
타리에이 베소스 지음, 정윤희 옮김 / 살림Friends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정상이라는 것은 누가 정의한 말일까. 온전하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있다면 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까. '병'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보게 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서 '정상'이라고 말하고 '비정상'이라고 말하게 되는가. 세상은 언젠가 부터 다수의 눈으로 소수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소수는 소수이기 때문에 더 가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가끔 잊고 산다. 다수의 횡포가 잠제하고 있는 사회에서 내면 깊이 마음을 다시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설을 만났다. 

 

생각해보면 왜 세상은 이런 식일까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다. 노르웨이 소설 <마티스>를 보면 더 그런 느낌이 든다. 소설 속의 정신 지체를 가지고 있는 어른 마티스는 누나 헤게와 살고 있다. 헤게는 마흔이고 마티스는 서른 일곱이나 된다.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동생을 키우다보니까 이렇다할 특별한 것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다. 누나는 이제 슬슬 지쳐가고 있는듯 마티스에 대한 반응도 무반응이다. 그러던 어느날 마티스의 집에 손님이 찾아온다. 철새인 멧도요새가 그들의 집으로 날아든 것이다. 멧도요새를 본 마티스는 상당히 순수한 마음으로 멧도요새를 자신의 창조물이라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 새와 함께라면 어떤 것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이 힘이 발동했다. 헤게도 그것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피곤할 뿐이다.  헤게은 마티스의 변화에 대해  "그래. 우리는 함께 있잖아, 언제나처럼. 그러니까 무서워하지 마." 라고 말한다.

 

하지만 마티스의 헤게는 언제나 마티스 것이 아니다. 40이 넘은 누나에게 필요한 것은 진짜 그녀를 지켜줄 수 있고 보듬어 줄 수 있는 더 튼실한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마음이 어디 헤게만의 문제이겠는가. 누군가를 돌봐야 하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 갖는 모두의 마음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보면 헤게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뱃사공이 되보겠다고 나선 마티스가 만난 벌목공인 예르겐은 우연한 계기로 헤게와의 사랑이 싹튼다. 마티스에게는 엄청난 혼돈이 생기게 된다. 마치 7살 짜리 남자 아이의 엄마에게서 새 아빠가 생겨버린 것 같은 마음이다. 두려움과 슬픔, 불안감이 마티스의 온몸을 감싸면서 혼란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 혼란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그를 변하게 만든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에 의한 행동들을 후반부에 접어들면서 더 한 안타까움으로 물든다.

 

처음으로 읽은 노르웨이 소설. 노르웨이를 가본적은 없지만 분명 신비롭고 고요한 나라일 것 같은 느낌이어서인지, 이 소설의 분위기도 차분하면서도 친환경적이다. 멧도요새나, 이들 남매가 사는 집의 분위기에 대한 묘사들이 그러하다. 자연의 힘과 동물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우리의 평범한 인간들의 모습을 참으로 멋지게 담아 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정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주인공이지만 그의 마음 속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방황은 책을 더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간결하고 편안한 문장 덕분에 이들 남매의 이이갸기 더 아늑하게 다가온다. 이것은 아마도 친절한 작가의 솜씨가 아닐까 한다. 이렇게 때로는 생소한 나라의 소설을 읽어봄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나에게 다가오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일본 작가들에게 잠식되어 있었던 많은 소설들이 프랑스 쪽으로 이어지는 기분이 든다. 사실은 한국 소설이 가슴속에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어찌 어찌된 것 손에 잡히는 것은 외국 소설들이 다분하다. 작년이던가, 상당히 충격적인 프랑스 소설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이 <내가 예술작품이었을 때>였다. 제목 그대로 사람이 살아 있는 예술 작품으로 변형되는 이야기였다. 끔찍하기도 하고 상상하기도 벅찰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그 소설 작가인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가 이번에는 무대를 바그다드로 옮겨서 사드 사드라는 인물을 탄생시켰다. 그것이 <바그다드의 오디세우스>이다.

 

주인공 사드 사드는 아랍어로는 ‘희망 희망’이고 영어로는 ‘슬픔 슬픔’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전쟁으로 인하여 자살 폭탄 테러나 각종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사드 사드는 아버지를 잃는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전쟁의 끝자락 속에서 그는 피할 곳을 찾아본다. 하지만 그가 가는 곳마다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테러집단 취급을 당하고, 불법 체류자가 된다. 그 정도라면 정말 죽고 싶을 만큼 힘들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놓지 않는다. 결코 영어로만 남게 두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라크 청년 사드의 모험담은 이렇게 떠돌면서 소설 곳곳에 측은함을 남긴다.

