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글쎄, 억지같다만, 월남전이후 이라크전까지 세계도처에서 연이은 실패 속에서도 가면 갈수록 더 심해지고 오만해 지는, “태양이 지지 않는 영국”의 식민지시대보다 더 악랄하고 비신사적인 미국의 제국주의로 인해, 정나미가 떨어지는 사례가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겠으나, 내부의 자성과 비판 속에서도 여전히 그 탐욕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러한 때, 이미 국가간 경쟁체제에서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신자유주의가 국경을 초월한 제국적 이익에 몰두하면서, 이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한 스스로의 착각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한, 미국의 계속되는 악수를 접하면서, 불쌍하다고 혀만 차고 있을 수 밖에 없음은, 이들의 비행(非行)여파가 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꼭 새우등의 통증이 이 아시아까지도 흘러 들어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하다”는 어쩜 미국이 가지고 있는 건전한 사회적 기능, 끊임없이 견제하고, 제언해 되는 일정한 그룹핑이 되어 있는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게 미국을 움직이는 것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지는 미지수이고,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회의적이긴 하지만,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부러움은, 반대를 위한 반대, 선언적 의미로 목청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근거와 기록, 그리고 통계, 마지막 제언까지가, 적어도,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덕망 때문이다.
 

이미 앞 서 나갈 만큼 나아가, 이젠 어떻게 되돌릴 길이 없어 보이는 세계화, 신자유주의에서 진보적 시각에서의 사회 개혁을 얘기하고, 잃어버린 케이즈식 경제이론을 환기시키는 의도는 다름아닌, 좀 더 풍요의 사회, 일인당 GDP의 산출보다 소득의 중앙값을 상승시키는 노력을 통해 전계층이 두루 만족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상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다. 
 

왜 복지국가의 정치가 필요한가에 대한 저자의 강변을 증명하기 위해, 20세기 초부터, 1970년때까지의 미국의 경제사회와 관련된, 정치사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이념대결로부터, 뉴딜정책의 성과와 새로운 뉴딜정책에 대한 그리움을 보여 주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한번쯤 되 집어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 후 시대, 앞 장들의 내용에 비해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서둘러 결론을 내어 버린 것은, 아무리 1장에서 이미 결론을 제시해 주었다고 할지라도 좀 당황스러웠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은 여전히 헷갈린다. 어떤 것이 진정한 보수고 진보라는 것일까? 인종, 종교, 지역색, 그리고 빈부, 세금정책, 사회보장제도, 평등한 사회의 진정한 추구는 어떤 공감대에서 추진될 수 있을까? 만일 여타국가들이 이러한 문제를 고민하고 개혁하려고 한다면, 이미 시장경제에 국가 개입이 구조적으로 어렵게 되어 있는 미국보다는, 어찌보면, 훨씬 작은 노력을 통해서도 충분히 도달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이 인류복지가, 과연, 어떤 작은 나라에서도 쉽게 실현이 가능하지 않은 것은, 이 “희망”은 이론일 뿐이고, 이 “희망”이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 집권층, 재벌, 지식인 등의 소위 “파워 엘리트”들이 자기들이 선점하고 있는 기득권과 기대이익을 일부 덜어내야 할텐데, 아무도, 어떤 경우에서도 그 욕망을 자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암울한 패배의식 때문이다. 
 

답은 나와 있다. 현란한 문장과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증빙자료가 아니라도, 국민을 위하고, 국민을 웃게 하는 정책이 무엇이라는 것은, 누천년 전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매번 같은 지적이 반복되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라, “안해서” 이다. 
 

한번쯤 지금 나를 둘러싸고 있는 논쟁에 대해 슬쩍 들여다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독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좀 스스로 낭만주의(?)의 잔류이기를 원하는 나는, 저자가 책 속에서 언급한 올리버 스톤의 “월스트리트”나 “조지 클루니”의 굿 나잇 앤 국 럭과 더불어, 도금시대 등 공항기의 미국사회에 대한 비판이 짙게 묻어 있는 로버트 앨트먼감독의 “캔사스시티”와 9.11테러이후 미국인들의 허상을 카메라로 전한 빔 벤더슨 감독의 “풍요의 땅”등의 영화나 떠올리고 말았다.

이 책을 읽으며 간간히 웃을 수 있었던 것은, 1979년에는 상위 0.1%의 소득이 전체소득의 2.2%차지하던 통계가, 2007년에는 7%이상의 점유률을 보이고, 거품경제라고 불리지만, 갈수록 어려워 지는 불투명한 미래를 자기자식들에게는 넘기지 않겠다는 인기학군으로의 이동에 의한 부동산 폭등, 인종이나 사회적 편협함, 그리고 국가안보를 미끼로 불안감을 조성하는 정치적 술수에 얼룩진 미국사회의 경우를, 슬쩍 내가 아는 어떤 나라들에게도 대입을 시켜 보아도 역시 결과는 마찬가지로 나오는 현실 때문이었다.


정말 이 깊어가는 골을 채워 줄, 적어도 최소의 인간의 권리를 지켜주고, 인간 위에 인간이 없다는 “신기루”가 현실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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