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여행하라 - 공정여행 가이드북
이매진피스.임영신.이혜영 지음 / 소나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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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몇 년전에 처음으로 소위 “단체투어”를 간 적이 있다. 전혀 준비를 할 수 없는 시간도 이유가 됐지만, 무엇보다도, 믿을 수 없이 저렴한 비용 때문에 한번 저질러 봤다. 도착하자마자, 일단 며칠분 추가비용징수, 서늘한 오전엔 쇼핑센타의 에어컨 밑, 가장 더울 때는 유적지 방문의 일정도 웃겼고, 쇼핑센타라는 것이 모두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보석점, 건강보조용품, 상황버섯 가게라 말로만 듣던 해괴한 네트워크를 체험할 기회도 되었다. 쇼핑센타에 도착하면 바로 밖으로 나와 거리를 구경하고, 걸핏하면 항의하고, 일정에 없는 코스, 내 돈 내고 따로 갔다 오고, 오전 11시부터 일정이 시작되는 날은 일찍 박물관 다녀오고, 무법천지라는 밤거리를 가이드가 얘기한 교통비의 삼분의 일만 주고도 교통편을 대절하여 밤거리 카페에서 아내와 칵테일 즐기기 등 나름 정해준 관행에 대항하다가 가이드한테 요주의인물로 찍힌 것은 당연하겠거니와, 종내에는 일행들에게도 슬쩍 “왕따”를 당했던 여행길이었다. 이 여행길, 가이드의 설명과 같지 않은 저렴한 맛사지, 그리고 친절한 현지사람들의 따뜻한 배려를 받으며, 다시는, 죽기전까지 한국여행사가 운영하고 있는 단체여행에는 섞이지 않을 것임을 맹세했었다.


이십여일 전에, 매실청을 담갔다. 매실의 맛을 강하게 느끼기 위해 “흰색설탕”을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올해는, 두레생협을 통해 필리핀 마스코바도 설탕을 구입했다. 이 설탕을 판매해서 남은 기금이 현지생산자들에게 관개시설, 트랙터 등을 제공 한다기도 하고, 전통 흑설탕 제조방법으로 화학적인 정제나 첨가물이 없는 제품이라는 장점을 든 아내의 선택에, 베란다에 놓여진 유리병에서 매일 조금씩 익어가는 맑은 빛깔을 감상하는 기회는 잃게 되었고, 맛이 어떨지도 궁금하지만, 평소, 몇 개에 불과하긴 해도, 나름대로 정한 기준에 의한, 악질기업의 제품에 대해 무턱대고 외롭게 구매거부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 연장선인 이번 구매에 대해서도, 사소한 아쉬움을 대신할 몇 배의 귀한 맛으로 틀림없이 되돌아 올 것으로 믿고 있다.


네팔 산악 트레킹의 자료들을 볼 때마다, 낡은 슬리퍼와 옷가지로 “고어텍스”로 무장한 관광객의 짐을 이고 있는 포터들은 원래 그 지역사람이라, 환경에 익숙하여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도, 50kg 가까운 등짐 속에 관광객이 누려야 하는 파라솔, 의자, 그리고 삼계탕 재료 등으로 가득하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다.


“공정무역”이라는 단어가 겨우 익숙해 지고 있는 즈음에, 다시 책임여행 등의 개념을 뛰어넘은 “공정여행”이란 말은, 단어는 “생소”하지만, 다행히도 내용은 매우 “익숙”한 것들이다. 그런데 이 공정여행을 아주 쉽고, 편하게 이해시킬 수 있는 책이 한권 출판되었다.


책은, 새로운 여행에 대한 즐거운 상상 “희망을 노래하라”는 공정여행 가이드북이라는 출판취지에 걸맞게 6부로 나눠 여행길에서 한번쯤 고려해 봄직한 주제들, 즉, 인권, 경제, 환경, 정치, 문화, 배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사례와 희망, 그리고 노력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눈이 얼마나 내리든 

심장이 얼마나 아파오든

나는 포터니까요


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것

짐을 나르다 언제가 죽는 것

이것은 나의 운명이니까요


나는 포터니까요.“


본문 제 1부. 여행과 인권 중 인용된 포터 소남 세르파의 시

 


제 1부. 여행과 인권은 네팔의 포터들, 유명 리조트 등 호텔에서 종사하는 사람들, 성매매의 현장에 대한 희망보고서이다. 일당으로 먹고 자고 해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서 자는 등 비용을 최소한으로 해도 일주일간의 중노동 끝에 얻은 임금이, 그들이 얻은 직업병의 수십만분의 일도 안되는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늘어가는 짐, 그리고 여행사의 횡포에도 불구하고 대기하고 있는 10만명의 인력때문에, 스스로 가격을 낮추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위해 이제 본격적으로 불기 시작한 단체들의 노력. 혹자는 이 새로운 운동 때문에 경비의 가중함을 걱정하겠으나, 사실, 그 짐속에서 가스통, 닭고기, 쌀 등의 부식재료와 파라솔만 제외시켜도 더 이상의 인력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세계 등반계에 기록을 남겨야 하는, 몇 달씩의 사투를 견뎌야 하는 전문 산악팀들이야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고국의 음식을 먹어줘야 하겠지만, 일주일 남짓 즐거운 트레킹 길에서, 현지 음식만 즐긴다고 해서 결코 영양에 이상이 올 것 같지 않고, 그들과 함께 그저 바위위에 앉아 쉬고, 모자로 햇빛을 가려도 피부에 큰일이 없을 것이다. 정 불안하면, 배낭 안에다 공기방석이나 접어 넣고, 육포와 누룽지, 쵸컬릿 몇 개를 지참해서 그들과 함께 나눌 수는 없을 것일까?


힐튼이라는 체인망 뿐아니라, 대다수의 서비스업이 가지고 있는 무기술 노동자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 하루 15개내외의 객실을 청소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배려는 무엇일까? “티벳, 말하지 못한 진실”이란 책에서 전해준 “사실”에 의해 밀려난 티베탄들, 20만의 여성들이 인도의 윤락가에서 살아가야 하는 현실, 그걸 부술 수 있는 방법은?



