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05 -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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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이 책을 처음 만났는지 이젠 기억에 남아 있질 않았다.

분명 한때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많은 소설들에 즐거움을 느끼며 빠져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

30년에서 35년 전 쯤이 아닐까 싶다.

누른 색깔의 갱지 같은 느낌의 종잇장과 비닐 커버가​ 씌워진 표지는 시간이 흐른 만큼 표지를 둥글게 휘게 만드는 ... 아마도 습도때문이었겠지? 하지만 그것은 마치 종이는 시간이 흐르는 만큼 키가 자라나는데 비닐커버는 그대로여서 그 비닐커버 안에서 자라난 종이가 몸이 휘어지는 느낌이었다 ... 그런 책이었던 듯하다.

회색 뇌세포를 돌리며 콧수염을 다듬는 포와로에게 열광했고, 미스 마플에게서 편안함도 느꼈었다.

십여 년 전인가부터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을 한번 쭈욱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언뜻 손을 내밀지 못 했던 것은 어쩌면 오래된 번역의 책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또 너무 오래된 책이라 읽는 재미가 달라져 버린 내 입맛에 걱정도 한 듯하다.

이번 황금가지 판​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은 어떤 면에서는 표지 디자인 때문에 강력하게 끌려서 구입하게 된 경우가 아닌가 싶다.

클로즈업된 듯한 인물의 흑백 표지에 강렬한 붉은색의 제목.

마치 아주 오래전의 흑백영화와 같은 느낌의 포스터라고 할까?

역시 사람의 눈길을 끄는 디자인은 중요하고도 중요한 일이란 생각을 들게끔 해준다.

​이 정도 감각의 디자인이라면 분명 모으는 이들도 상당하지 않을까?

​사실 너무나 오래전에 읽은 여사의 소설들이라 기억은 잘나지 않지만 ... 다시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작가의 작품 속에 담겨진 수다스러운 동네 주민이나, 범인을 직접 경찰에 넘기지 않고 마지막 결정을 범인이 내리도록 남겨두거나,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범죄만을 해결한 채 그 사건을 경찰에게 알리지 않는 ... 그랬던 것 같은 여사의 작품들이 몇 권 생각이 났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서도 작은 마을에서 서로의 집을 왕래하거나 부녀 모임을 통해서, 그리고 가득한 호기심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탐구하면서 누구네 집에 무슨 일 있고, 이런저런 일들은 그렇고 그래서 생겨난 것이라고 추리를 하는 캐롤라인의 모습에서 미스 마플의 소설들이 언뜻 언뜻 떠오르고는 했다.

물론 캐롤라인이 미스 마플처럼 범죄 사건을 추리해내고 범인을 추려내거나 그러진 않지만 아니 못하는 것인가? 그리고 미스 마플만큼 올바른 추리를 펼쳐내는 것은 아니며 상당히 공상의 상상력이 다각도의 호기심으로 수다에서 얻은 정보들을 나름의 체계로 나래를 펼치곤 하지만 그래도 가득한 호기심과 작은 마을의 할머니 같은 모습에서 그리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

동네의 친한 사람들과 이러저러한 소식을 주고받으며 이런저런​ 소문을 만들어내기도 하는, 사실 실제 생활에서 동네의 그런 주민이라면 인상 찌푸릴만한 사람이겠지만 소설 속에서의 그런 모습들은 참으로 사랑스러웠다.

아니 즐거움 가득한 사람 옆에 있을 때 나에게도 전해지는 보글보글 거리며 끓어오르는 자잘한 행복감이 전해졌다고 할까?

어찌 보면 셰퍼드 박사는 참 행복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캐롤라인이 그의 누나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에게 가족이란 나이가 들어서는 같이 모여 살 이유도 없고, 가족의 일로 모인다 하여도 서로 그리 말이 많지가 않다.

