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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씨의 발칙한 출근길 - 직장인을 위한 제대로 먹고사는 인문학
이호건 지음 / 아템포 / 2015년 3월
평점 :
니체라는 철학자에 대해서는 "신은 죽었다" 이 말을 한 철학자라는 것 밖에는 모르고 있었다.
혹시 철학적 지식을 어렵게 설득하는 글이면 어떡하지 싶어 약간 겁먹고 긴장을 하면서 책을 펼쳤다.
가장 관심이 가는 장부터 펼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얻은 키워드는 이런 것이다.
<나만의 길을 그저 가라>
책 속에서 니체는
"세상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너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하나 있다. 그 길은 어디로 이어지는가? 묻지 말고 그저 걸어가라."이렇게 말하고 있다.
작가의 해석을 빌리면,
인생을 살면서 어떤 길을 선택할 것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자의 길을 얼마나 잘 걸어가는가?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자신의 길의 진정한 키잡이가 되어 자신의 길을 책임지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길을 엿보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비교하며 불안해하지도 말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그저가라고 말한다.
살면서 이러기가 어디 쉽던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가 자주 된다. 저 길을 선택했으면 하는 후회와 불안이 자주 든다. 막상 저 길을 선택해도 곧바로 후회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후회는 늘상 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는 또 어떤가?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잘 하는 것 같고 더 잘되는 것 같다. 자꾸 다른 사람의 삶을 기웃거리느라 정작 자기 삶은 찬찬히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 에너지는 어문데 다 소비하고 정작 사용할 때는 쓰지 못한다. 부질없는 짓이다. 결국에는 "나는 안돼." "나는 못났어."로 결론 짓는다면 참 어리석은 짓이다.
나는 그냥 나만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다.
나의 길에 신경쓰느라 다른 사람이 어떤 길을 선택하고 어떻게 가고 있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다. 참고만 할 뿐이다. 심지어 내 딸의 가는 길에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내 길의 주인이 되어 내 길의 키를 쥐고 있기도 바쁘다. 그게 정답인 줄 알기에 더 올인한다.
"유령이 나오든 말든 자기의 길을 나아가라 /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괴로움도 행복도 만날테지."
괴테도 <파우스트>에서 이런 말을 한다.
이런 말들은 삶의 예방주사를 맞는 느낌이다.
'그래, 다 그럴 수 있대. 그게 인생이래.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행복으로 연결된대.' 이런 위로와 격려의 말처럼 들린다.
니체의 말대로라면 나는 지금 니체에게 조금은 칭찬받을 짓을 하며 살고 있다. 나도 니체에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잘 살고 있다고 다독이는 것처럼 느껴지니까!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된다고 위안을 주는 것 같아서....
<나는 생각보다 훨씬 더 예술가다>
이 제목은 읽는 순간부터 가슴이 설렜다. 왜 그럴까? 빨리 책 내용을 읽어 보았다.
책 속에서 니체는
"우리 근시안들은 동화와 놀이는 유년 시절에 속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중략). 짧은 삶이 우리로 하여금 지나치게 꼼꼼하게 연령을 구분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샤무엘 울만의 <청춘> 이라는 시와 비교해서 설명해 놓고 있어서 훨씬 더 이해가 쉽고 공감되었다.
어린아이의 정신으로 살면 된다고 한다. 샤무엘 울만의 표현을 빌리면 청춘으로 살면 된다고 한다.
이렇게 살 때 우리는 우리 삶의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더 높은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예술가가 될 수 있다.
참 설레는 말이다. 앞에서 얘기한 내 길을 그저 가라는 의미와 통한다. 덧붙여 그 길을 개척하며 가라는 말이다. 예술로의 승화를 주문한다.
'내가 내 삶의 예술가가 되고 있는가?' 반성을 해 본다. 훌륭한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인가? 나의 예술혼을 온전히 다 불사르며 삶을 아트로 승화시키고 있는 중인가? 행여 작품에는 관심도 두지 않고 결과만 좋기를 바라는 삶은 아닌가?
< 절대 긍정하라>
니체의 말을 빌리면
"존재하는 것에서 빼 버릴 것은 하나도 없으며, 없어도 되는 것은 없다(중략). 삶의 가장 낮설고 가장 가혹한 문제들에 직면헤서도 삶 자체를 긍정한다."
이런 질문들을 나 자신에게도 던져본다.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긍정할 수 있는가? 어떤 상황이 와도 긍정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떻게 해석하고 성장하는가?
이런 결론을 얻는다. 삶은 모든 것이 다 의미있다. 씨줄과 날줄로 쫌쫌이 짜여져서 삶 전체가 완성된다. 무늬가 알록달록해야 더 아름답지 않던가?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성장의 단서를 찾아내고 성장해 가는거다. 그게 인생이다. 밋밋한 삶보다는 훨씬 깊고 오묘하다.
그래, 삶에게 보내는 위로와 삶의 마사지로 해석해도 충분히 괜찮다.
< 나를 사랑하고 넘어서라>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자신을 사랑하기가 어려우니까 남에게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비겁한 행위다. 자신에게 올인하여 사랑하는 삶을 원한다. 자신을 먼저 챙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강자라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려우니까 하는 말일 것이다.
" 크나큰 사랑으로 사랑하고 크나큰 경멸로 사랑하라."
자신을 한 없이 사랑하되, 잘못 한 것은 가차없이 자신에게 꾸짖으라는 말이다. 당근과 채찍을 자신에게 사용하라는 말이다. 지신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알아가고, 보살피고 나무라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은 어렵다. 그래서 아무나 강자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철학자 니체씨를 등장시켜 사표를 내던지고 싶은 오과장에게 김대리에게 접근한다. 그러면 안 된다고, 다른 길이 있다고 알려준다.
우리는 삶에서도 자주 사표를 던지고 싶은 적은 없던가? 안 살고자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는 못살지.'반항을 해 보고 싶은 것이다. 뭔가 환경을 바꿔보고 싶은 것이다.
니체씨는 일관되게 말한다. "너 잘못이야. 너가 뭔가 바꿔야 한다고!" 그리고 이책 속에서 그 뭔가를 제시해 주고 있다.
결론은 자신을 한없이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운명을 기꺼이 사랑하라고 주문한다. 그래야 강자가 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단다.
더 자신감을 준다. 신은 죽었단다. 우리는 이미 '신'이란다. 신의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미 예술가란다. 내 삶을 내가 아트로 승화시키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단다.
삶은 우리 손에 달렸단다.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운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능력들을 개발하며 살게 될 것이다.
'마지막이 휘날레다.'
이런 능력들을 충분히 발휘하며 사는 삶!
삶의 마지막이 휘날레인 삶!!
정말 아름답고 숭고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