2007년 한국인 1천3백만명이 해외로 나갔고 18억 2천만달러를 사용했다. 개별여행객의 평균 지출액은 187만 8천원, 패키지여행객은 160만 4천원을 지출했는데, 쇼핑경비로는 패키지여행객이 40만원, 개별여행객은 32만 7천원을 사용했다. 게다가 쇼핑액의 55%는 한국을 떠나기전 면세점에서 이미 지불했다.


2002년, 어느날 갑자기 트럭이 마을로 들어와 사람들을 싣기 시작했다. 정착촌이라는 곳에서 텐트를 던져주고는.... 우리집이, 마을이 너무 그리웠다. 새로운 땅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제 2부 여행과 경제는 더 갑갑하다. 천혜의 자연만 가지고 있는 나라들, 어느날 세계 최고의 휴양지들을 만든다는 정부와 다국적기업, 혹은 재벌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과 여행객이 지출하고 있는 비용에 대한 씁쓸한 이야기이다. 예를 들자. 몇 년전 베니스 리도섬 아름다운 해변을 걷다가, 잠시 메모를 하기 위해 앉았을 때, “여긴 사유지이니 나가달라는” 정중한 부탁으로 쫓겨난 기억, 그 호텔은 과연 현지인들, 일반인들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을까? 어느 날, 개발과 지역경제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대기업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현지인들을 몰아내고, 그럴싸한 리조트을 완공한 다음, 현지인을 채용할 수 있는 일꺼리는, 세탁부, 청소부, 웨이터 등의 잡부일 뿐이다. 조그만 배 하나의 어업으로 살던 사람들을 초원으로 이동 시킨후 충분한 보상을 해 주었다고 우기기는 하지만, 평생 바다와 고기잡이로 살아 온 그 활력을 보상해 주지는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 즐거움을 되찾기 위해 그물이라도 던지려면, “사유지 불법 침입 및 불법 어로”에 해당한다. 땅만 판 것이 아니라, 바다를 생계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역사까지도 자신도 모르게 판 결과이다. 현지인의 숙소, 현지인 가게는 권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규모로 국한하고 있는 여행경비 덕에, 대부분 이 장에서 권하고 있는 것들을 실천할 수 밖에 없지만, 이 갈등을 이겨낼 내 스스로의 대안을 제시하라면, 우리 관광객들이 호텔에게, 이 멋진 바다에서 고기 잡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부탁하는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긴, 그러면 또 생계형 작업이 아닌, 구경용 쇼를 보여주고 말겠다만....


제 3부 여행과 환경은 관광이라는 이름으로 상처입고 있는 동물, 자연, 그리고 환경에 대한 이야기다. 동물을 사람과 똑같이 대하는 나로서야 절대로 어길 일 없는 사례들이긴 하지만, 낼 돈 다 냈으니까 하고 충분하게 사용하는 자원으로 인해 현지사람들이 고통 받아야 하는 것들, 그리고, 그 것들이 줄일 수 있는 사례와 제언으로 이루워진 장이다. 물론 “에코투어리즘”의 그릇된 전개로 자칫 “에고투어리즘”으로 왜곡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 대목에서, 문득, 며칠 전, 오지를 전문적으로 다니는 단체라고 쓰여진 20여대가 넘는 지프차들이 “에코투어”전문 관광지에서 보여주던 무질서와 횡포가 떠 올랐다. 떼지어 다니는 무리가 가진 만용이겠다만, 적어도, 우리가 “에코”라는 단어를 한번 더 생각한다면, 여행의 목적과 과정이 일치해야 하지 않을까?


“2002년부터 이스라엘은 분리장벽을 쌓으면서 서안지구 수자원의 85%를 빼앗아 갔어요.

올리브작황은 반으로 줄었고, 농부들은 밭을 떠나고 있어요. 

 이스라엘은 지금도 고대 오토만 법에 따라

경작하지 않은 땅은 국가가 소유한다는 “유기토지회수법”을 가지고 있죠.

분리장벽과 부족한 물때문이라고 아무리 호소해도 그 때는 이미 늦은거죠“

제 4부, 여행과 정치 본문 중


제 4부 여행과 정치는 하나님의 후손들이 인류의 자손인 팔레스타인을 어떻게 유린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목, 미국, 근세, 현대사 등 이 지역을 얘기하려면 일단 흥분부터 가라앉혀야 하며, 단순한 여행가이드북 독후감으로는 썩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긴 불평은 끄집어 내지도 못하고 마감하겠다만, 작년 겨울에 본 영화, 이스라엘인 에란 리크리스 감독이 만든 영화 “레몬 트리”로 아주 짧게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지역 여행시에는 반드시 이 책이 소개한 방법을 이용해야 하겠다는 결심도 함께.


앞 서 언급한 “티벳, 말하지 못한 진실”이란 책에서 전해준 중국이 파괴하고 있는 티벳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게다가, 무심결에 우리 같은 일반 관광객이 행하는 무례함도 함께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 5부 여행과 문화와 제 6부 문화와 배움은 사실 일반 관광객이 고려할 수 있는 수칙의 범위를 다소 벗어난 느낌이다. 관광으로 출발하여 일종의 “운동”으로 대미를 장식해야 하는 사례에 대해서는 사실, 그 실행에 어렵다는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지구 한 켠에서, 비록 대중적이진 않지만, 방문국을 존중하고, 봉사와 배움을 통해 인류애를 직접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국수주의에 빠져있는 이 세상과 자기의 이익외에는 한치의 눈돌림도 없는 세태와 견주어 비교하면서, 살짝 부끄러움을 일게 해준 부분들이었다.


여행은, 한마디로 정의하고 주장할 수 없는 수많은 목적이 공존하고 있다. 여름내내 뜨거운 태양아래서 허리 숙이고 농사를 짓다가, 추수를 끝낸 촌부들이 관광버스 안에서 막춤을 춘다고 흉을 볼 자격은 안전관리를 제외한다면 누구에게도 없다. 평생 노동에 힘들게 지내다가 자식들이 보내 준 효도관광 속에서 “공정여행” “공정무역”의 노력을 기대할 필요도 없다. 막연한 외국에서 불안감. 저렴한 비용을 이유로 단체관광을 선택하는 것을 한심하게 바라 볼 자격도 없다. 일상에서는 누릴 수 없는 행복과 우월감, 안식을 얻기 위해 모아놓은 돈을 가지고 가서 위세를 좀 떨겠다는 것을 욕을 할 이유도 없다. 우리 부부처럼 유적과 박물관을 중심으로 짠 동선이나, 일몰, 풍광 등의 자연 속에서 소진한 육체의 재생을 꿈꾸는 계획과의 차이는 아무 것도 없다. 어떤 여행이든, 여행은 일상을 벗어난 일탈이며, 그 일탈을 통해 되돌아 온 일상을 기쁘고 편하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어떤 의도든, 경로든, 일정이든 여행은 모두 값진 것이다.