​일방적으로 말많은 사람이 언어를 입에 틀어놓을 뿐인 상태가 많고 다른 사람들은 제 할 몫만 하고 마는 그런 가족의 모임이라 그리 정겨운 느낌의 모임은 아닌 것 같고 그냥 어쨌든 가족이 모였다는 그 하나에 더 촛점을 두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캐롤라인 누이와 살아가는 그 자체가 몹시도 부러웠다.

호기심에서든 상상력이 넘쳐나서든 하루 중 식구들이 모여 잠시나마 이야기를 가지는 그런 시간을 가진다는게 참 부럽고 따뜻하게만 느꼈졌다. 절대적으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서술 트릭으로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사실 서술 트릭이라는 용어?도 안지가 요 며칠 전의 일이라 예전에는 그런 것도 모르고 분명 읽었을 것이다.

이번에 읽으며 왜 이 소설이 서술 트릭인지를 마지막에서야 알게 되었다.

마지막에 나직하게 되짚어주는 묘사에서 앞 부분에서는 그렇게 밖에 내가 인지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을 ... 작가의 부연 설명도 없는데 단지 이렇게 했다 라는 하나의 문장을 읽고는 나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고 분명 이런 직업군이 사람이 그 상황에서 할만한 이런저런 행동을 했을 것이다 라고 스스로 일러주며 머릿속에 그렸다.

분명 여사는 독자가 읽으며 그리 느낄 것이란 계산으로 썼을 것이고 나는 독자로서 그렇게 받아들였으니 나는 여사의 즐거운 독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범인이 밝혀지고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게되었을 때는 아주 멋진 추리에 대해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실로 가슴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오래전 자동차와 전화기도 있지만, 귀족이란 이름과 하녀라는 이름도 존재하던 시절의 영국의 대저택에도 들어가 보고​ ... 고풍스러운 소설을 즐거이 읽었다.

​천천히 시간나는대로 여사의 다른 작품들도 한 권씩 접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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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 - 삶의 관점을 바꿔주는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찾은 인생의 해법!
변지영 지음 / 비즈니스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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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불안을 느끼지 않은 적이 과연 있었을까?

어렸을 때는 숙제를 미처 하지 못해 불안했고, 체육복을 챙겨가지 않아 불안했다.

놀러나가 옷을 더럽혀서 야단맞을 것을 불안해했고 성적표의 점수가 불안하게 만들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최소한으로 나에게 주어진 그래서 내가 해야 한다고 밖에서 만들어 놓은 ​어떤 결정들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그렇게 늘 불안하게 떨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역할이란 것이 늘 그 시간대별로 나에게 주어졌는지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모범생이어야 했고, 집에서는 착한 아들에 말 잘듣는 ​남동생이어야 했고 좋은 오빠여야 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려야 했으며 할머니의 귀여운 손주가 되어야 했다.

나란 사람은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가진 능력에 비해 너무 많은 역할이 내게 주어진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함부로 나서서는 안되고 아무 데서나 떠들어서도 안되며,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사람은 도와주어야 하며 형이나 오빠라는 역할을 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어린 동생들을 잘 이끌어야 했다.

어쩌다 그런 일들을 한 나에게 주어지는 칭찬들에 활짝 기뻐하기도 하였지만 또 한 편으로는 칭찬받지 못하는 나를 불안해했는지도 모르겠다.

사회라는 ... 인간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그 세계 속에 존재하는 질서에 걸맞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혹시 내가 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으로 그렇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인간 생활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작가는 말을 한다.

지금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불안은 단순히 노후에 대한 불안, 미래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원하며, 어떻게 살아갈지' 같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 단계는 생략한 채 정해진 기간 안에 과제를 완수하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 온 삶의 후유증이며 왜 해야 하는지 모르면서 항상 뭔가를 해야만 했던 ​무수한 날들의 보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어떤 삶을 살지를 고민하기 보다 그냥 하루를 주어진 만큼 불안해하면서도 어찌어찌 그냥 되는대로 살아왔기에 지금 그 대가로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흔히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나라는 말을​ 우리는 아주 쉽게 한다.