 

최근에 부쩍 ‘불법체류자’에 관한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얼마 전에 읽었던 ‘리틀비’라는 소설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지만 또 곧 개봉하게 되는 영화 ‘웰컴’이라는 영화도 이와 동일한 주제이다. 이라크 출신의 한 소년이 몰래 애인을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의 불법 체류를 시도하지만 프랑스에서 붙잡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거의 이 책과 흡사한데다가 근래에 만난 것이라서 더욱 신기하기만 하다.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 체류자에 관한 깊이 있는 성찰이 눈에 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수년간 누누이 이슈화가 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그냥 소설이라고 넘기기에는 그 무게가 참으로 크다. 긴 여정의 끝은 과연 어디일까. 그들에게는 고향도 타지도 모두 어렵기만 한 것일까. 대책은 없는 것일까.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들게 만드는 문제 제기적 소설인 듯 보인다. 그래도 작가만의 스토리텔링이 어렵지 않아서 읽기에는 좋다. 게다가 흡입력도 좋아서 빨리 읽히는 편이다.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에 환상을 입혀라 - fun한 세상을 꿈꾸는 테마파크 디자이너 이야기
니나 안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FUN' 이라는 단어는 내게도 무척 친근한 대상이다. 'FUN' 을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 그림 그리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등등의 행동을 하는데 목메었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대학에 가서 만드는 공부까지 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했었다. 포기한 만큼 내겐 그 즐거움이 살아졌었다. 나만을 위한 '즐거움' 이 아닌 타인을 위한 '즐거움'도 많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다른 길에 접어들었다. 나역시 <세상에 환상을 입혀라> 저자 처럼 사람들에게 '환상'을 입히는 전공을 택해버렸다. 이 책이 더 즐겁다.

 

니나 안은 테마파크 계에서 이미 정평이 나있을 만큼 유명하신 분이다.  우리나라의  롯데월드나 디즈니 랜드. 시저스 팔레스 포룸숍 등 세계 각국의 유명한 테마파크를 디자인 한 경력이 있으시다. 그래서 그녀가 어떠한 마음으로 어떻게 그만한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에 대한 책이라고 보면 된다. 그녀의 자서전 같은 책이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녀도 어린 시절부터 책에 푹 빠져 살았다고 한다.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때부터 활자로 된 책을 많이 보면서 '문학'을 동경하게 되었고, 또 다른 언어인 '외국어'에 눈을 떴다. 사실 아이디어는 별게 아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만으로도 엄청난 감각을 익힐 수 가 있다. 나도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다. 게다가 외국어에 눈을 뜬 그녀는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하다는 스튜디어스가 되어 전 세계를 누비게 된다. 그런 '국제적' 마인드와 안목 덕분에 유학생활을 확고하게 한다. 튼실한 밑바탕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새로운 도전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다고 본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할 때에는 어려움이 따르는 법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런 외국 생활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독했다. 독한만큼 한 사람이 하기 힘들다는 일들을 맡아서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50대 중반까지 부와 위치를 얻었지만, 혼자이기 때문에 외롭다고 말한다.

 