그런데, 한번만 되물어 보자. 과연 최저비용의 상술 속에 바가지를 쓰고 있는 것들은 없는가? 10원짜리 상품을 1,000원에 구입한 적은 없는가? 우리가 박수치며 즐거워 하는 사이에, 우리의 쾌락 때문에 상처받고 죽어가는 동물들은 없는가? 좋다, 동물들이야, 뭐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우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혹시 우리의 즐거움이 이름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고, 그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뺏어간 것은 아닌가? 어떤 여행이든 적어도 이 정도의 자문은 한번쯤 해 볼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1. 지구를 돌보는 여행자가 되자_비행기 이용 줄이기, 1회용품 쓰지 않기, 전기와 물 낭비 않기

2. 다른 이의 인권을 존중하자_ 직원에게 적정한 근로조건을 지키는 숙소와 여행사 선택하기

3. 성매매를 하지 말자_ 아동 성매매, 섹스관광, 성매매 골프관광 등을 거부하기

4. 지역에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하자_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 음식점, 여행사, 교통 이용하기

5. 윤리적으로 소비하자_ 과도한 쇼핑 하지 않기, 지나치게 깎지 않기, 공정무역 제품 이용하기

6. 현지인과 친구가 되자_ 현지 인사말, 춤이나 노래를 배워보기, 작은 선물 준비하기

7. 다른 문화를 존중하자_ 여행지의 생활 방식과 종교를 존중하고 예의 갖추기

8. 타인을 존중하고 약속을 지키자_ 사진을 찍을 땐 허락 구하기, 현지인과 한 약속 지키기

9. 적선보다는 기부가 어떨까_ 여행 경비의 1%는 현지의 사회단체에 기부를!

10. 부당한일에 목소리를 내자_ 동물 학대, 인권 유린 등 부당한 일을 목격한다면 시정요청하기


본문중 “공정여행자가 되는 10가지 방법”


따져보니까, 1번, 3번, 4번, 5번, 7번, 8번 등은 반드시 지킬려고 노력하는 것, 2번은 대체로 자유여행으로 여행을 떠나므로 앞으로 기회되면 지키고자 하는 것, 6번은 짧은 여행기간 때문에 나 공부하기도 바뻐 현지인을 사귈 여유도 없고, 언어능력도 안된다는 것, 9번은 생각조차 못한 일 10번은 글쎄, 나는 절대로 안하겠지만, 남이 하는 것까지 오지랖을 넓히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이렇게 복잡할 바에야 그냥 집에 있지, 놀자고 가는 여행 별 것을 다 시비한다고 반론을 필 수도 있겠으나, 이러한 운동들은 여행을 통해 인류가 하나라는 것을 갈수록 깊게 체험하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는 좋은 제언이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내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선 남도 즐거워야 한다는 기본 원칙 하나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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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세계 - 세계 권력의 대이동은 시작되었다
파라그 카나 지음, 이무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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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한 불평등을 용인하는 사회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그런 사회는 박정하고 폭력적일 것이며,
호의보다는 적의가 흐르는 사회로 인식될 것이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인용한 아놀드 토인비

 

어렸을 때는 소위 공산주의 국가로 배웠던 제 2세계라는 단어가, 서구물질문명의 우세로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제1세계, 빈곤과 기아, 회복이란 희망은 지난한 고통으로 함께 하는 제3세계 사이에서, 뭔가 그럴싸한 방편만 자극을 주면, 이 양자의 세계로 진입 또는 추락할 수 있는 국가, 지역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 
 

국제관계 전문가, 오바마 선거캠프 대외정책팀을 지도했다는 저자의 이력과 짧게 소개된 그의 양력을 감안하여, 이 책은 오늘날, 세계화에 대응하는 제2세계 국가들의 노력과 발전방향에 대한 종합 보고서가 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했다. 이 짐작이 틀리지는 않았으나, 뭔가 좀 부족하다고 느낀 것이, 결과적으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의 제왕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이, 유럽 아니, EU와 중국에 의해 그 영향력을 점차로 잃어가고 있는 지역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오늘 날, 제조업 대신 금융업으로 승부를 걸면서, 사회양극화와 제 1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사회현상을 드러내고 있는 미국이, 도리어 제2세계로 추락할 수 있다는 위험을 지적한 지극히 애국적인(?) 권고가 포함되어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제1부 유럽연합의 뉴프런티어-동유럽, 제2부 심장부의 줄다리기-중앙아시아, 제3부 미국안마당에서의 파워게임-라틴아메리카, 제4부 빅3의 결전장-중동, 제5부 아시아인을 위한 아시아-동아시아”라는 목차에서 알 수 있듯, 정말 많은 나라를 직접 여행했고, 표현은 각국의, 마치 한가한 카페에서 우연히 나눈 나른한 대화처럼 인용하였으나, 직위를 이용해 충분히 사전준비가 철저했을 현지사정, 짧은 인터뷰와 각국에 대한 분석은, 이름마저도 생소한, 아직도 소련연방공화국의 체계로 알고 있던 지역들의 신생국가(?)들이나, 중동지역의 역학관계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준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이 지역들을 포함해서, 아시아, 중국, 그리고, 남미까지 모두 50여개 국가의 짧은 지표 소개와 국가간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10여 페이지 이내의 짧은 서술을 통해 이들 국가에 대한 개략적 이해를 돕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들인 저술결과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보면, 이 개괄서는 철저하게 “미국식” 시각으로, “경제적 가치”을 우선하여 설명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유럽연합이든, 러시아든 중국이든, 미국이든, 기존의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개편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이들 지역에 대한 분석의 긍극적인 목표는 풍부한 에너지, 또는 무역거점 역할로써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점차 범위를 확대하고 있는 유럽연합과 중국의 역할에 대한 소회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붉은 열기”를 가진 2만5천불의 1인당 GDP로 제1세계로 취급을 해주는 바람에, 1페이지 이내의 소개에 국한되었지만, 티벳에 대한 언급만을 예로 들자면, 티벳지역에 대한 중국의 희석화 전략마저도, 전체적으로 이 지역의 경제력 향상과 빈민구제의 효과로 표현함으로 해서 작년에 출간된 “TIBET, THE FACTS”가 전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데, 이런 저술형태를 보면 확실히 이 책은 또 다른 패권주의를 위한 전략보고서 쯤으로 읽힐 수 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구체적 대안제시보다 현상만을 분석함으로써, 도리어 그가 제시하고 있는 지표들에 대한 저자의 심미적인 분석이 아쉬웠던 부문이 많았지만, 80시간 동안 다닌 세계일주로서는, 각 지역에 대한 정보는 천천히, 짬을 내서 다시 읽어 봄직한 적당한 안내가 아니었나 싶다. “시각”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걸 느꼈다면, 또 다른 즐거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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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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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억지같다만, 월남전이후 이라크전까지 세계도처에서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오만해 지는, “태양이 지지 않는 영국”의 식민지시대보다 더 악랄하고 비신사적인 미국의 제국주의로 인해, 정나미가 떨어지는 사례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겠으나, 내부의 자성과 비판 속에서도 여전히 그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러한 때, 이미 국가간 경쟁체제에서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가 국경을 초월한 제국적 이익에 몰두하면서, 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한 스스로의 착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미국의 계속되는 악수를 접하면서, 불쌍하다고 혀만 차고 있을 수 밖에 없음은, 이들의 비행(非行)여파가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꼭 새우등의 통증이 이 아시아까지도 흘러 들어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는 어쩜 미국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사회적 기능, 끊임없이 견제하고, 제언해 되는 일정한 그룹핑이 되어 있는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미국을 움직이는 것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는 미지수이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회의적이긴 하지만,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부러움은, 반대를 위한 반대, 선언적 의미로 목청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와 기록, 그리고 통계, 마지막 제언까지가, 적어도,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덕망 때문이다.
 