꼬마들에게 넌 누구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꼬마들은 자기 이름을 말한다.

자기 이름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학교에 진학을 하면 아이들은 어느 초등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라고 하고 ...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어느 학교를 다니고 어떤 직장엘 다니며 키가 얼마고 ... 이런 것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 질문이 되면 그때부터는 철학이 내 삶에 스며들어오는 느낌을 강렬히 받게 된다.

스님들의 화두처럼 ... 너는 무엇이냐.

쉽게 아무렇게나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과연 나는 나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일까?

​작가의 말처럼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까 불안함을 느꼈다는 그 말에 큰 공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에 세월이 요구하는 계획을 따르게 되는 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보다 월등히 뒤떨어질 것 같은 불안감에 했다가​ 나와 맞지 않아 관둬버릴 때면 또 나는 저런 뛰어난 사람만큼은 될 수 없구나 하는 열등감에 휩싸인 불안을 처절하게 맛보곤 하였다.

그런 나에게 작가는 말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분리되어 불안을 일으키지 않고, 잇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게 하는 지혜에 한번 귀 기울여보자고 ...

나를 만나러 가는 여정을 쇼펜하우어의 숨결과 함께 하자고 작가는 내게 등을 두드려둔다.

책은 하나의 잠언집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게 그리 편집되어 있다.

"아직 나를 만나지 못한 나에게"의 원본이 실린 책의 행태를 잘 몰라 모르겠지만 작가는 쇼펜하우어의 저서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소품과 부록"에서 모두 발췌하여 10개의 장에 101가지의 이야기들을 담아 놓았다.

고등학생이던 시절 아마도 지나가는 말투에서 염세철학을 들었으며 쇼펜하우어의 이름도 들었을 것이다. ​

그리고 스무 살 무렵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음이 자랑스럽지는 않았지만 분명 고등학생 때까지의 삶보다는 사회가 내게 요구한 업무들이 훨씬 줄어들었을 때 나는 ​혼자 있는 그런 고독의 즐거움을 느꼈던 듯하다.

어두운 골방에서 나의 몸을 세상으로부터 따로이 격리시켜줄 것 같은 크기의 록음악을 틀어놓고 독서를 하며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즐거움을 맛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분명 겉멋으로 염세라는 단어의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저 혼자 느꼈다고 하면 좀 많이 유치할까?

아무튼 그때 염세철학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상 살맛 나지 않아 우울해하고, 좌절하며 ​고독에 몸부림치는 게 염세철학인 줄 알았고 누군가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에 나 이만큼 고독하단다 말하고 싶을 때 그때 인용도 하곤 했던 글귀들 ...

작가는 왼 편에 쇼펜하우어의 말을 담고 오른 편에 쇼펜하우어의 말에 대한 작가의 생각 내지는 풀이를 담아서 알기 쉽게 들려준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책이다.

한 편으론 그런 생각도 해본다 늘 들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펼쳐서 보는 작은 형태의 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양복 안주머니나 가방 한 귀퉁이에서도 그리 큰 부피를 차지 않는 형태의 책이라 늘 함께 하는 소지품 형태의 책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처럼 스토리를 따로 쭉 읽어나가는 책이 아니라 시집처럼 한 편의 시를 읽고 곱씹는 시간을 가지듯이 그런 책이기에 늘 몸에 지니고 다니는 싶은 그런 책이다.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서 자주 주기적으로 운동을 하듯이 그렇게 심리적 건강을 위해서도 이런 책과 주기적으로 훈련을 한다면 분명 마음에 어느 정도 평온이 찾아오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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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서 행복한 것들 ... 나란히 걸을 수 있어 행복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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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의 첫날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이안 옮김 / 열림원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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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의 고단함들, 고통스러움들 다 떨쳐버리고 한 번 떠나볼 용기가 없다면 책으로 한 번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쿠루즈로 세계일주를 ... 영화같은 소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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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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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씨에게 ...