그녀의 FUN 한 인생보다도 개인적으로 관심있게 본 것은 '한국의 미래산업, 관광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엔터테이먼트란 단순한 즐거움의 차원을 벗어나 이를 상품화하여 경제적인 수입을 발생시키는 것을 뜻하기 때문에  앞으로는 '레저, 휴양, 엔터테인먼트' 3박자가 제대로 구성된다면 우리 관광의 산업의 미래는 밝다고 한다. 엉터리 개발사업 같은 것만 잘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목포와 부산, 유니크한 서울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자서전 형식이었지만, 뒤의 내용은 내게도 필요한 내용이라 몇자 적어 두었다. 앞으로 FUN이 되는 한국을 만들기 위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 : 전쟁편
류펑 지음, 김문주 옮김 / 시그마북스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실제 입으로는 나는 전쟁이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수밖에 없다. 전쟁은 인간의 욕망으로 생긴 폭력과 만행의 뒤범벅인 힘의 싸움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에 전쟁과 관련된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전쟁은 필수적이며 해야만 한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잘 알고 있지 않으면 잘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쟁을 제대로 파악해 볼 수 있는 책 <인류의 운명을 바꾼 역사의 순간들>전쟁편을 읽어보게 되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첫 장부터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로 시작한다. 그것은 전쟁이 발생되는 원인에 관한 것이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에 대한 유혹으로 생기는 전쟁이나 전략 요충지를 얻기 위한 전쟁, 위기 국면을 타파하기 위한 전쟁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미인을 쟁취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미인과 전쟁은 무척 밀접한 관계를지니고 있다 한다. 장장 10여 년 동안이나 지속된 트로이 전쟁이 미녀 헬레네 때문이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쓸쓸한 전쟁도 등장했다. 그것은 다름아닌 이데올로기를 위한 전쟁,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고, 겪었던 한국전쟁이다. 저자는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에 속한다고 했다. 전 세계 18개국이 휘말렸고, 한 나라가 둘로 쪼개진 데다가 오늘날까지 지속되어 동북아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어쩐지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책은 세계 전쟁사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정리하는데 상당히 유용하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전쟁의 분류에 대해서 나누면서 별의 별 전쟁을 다 소개하지만, 권력과 전쟁에 뒤얽힌 음모론에 대해서도 아낌없이 정보를 준다. 알렉산더의 왕위 계승에 관한 이야기라던지, 세상을 지배했던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와 산산이 부서진 야망의 야이기가 그렇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상당히 흥미로운 사건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 유명한 전쟁이나 영웅의 이야기가 아닌 저자의 특성 때문인지 중국의 전쟁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전쟁의 역사는 곧 세계 전체의 총체적인 역사나 다름 없다. 역사가 곧 전쟁이고 전쟁이 곧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 전쟁이나 인도와 파키스탄의 카슈미르 전쟁과 같은 세계적인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그에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해주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역시 역사를 다루기 때문에 사진이 컬러였으면 하는 바람이 조금 있다. 그렇게 된다면 책 값은 물론 턱없이 비싸지겠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우리의 한국 전쟁, 6.25전쟁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틀 비 Young Author Series 2
크리스 클리브 지음, 오수원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흑과 백, 두 세상의 단 하루의 만남.

 

가끔 우리는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맞이할 때가 종종 있다. 세상은 강한자에게는 약하고 약한자에게는 강하다. 그 강약의 혼돈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결국 처참한 비극을 맞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니, 요즘 들어 더 '종종'이 아니라 '많다'라는 생각이 강하다. 그런 현실을 맞닥드릴때에는, 이상과의 갈등으로 더 침울한 비극적 상상을 하게 되버린다. 아직, 네버랜드가 되기엔 세상은 험하다.

 

리틀비, 이 작품도 그런 진실의 순간에서 허우적 대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소설 첫 문장에서 '내가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여자아이가 아니라 1파운드짜리 영국 동전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생각한다.'라는 말에서 가슴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리카' , '흑인' , '여자'  , '아이' 라는 단어에서 오는 기분은 나약함의 응어리이다. 우리가 소외계층, 약한자라고 칭하는 그룹의 모든 교집합을 다 곁들인 사람인 것이다. 그런 존재가 '1 파운드' 보다 못하다고 한다. 리틀비는 어떠한 내용이길래 이토록 인간이 1파운드를 부러워 하게 되버린단 말인가. 리틀비... 나이지리아의 불법 이민자의 열일곱의 여자아이의 이름이 조금씩 내 심금을 울리기 시작했다.

 

리틀비는 언니와 함께 석유회사 만행의 목격자라는 이유로 도망자의 삶을 살아갔다. 하지만 부모와 언니마저 여의고 혼자가 된 그녀는 언니가 죽던 날 해변에서 만난 새라와 앤드류 때문에 영국으로의 밀입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국 2년 동안 영국의 수용소에 감금되버린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법'으로 살아가는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피하고 또 피하면서 살아간다. 그녀의 운명을 바꾸워 놓은것은 또 다른 화자인 새라와의 만남이다. 2년 전 나이지리아 해변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리틀비는 새라와 앤드류를 찾았지만 앤드류는 자살로 생을 이미 마감했다. 왜 앤드류가 자살을 선택했던 것일까. 그리고 새라와 리틀비의 관계는 그 어떤 무엇일까. 단 하루의 일로 달라진 이들의 관계가 소설의 메인 스토리로 흡입력있게 독자들을 밀고 당긴다.

 

자신을 현실에서 도망친 망명자라고 생각하는 새라와 스스로의 나라에서 도망친 난민 리틀비와의 오묘한 만남은 충격적이면서도 지극히 아름답다. 그들 관계에서 필요한것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베트맨 복장을 하고 다니는 어린 아들 찰리가 그들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마치 '두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 어느 한쪽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이답지 않게 이미 훌쩍 철들어버린 리틀비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가 새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내 나라를 떠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이지리아는 나와 같이 여기까지 온 걸요.' . 어쩌면 흑과 백의 조화일 수 도 있다. 그래서 더 뚜렷한 감정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쥐고 흔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척이나 괜찮은 소설을 오랜만에 만진 기분이 든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긴장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