이미 앞 서 나갈 만큼 나아가, 이젠 어떻게 되돌릴 길이 없어 보이는 세계화, 신자유주의에서 진보적 시각에서의 사회 개혁을 얘기하고, 잃어버린 케이즈식 경제이론을 환기시키는 의도는 다름아닌, 좀 더 풍요의 사회, 일인당 GDP의 산출보다 소득의 중앙값을 상승시키는 노력을 통해 전계층이 두루 만족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왜 복지국가의 정치가 필요한가에 대한 저자의 강변을 증명하기 위해, 20세기 초부터, 1970년때까지의 미국의 경제사회와 관련된, 정치사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대결로부터, 뉴딜정책의 성과와 새로운 뉴딜정책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 주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한번쯤 되 집어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후 시대, 앞 장들의 내용에 비해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서둘러 결론을 내어 버린 것은, 아무리 1장에서 이미 결론을 제시해 주었다고 할지라도 좀 당황스러웠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여전히 헷갈린다. 어떤 것이 진정한 보수고 진보라는 것일까? 인종, 종교, 지역색, 그리고 빈부, 세금정책, 사회보장제도, 평등한 사회의 진정한 추구는 어떤 공감대에서 추진될 수 있을까? 만일 여타국가들이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개혁하려고 한다면, 이미 시장경제에 국가 개입이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는 미국보다는, 어찌보면, 훨씬 작은 노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도달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이 인류복지가, 과연, 어떤 작은 나라에서도 쉽게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것은, 이 “희망”은 이론일 뿐이고, 이 “희망”이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집권층, 재벌, 지식인 등의 소위 “파워 엘리트”들이 자기들이 선점하고 있는 기득권과 기대이익을 일부 덜어내야 할텐데, 아무도, 어떤 경우에서도 그 욕망을 자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암울한 패배의식 때문이다. 
 

답은 나와 있다. 현란한 문장과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증빙자료가 아니라도, 국민을 위하고, 국민을 웃게 하는 정책이 무엇이라는 것은, 누천년 전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매번 같은 지적이 반복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안해서” 이다. 
 

한번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논쟁에 대해 슬쩍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독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좀 스스로 낭만주의(?)의 잔류이기를 원하는 나는, 저자가 책 속에서 언급한 올리버 스톤의 “월스트리트”나 “조지 클루니”의 굿 나잇 앤 국 럭과 더불어, 도금시대 등 공항기의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이 짙게 묻어 있는 로버트 앨트먼감독의 “캔사스시티”와 9.11테러이후 미국인들의 허상을 카메라로 전한 빔 벤더슨 감독의 “풍요의 땅”등의 영화나 떠올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간간히 웃을 수 있었던 것은, 1979년에는 상위 0.1%의 소득이 전체소득의 2.2%차지하던 통계가, 2007년에는 7%이상의 점유률을 보이고, 거품경제라고 불리지만, 갈수록 어려워 지는 불투명한 미래를 자기자식들에게는 넘기지 않겠다는 인기학군으로의 이동에 의한 부동산 폭등, 인종이나 사회적 편협함, 그리고 국가안보를 미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치적 술수에 얼룩진 미국사회의 경우를, 슬쩍 내가 아는 어떤 나라들에게도 대입을 시켜 보아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로 나오는 현실 때문이었다.


정말 이 깊어가는 골을 채워 줄, 적어도 최소의 인간의 권리를 지켜주고, 인간 위에 인간이 없다는 “신기루”가 현실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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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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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죽지는 않습니다.
사원에 들어간다고 해서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인간으로서의 동등한 권리를 위해 싸울 뿐이며,
그 이하로는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 본문 중, 인도 나시크지역 칼라람사원 집회에서 바바사헤브 연설 -

불가촉천민, 이 아이러니를 구체적으로 사진과 함께 접한 것이 내셔날지오그라픽 한국어판에서 다룬 이들의 특집 기사였는데, 아직도, 그 사진의 눈망울을 생각한다. 전혀 상관없지는 않겠으나 그 기사와 함께 떠오르는 영화 역시 “블러드 다이아몬드”이다. 그냥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이 두 개의 각각의 이미지들을 불가촉천민이란 단어와 함께 떠올리는 정확한 이유를 설명하라면, 도저히 방법이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 외에는...

