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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요즘 시대를 사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국인은 이것이 문제야' 또는 '한국은 이래서 안돼'라는 말을 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그 만큼 우리는 우리의 문제에 대해 많이 들어왔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제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해왔던 반성이 적극적이지도 성실하지도 못했다는 부끄러움이 든다. 우리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박노자는 그 해답으로 맨 먼저 일제식민지 시대를 든다. 일본의 식민사관 주입과 한국인으로서의 열등의식, 왜곡된 민주주의 이식과 천민자본주의의 시작. 이 모든 것이 일제 식민시대 시작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방 후 한국의 문제 해결 태도에도 있다. 일제의 청산에 국민의 의지를 모이기는 커녕 오히려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해방 후 정권의 핵심은 친일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러한 왜곡된 근대의 시작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곳곳에서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잘못된 시작은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골이 깊어만 가는 것이다.
이렇게 잘못된 근대의 출발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군대이다. 박노자는 한국인의 폭력성, 맹종성은 군대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한다. 군대식 서열주의, 상명하달의 맹종성, 폭력지향적 문제해결법 등 군대가 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특히 여성으로서 느끼는 군대의 폐해 중의 하나는 군대내에서 벌어지는 음담패설의 영향으로 생기는 여성에 대한 냉소주의, 소비주의적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군대에서의 폭력습관은 후에 상습적인 가정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 범람하는 위같은 군대문화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는 양심적 병역 거부권을 하나의 기본 인권으로 공식적으로 인정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즉, 종교적·도덕적인 근거를 들어 무기를 접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보조간호나 호스피스 등의 봉사활동으로 군대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군대에서도 반인륜적 명령은 거부할 권리를 주어야 하며, 부대 내 하급자에 대한 폭력을 일반 폭력 행위와 똑같이 처벌하는 엄격한 규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욱 근본적인 군대문제 해결방안은 현재의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군대는 군대대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고 학생은 학생대로 학습에 전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은 우리에겐 정말 생소하기 그지없다. 군대를 안가도 된다는 것을 우리는 한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우리가 얼만큼 국가의 세뇌정책에 깊이 빠져들어 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것은 나라의 거대 언론들이 이러한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고 군대징병제를 당연시하는 풍토만 조성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성숙해가는 비판정신과 시민운동은 비판의 '마지막 성역'으로 남아있는 병역문제를 앞으로는 더욱 진지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군대문화로부터 기인되는 한국 특유의 맹종의식은 한국사회의 축소판 격인 대학사회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교수는 학점을 볼모로 학생들에게 무조건의 충성을 요구하고, 학생들은 학생들간의 서열을 정해놓고 그것을 엄격히 한다. 한국대학에서는 학문의 추구는 온데간데 없고 '규율'과 '복속'을 가르치고 있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이루어지는 교수임용은 조교나 시간강사들의 노예적 생활을 강요하고, 전도된 정의의식은 시험시 부정행위를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애초부터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지도 못했고, 진정 학문을 추구할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은 학생들에게 더 큰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무리일까.
근래 많은 한국의 중산층들이 해외로 이민을 가고 있다. 선진 교육과 좋은 자연환경을 찾아 떠나는 것일테지만 그들의 이민 이유에는 이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전도된 사회가치에 실망하고 결국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채 한국을 져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변해야 한다면 지금이 그 때이다. 박노자는 우리에게 그런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