“신도버린사람들, 불가촉천민”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 카스트제도의 그늘아래, 인도의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들 중에 한명이 되어 있는 나렌드라 자바브의 가족 연대기이다. 아버지 다모라르 룬자지 자다브의 일생을 아버지 “다무”(집에서는 “다다”라는 애칭), 어버니 “소누”(바이라는 애칭)의 번갈아 가며 구술하는 양식으로, 아버지의 삶을 통해 한 가족이 자신들이 처한 사회적 고립과 박해 속에서 동등한 권리와 행복을 찾아가는 소설보다 재미있는 논픽션이다. 사랑과 유머로 똘똘 뭉친, 세상을 바로 알고, 이 죽어가는 화초 같은 세상에 건강한 물을 뿌릴 줄 아는 한 가족의 아주 즐겁고, 신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한 가족의 연대기속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통상적으로 말한다면, 바바사 헤브라고 애칭으로 불리며, 지은이보다도 더 일찍, 더 인지도가 높은 학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도전역의 불가촉천민을 위해 평생을 살았던, 3500년 이상 굳어져 있는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내부의 이해와 화해를 통해 개혁하고자 했으나, 결국 1956년 그를 따르는 50만명과 함께 불교로 개종한 암베드카르 박사 말이다. 
 

아버지 다무는 두 개의 기회를 갖는다. 하나는 몸바이에서 신문을 팔다가, 우연히 만난 영국인을 통해서 평등과 사회성을 배운다. 이 첫 번째 기회는 평생 어떤 직업을 갖게되더라도,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인정받는 곧은 처세술의 근간이 된다. 나머지 하나 기회가 바로 암베드카르 박사의 정신을 배우고, 그를 따르며 평생 그의 추종자로서 삶을 가꾸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무와 같은 기회를 접했을 지도 모르겠다. 더 많은 사람들은, 이 기회라는 것의 파편, 아주 작은 부스러기 하나도 취할 기회조차 없었는 지도 모른다. 여전히 인도는 드러내놓거나, 감추어 놓고,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생각되며, “우리에게도 이런 기회만 있다면, 같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5세기 석가모니의 평등사회, 14세기 이후 바티크운동, 1873년 지요티바 플레의 비브라만계급을 위한 학교설립, 그리고 1950년 1월 26일 불가촉천민의 폐지를 선언하는 인도 헌법이 발효로 비로소 법적으로야, 이 사람들이 땅을 더럽힐 수 있는 침을 받아내는 목에 맨 오지그릇, 더러운 발자국을 지우기 위한 엉덩이에 단 빗자루를 떨쳐 낼 수 있다지만, 과연 몇 천년을 유지해온 4개의 카스트와 3000여개의 아웃카스트제도로 굳어 있는 인도인의 관습 속에는?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T 강국으로 불리우고 있는 나라들, 시민개혁과 평등과 행복이라는 이 21세기에 도처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악습과 폭력과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진다. 인간이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사람이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이렇게 불가능한 일인지, 지니고 있는 탐욕의 10분의 일, 아니 몇백분의 일만 덜어내도, 몇 배의 공동행복을 가져 올 수 있을 수 있는 데도, 결코 양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은 사악해야 하는 가를 떠올리면 가슴 한쪽의 울렁거림을 멈출 수가 없다. 
 

어쩌면 이런 신분제도는 이미 아주 오래전에 사라진 옛이야기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그럴듯한 구호 안에서 점차 더 간격이 벌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신분제도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말들이 없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권력과 힘과 경제를 움켜지고 있는 사람들은 엄동설한에 “버러지” 같은 것들에게 찬물을 끼얹어도 되고, 몇 사람 정도는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는 “죽어 나가도” 되고, 힘없는 것들은 그들을 감싸고, 변호해 줄 소위 “상급단체”와의 연계도 불법이 되고, 탄압의 이유가 된다고 선언하고, 자신들의 다소의 불편함도, 손실(아니 약간의 실현이익의 감소라는 표현이 더 적정하겠다만)도 용납할 수 없는 부류가 점점 더 조직의 힘과 동의을 얻는다면, 지금 내가 막 읽기를 끝 낸 책보다 더 몸서리 쳐지는 카스트 제도가 도처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 한권의 독후감 속에 갑자기 흥분하는 것은 염치가 없으므로, 매우 경쾌한 한 가족이, 합병과 사기, 전략을 세우지도 않고, 오직 정직과 따뜻한 마음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 책 한권을 통해 그저 호흡한번 크게 가지면 될 일이다.
 

“다무”의 생각들을 옮겨 놓은 것은, 그가 소위 학력과 관계없이 얼마나 올곧은 정신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박사학위를 받아 온 막내아들인 저자에게 묻는다.“그걸로 보통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해도 길거리 사람들을 돕지 못한다면 전부 낭비일 뿐이다.”그에게는 박사학위는 운전면허증과 같은 것이다. 학위를 받았다고 해서 모든 명예를 얻은 것이 아니라, 그 명예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인증을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사례, 큰아들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온 동네의 축복을 받으며 임지로 떠나는 그 경사에 취해, 다무가 다니고 있는 철도 크러스트의 사장은 이 경이로운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그에게 정년연장의 기회를 준다. 다무는 그 연장의 기회를 같이 일하고 있는 다른 직원들에게 옮겨 줄 것을 요청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자기는 자식들이 다 자랐으며, 일용할 양식이 있으며, 지금 동료 중에는 아직도 자식을 교육시키거나, 생계를 꾸려야 할 의무를 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왜 이런 의식과 실천을 하는 사람들은 “불가촉천민”에서 나와야 하는 지, 좀 더 많은 학식과 명예와 부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나오면 안되는 것인지? 지난 세기말부터 불기 시작한 세계화의 모진 바람을 정면으로 맞서며, 50여년 전에 외친 “교육하고, 단합하고, 궐기하라”라는 실천 구호외에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이제 이 역사의 교훈 앞에서 힘 있는 자들이 먼저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젖힐 수는 결코 없는 것일까? 없겠지? 그러니, 바바사 헤브 아마르 라헤(바바사 헤브여 영원하라)!라고 외칠 수 밖에 없겠지. 그 날, 승리의 그 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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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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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악한 부채
후투족과 투치족이 인구를 거의 양분하고 있는 르완다에서, 1994년 4월부터 6월까지 후투족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정규군과 인터함웨 (함께 죽이는 사람들이라는 현지어) 용병들은 몇천명의 후투족을 포함, 투치족 100만영 이상을 살육한다. 이유는? 바퀴벌레만도 못 한 것들에 대한 인종청소다 (이건 혹시 기회가 되면 “호텔 르완다”라는 영화를 만나기로 하고..) 이 사태는 7월 투치족의 애국전선군의 반격에 의해 진정되고, 이들로 구성된 새 정부가 수립된다.

그런데, 새 정부는 지난 정부가 외국 (특히 프랑스)로부터 차입한 차관에 대한 상환을 요구 받는다. 이 부채의 대부분은 전정권의 부패와 자신들을 도륙하려고 구입한 중국제 칼을 구입하기 위해서였음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이 주도하고 있는 채권단은 부채상환 중지 요청을 보기 좋게 거절했다.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르완다의 농부들, 모진 고문과 학살에서 기적적으로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동족을 죽이는데 든 비용을 고스란히 갚느냐고 “매일 등골이” 휜다. 에릭 투생이 처음 사용했다는 “추악한 부채”의 용어설명이 가장 적절한 한 예이다.

몇 년 전 몽골을 여행한 적이 있다. 밤늦게 도착한 공항에서 수도 울란바트르의 중심가로 이동하는 국도, 미니버스는 곳곳에 패인 아스팔트 도로 덕분에 마치 놀이공원에 온 듯 불규칙적인 춤을 추었다. “만일 정부관료들이 도로 건설을 위한 차관의 가로채기가 무자비하게 심하지만 않았더라도 도로 사정이 이렇게 나쁘지 않았을 것”이라고, 시니컬하게 얘기해 주던 가이드의 말을 들으면서, 그냥, 어디든 부패는 있겠지 하고 씁쓸해 한 경험이 있다.

흔히 경제 패권을 기준으로 지구를 나눈다면 북반구와 남반구로 나눌 수 있다. 세계 190여개 국가 중 소위 제 3세계라고 지칭되는 후진국들 120여개국은 대부분 남반구에 몰려 있다. 그리고 오늘 날 이 120여개국의 대부분은 많게는 국가 일년 예산의 40%이상을 외국으로 빌린 부채의 원금 및 이자를 갚느냐고 허덕대고 있다. 교육, 위생 등 사회부문의 비용은 고작 4%에서 15%에 불과한데 말이다. 지난 20여년동안 갈수록 높아져 가는 이 부채상환의 수치는 이 지역에서 주력하고 있는 농산물 가격은 해마다 폭락을 거듭하고 있는데, 이들이 사 들여야 하는 공산품가격은 최고 6배나 폭등하면서 부채를 갚기 위한 차관도입이 반복적으로 자행(국가적인 “카드깡” 사례다)되고 있으며, 그나마.. 정권을 잡고 있는 자들이 이렇게 도입된 차관의 “삥땅”까지 감안해 보면, 아마 세계은행의 인류애적 자비심이 발동되지 않는 한 해당 국가들의 국가파산은 뻔한 이치일 것이다.

특히나, 이들 차관은 부채상환, 그리고 도로, 통신, 항만등 사회간접자본에의 투자에 국한되어 있는데, 편협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그건 그 도로 등의 시설을 이용하게 될, 현지외국자본 법인과 “삥땅”으로 기업 등을 소유하고 있는 권력자와 주변 “파리”들을 위한 것이다. 만일, 채무국가에서 국민의 교육, 의료, 위생 등에 차관을 도입하겠다고 하면, 세계은행은 바로 “미쳤다”라는 답변을 줄 것이다.

지불능력에 따라 이자율이 변동되는 이 만고진리의 법칙에 따라 점점 더 조건이 악화되는 이 추악한 부채를 벗어나는 길은 당장 아무런 방법도 없어 보인다. 한가지 할 수 있는 일은, 개인처럼 “내 배를 째라”하고 드러누울 수밖에 없는데, 그게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시달려야 하는 사채업자의 잔혹성이 국가간에서도 매양 한가지이므로, 용기를 낸 국가가 모든 재화를 자급자족하고, 관광을 포기하고도 살 수 있으면 모를까, (멕시코의 미국자본 국유화, 쿠바의 사례등은 이미 아주 오랜 전설일 뿐이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고, 괘씸죄에 걸려 더 혹독한 차관 및 상환조건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네슬레
어디 네슬레 뿐이겠나, 글러벌 기업, 소위 세계 100대 기업, 대부분 북반구에 본부를 둔, 기업성공의 수많은 신화를 창조하고 미래인류에의 기여을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고 있는 많은 기업들에 대한 얘기겠다만....

커피는 에디오피아의 주된 수출품이다. 에디오피아 9개주 정부 중에서도 케냐와 수단의 국경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SNNPR Southem Nations, Nationalities and People's Region 주 주변의 시다모 지역 및 카피 지역을 떠올려 보자, 갈색콩에 커피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이 “카피”라는 지명과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 가? 이 지역은 아열대지역이다. 즉 기름진 황토와 적당한 강수량, 그리고 녹색의 수풀은 강의 언저리 흙들을 쓸어갈 정도로 물결이 센 강물이 옆에 있으며, 참마, 수수, 콩 등이 풍성하게 쌓여 있는 곳이다. 커피는 이 지역에서 아주 귀한 손님을 대접하는 의례이다. “커피의식”이라는 이 의례는 직접 볶은 콩을 정성을 다해 손님에게 대접하고, 손님은 거푸 세잔의 이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예의에 벗어나지 않는다.

에디오피아에서 생산되는 커피의 95%가 가족중심의 소단위 농사법에 의해 생산되는 것을 전제하면, 2004년 3월, 100년만에 처음으로 발생한 원두값의 폭락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는 뻔한 일이다. 200년에서 2003년까지 원두 1Kg 당 3달러에서 86센트로 떨어졌다. 1990년 전 세계의 커피 생산국들은 110억달러의 원두를 수출한다. 그 해, 이 원두를 가공한 커피재벌들의 판매액은 300억달러였다. 2004년 원두수출은 양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55억달러로 감소하였는데, 도리어 소비자들은 전세계에서 700억달러를 커피소비에 사용했다. 그럼 네슬레, 사라 리, 프록터 앤드 갬블, 치보, 크래포트 등의 5대기업이 벌어들이는 돈은? 그럼, 2000년에 한 푸대에 현지 화페로 670비르에 팔던 커피를 2004년에 150비르로 팔게 된 농민들의 삶은?

많은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에는 북반구에서 금지된 광고판을 볼 수 있다. 백인 산모들이 아주 해맑은 얼굴로 분유를 아이에게 먹이는 장면인데, 이 광고를 본 많은 아프리카 여성들은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 “유럽여성”과 같은 짓거리를 함으로써 은연중에 스스로 신분상승의 꿈을 꾼다. 모유를 중단하고 없는 돈 긁어가며 몇 숟갈 사들인 분유는.. 비위생적인 물에 섞여 아이에게 공급됨으로 해서 결국 도리어 영아 사망률을 부추긴다. 이건 지구 어디서나, 몸매를 중시하는 우리 여성들의 지고한 의식과 네슬레의 전략과 일치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출산과 함께 분유먹이기 실시, 그리고 퇴원시 기념으로 주는 우유병에 의해 아이들은 아무 염려 없이 네슬레 분유의 건강한 보호아래 튼튼하게 자라간다.

몇 년 전, 파키스탄의 언론에서는 카라치나 물탄, 라호르, 이슬라마바드, 라왈핀디 등의 공공상수도를 통해 공급되는 식수가 얼마나 비위생적이고 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지를 대대적인 캠페인을 통해 국민들에게 알렸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기준에 합당했던 이 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부추김을 받은 국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감내해야 했다. 그런데 한편에서 이 비위생적인 식수에 국민들의 건강이 잠식되어 가고 있는 이 곳에 네슬레의 “퓨어 라이프”라는 낱개들이 생수가 신제품으로 시장에 나왔으며,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이익의 극히 일부만이 국내 현지 법인에게 돌아가고 현지화로 벌어들인 나머지 이익은 중앙은행을 통해 달러로 환전되어 본국으로 송금되면서 말이다. 물론, 이 캠페인과 네슬레사는 아무런 연관도 없고, 관계 지어지지 않았다.

식품회사 뿐인가? 2004년 8월에 독일의 이노테라포이틱스라는 거대 다국적 기업은 신생아들의 호흡곤란을 치유하는 “스티코시디”라는 천연가스에 대한 특허권을 발동했다. 이 특허권이 없던 시절, 스위스의 의사들은 같은 질병에 대해 같은 가스를 처방하였는데, 환자들은 보통 4 -5일의 치료기간동안 치료비 100유로내외로 치유가 가능했다. 그런데, 특허권이 발동된 다음 같은 증상을 치료함에 있어, 독일기업이 팔고 있는 “이노막스”라는 상용화된 치료를 위해서는 스위스 소아과 병동에서 청구되는 치료비는 평균 2만유로를 웃돌고 있다.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 가?
“수치의 제국 L'empire de la Honte” 이란 원제를 가지고 있는 “탐욕의 시대”는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한 경력이 있는 스위스 태생의 장 지글러의 최근 저서이다. 프랑스 혁명의 간단한 소개를 시작으로 하는 이 책은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빈궁과 기아, 그리고, 국가의 몰락을 신흥봉건주의 - 즉 오직 극단의 이익추구의 기업의 지상과제를 충실히 지켜나가고 있는 다국적 기업 -과 그의 이익을 대변하고 하수인인 된 세계은행 등의 자본, 그리고 그의 하수인인 제 3세계 국가의 절대 권력들의 파렴치한 행위로부터 기인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와 분석.. 그리고 저작의 양심을 들어 집필한 책이다. 이 책 소개에 앞서 장황하게 인용 또는 편집, 그리고 나름의 내 경험들을 먼저 소개한 것은 이 책에서 보여 주고 있는 그 다양한 사레들은 어쩌면 이 짧은 요약글들에 의해 충분히 짐작되고도 남을 비슷한 경우들이기 때문이다. 

“수치”는 부끄러움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마지막 자존심, 즉 “수치”를 버릴 수 있는 동기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의 경우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아니 끝없는 탐욕의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인간이고 지랄이건 간에” 자신의 목표에 방해되는 모든 것을 잔인하게 뭉갤 수 있을 때 나올 수 있을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하도 배가 고파서, 어떤 방법으로도 자신과 아이들을 영양결핍, 아니 굶주림에서 벗어 날 방법이 없을 때, 최후의 수단, 모든 수치심을 버리고 도시 쓰레기처리장의 쌓여있는 폐품들과 함께 놓여있는 부패직전의 “음식물 쓰레기”를 조심스럽게 분류하여 가져 온 양동이에 담는 경우이다. 그렇다면 이 수치의 제국은 이 두 가지 경우 중에 어떤 집합에 포함시킬 것인가. 되물을 필요도 없이 바로 인간임을 스스로 포기한 다국적 기업군, 남의 불행이 자기의 행복이라는, 자신들이 수치를 깨닫고 제 정신으로 돌아 온 들, 그 틈을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기업군에 의해 결코 세계는 아름다워지지 않는 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는 “신흥 봉건주의-다국적기업”들을 얘기한 것이다.

제 1부.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유토리아를 꿈꾸는 사람들/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가난/제국의 존재이유, 전쟁과 폭력/죽음으로 내몰린 국제법/제국과 성전주의자들의 야만성), 제 2부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드는가?(부채, 그 추악한 악성 종양의 실체/기아,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치), 제 3부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부유한 전쟁과부, 알렘 체하이에/커피가격의 폭락,시다모의 부조리한 녹색기아/연대,저항의 또 다른 이름) 제 4부 브라질, 혁명을 계속된다(롤라, 가난한 노동자에서 혁명의 지휘관으로/민주혁명의 핵심사업, 기안 제로 프로그램/외채와의 전쟁) 제 5부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 되는가?(신흥 봉건제후, 거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유전무죄 무전유죄, 가진 자가 이기는 세상/유전자 변형생물, 불공정 경쟁의 대표주자/베베이의 파렴치한 문어, 네슬레왕국/노동조합은 안돼/돈 없으면 마실 수 없어요/후안무치한 제후들/인권도 좋지만 시장이 더 좋아!)로 구성된 이 책은 이런 세계화, 다국적 기업, 세계은행들이 연합해 제 3세계 국가들을 아니, 이익만 전제된다면 어떤 지역, 어떤 국가라도 굶주리게 만들 수 있는 제도적인 프로세스를 면밀하게 증언한 보고서이다.

그렇다. 앞 서의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 인류가 북반구의 잘나가는 국가들을 제외한다면 종내 굶주릴 수 밖에 없는 결론을 가지고 오는 사례들이다. 인도의 라디크지역 처럼  자연이 무상으로 주던 모든 생필품들을 자기도 모르게 “돈”을 주고 사야하는 현실로 바뀌고.. 그 현실은 날이 갈수록 높은 수치로 인상되는 가격들로 인하여 자신도 모르게 궁핍생활자가 되는 과정의 세계화 모형이다.  

예를 들자면,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가 2006년에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상세한 통계까지 곁들이면서 당시의 생산력을 고려하면, 유전자변형식품 없이도 별 문제없이 120억명을 먹일 수 있다고 전망했다. “별 문제없이”란 성인인구 1명당 매일 2,700칼로리를 충족한다는 것인데, 당시 세계인구는 고작 62억명으로 추산되고 있던 즈음이었다. 그런데 이 자연적인 식량의 혜택을 부인하고 굳이 유전자 변형 식품을 마치 굶주리고 있는 인류의 숙제로 풀 수 있다고, 더 크고 많이 열리는 소위 “개량종”을 팔고 있는 회사들은 이 자연의 법칙처럼 징그러운 것은 없을 것이다. 종자에 대한 기술이전료, 특허료로 가만히 앉아서 수억의 이익을 남기고 있는 이들에게 자연법칙이라는 것이 가당치나 한 소리인가?

작년에 미얀마여행을 준비하면서 얻은 정보 중에 미얀마 북부지역에 말라리아 등의 (비단 미얀마뿐 아니라 아프리카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사소한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입한 중국제 약을 처방한 환자들이 도리어 더 빨리 죽어가는 “짝뚱치료제”에 대한 것이 있었다. 왜? 약마저 가짜가, 그것도 아주 생명에 치명적인 가짜약들이 이렇게 팔릴 수 밖에 없는 가 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인류의 건강을 위해 24시간 잠들지 않는 많은 제약회사들이 빈민층들이 걸리기 쉬운 질병들을 위해 투자한 약소한 신약 개발비도 구매력없는 궁픽으로 인해 건질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부자들을 위한 신약-주름제거제, 부호들의 건강증진, 그리고 다이어트등의 약-에 국한해서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으며, 몇 배에 해당하는 이익을 건져 올리고 있으니 어찌 그 사소한 신약에 비싼 인건비를 낭비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이렇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니, 이렇게 21세기에 들어 법치국가의 틀 속에서 모든 국가는 식민지의 굴레를 벗어나고, 모든 문화는 평등하며, 인권은 결코 훼손될 수 없다고 주창하고 있는 이 시기에, 여전히 한 해 기아와 상관관계를 가진 질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3,600만명에 달하고 수천만명이 이미 북반구에서 정복된 전염병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제가 없어 죽어가고 있고, 900만명의 어린이가 오염된 물에 의해 목숨을 빼앗기고 있다. 좀 더 자극적인 통계를 인용하자면,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 어린이 한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고 있으며, 비타민 A 결핍으로 인해 4분마다 한 명씩 시력을 잃고 있다. 62억명인 이 별에서 8억 5,400만명이 만성적인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이 똑같은 시기에 다국적기업과 권력자들을 보호하고, 세계화 질서을 유지하며, 자국 기업의 진출을 위한 군비비출 총액은 7,8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온갖 생색을 다 내며 가난한 국가들에 대한 부채당감은 고작 300억달러이고, 기아 퇴치 프로그램에 190억달러, 난민정착에 50억달러를 사용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책을 읽으며 다 옮길 수 없는 각종 증거들을 대하면서, 간혹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 현장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에서 부끄럽게도 눈물을 비쳐야 했다. 단편적으로, 아니 그냥 피부적으로 느끼면서 지나쳤던, 이 지구라는 별의 다른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거듭 말하지만,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잔인 할 수 있는 가라는 질문에 몸서리 쳐 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조국 한국은 어떠한 가? 과연 이 빈곤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고 자신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린 숙명주의자들도 아니고, 시민사회가 성숙해 있고 하니 절대로 염려 없다고 안심하고 있을 것인가? 민영화, 중산층의 몰락, 그리고 갈수록 버겨워 가는 이 세태에 그냥 그대로 남미나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가 아닌 한국에서 태어난 이 “우연적 탄생”의 축복에 만족하고 있으면 다행인가 말이다.

잠시 감상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해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이 몰지각, 본문 속에서 인용한, 그리고 내가 다시 인용할 수 밖에 없다. 칸트가 말한  “온전한 삶에 대한 귄리, 인간이 인간이라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 인각에게 속하는 권리”, 이 권리를 구현하기 위해서 지식인들의 행동은 레지 드브레의 표현대로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민중을 현혹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 시키는 것이다”일 것일까? 아니면 이 책을 번역한 분이 후기에 밝힌 대로 이 책에서 소개(?)된 기업들의 제품들을 불매하는 운동이라도 벌어야 하는 것일까?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인데.. 그 용기가 과연 어떤 무늬를 띄고 드러나야 하는 지 전혀 감 잡을 수 없다고 넋두리 하는 것은, 내가 깊게 물들인 개인주의와 냉소주의에 빠져있는 왜소한 독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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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탐욕의시대] 우리에게는 수치심의 권력이 있다!!
    from Green Monkey Blog** 2009-02-06 14:12 
    [탐욕의시대] 우리에게는 수치심의 권력이 있다!! '수치심의 권력'에 조롱당할 수 밖에 없는 명텐도MB정권 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 원제 L’empire de la honte 장 지글러 (지은이), 양영란 (옮긴이) | 갈라파고스 게을러서 뒤늦게 읽기 시작한 책 . '다시 연대만이 희망이다'란 제목의 말머리부터 심상찮은 포스가 느껴진다. 저자인 장지글러는 1776년 신생 미합중국 최초의 주 프랑스대사로 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