오전 6시 15분 전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둘둘 걸쳐 입고는 이제는 제법 쌀쌀한 시월의 오전 속으로 걸음을 걸어봅니다. ​

당신처럼 동네를 시찰하려는 목적으로 그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

집 앞에 내다 놓은 쓰레기봉투를 보면서 당신이라면 봉투에 넘쳐나게 담긴 쓰레기들을 보면서 어떤 말을 하실까 생각을 해봅니다.

주차 구분선 안에 제대로 주차를 시키지 않아 다른 차의 주차를 방해하는 차를 본다면 어쩌면 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땅치 않은 눈길을 주시겠지요.

한 시간 여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치약을 가운데서부터 짜지 마라 ... ​사용한 수건은 잘 펴서 걸이에 걸고 ... 젖은 욕실화는 벽면에 세워 물기가 잘 빠지게 하고 ... 욕실을 나서기 전에는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으면 치워라 ...

어렸을 때는 그런 말들이 참 듣기 싫은 잔소리로만 들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낭비하지 말고, 다음 사람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조금만 더 자신이 수고하라는 말이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마라​, 이렇게 해라! 그런 말들이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잔소리로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아버지 방식대로 하지 않는 삶은 틀린 삶이라고 그렇게 너는 이걸 틀리게 한거야 라고 지적을 받는 느낌이 강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벌써 해는 동그랗게 떠오르기 시작하여 햇살이 눈부신 그런 시월의 아침입니다.

오베씨께서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리 못마땅해하셨던 것은 당신이 살아오신 그 세월 동안 익힌 그 관습과도 같은 습관들과 살아오면서 터득했던 예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 역시 아버지를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어렸을 때 가족이 나들이를 나가는 날이면 어린 마음에 너무나 좋아 늘 팔짝거리며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쯤이면 대부분 시무룩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종업원들에게 화를 내셨거든요. 식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질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투는 무척이나 투박하셨고, 퉁명스러워 그런 말투가 아버지의 입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기분이 안 좋아졌습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 그 종업원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란 걸 ... 식탁에서 머리를 빗는 행위는 비위생적인 행위라는 걸 깨우치게 된 나이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아버지께서 역정을 내고 나시면 괜히 세상과 싸움을 한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식당에서는, 아마도 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이었던 것 같은데 ... 뭔가를 주인아주머니에게 요구를 하였더니, 물론 주인아주머니는 들어라는 투로 말씀을 하셨겠지요. 고기도 안 시키면서 뭘 그리 달라는지 ... 그런 말을 지나가는 말투로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들의 귀에 당연히 들렸고​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으며 주인아주머니도 드세게 말투에 날을 세우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날이면 늘 내가 뭘 잘못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와 외식한 날은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끝없이 행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 일들 때문인지 ... 아버지께서 출장을 가시는 날 어린 나는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사람들과 싸우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그런 일들로 싸움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건 한참 나이가 든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생각하신 만큼에서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 옳지 않음을 지적하신 것이었고 ​사람들이 정도를 걷기를 바라신 것이겠지요.

오베씨도 그렇고 내 아버지도 그러셨고 말입니다.

세상을 향해 지적을 하고 옳지 못하다고 말을 하고 못마땅함을 늘어놓는 일은 참 쉬운 일입니다.

지금 내가 분명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베씨와 아버지처럼 스스로 지킬 것은 지키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만큼은 지키며 살자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가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오베씨가 오베씨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에 의해 몸에 밴 습관들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아버지에게서 숱한 말들을 듣고 자랐는데 지금도 가끔 치약을 짤 때면 자연스레 끝부터 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음성을 떠올리며 짜곤 합니다.

바쁜 일로 문 앞까지 운동을 구겨 신으며 뛰쳐나갈 때면  아버지의 말씀이 등짝에 찰싹하고 지금도 들려옵니다.

나 역시 그리 부유하지는 않은 1970년대를 어린 시절로 보냈다고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더 힘들었을 1940년대를 어렵게 보내셨기 때문에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몸에 검소함이 배여있었겠지요.

​그래서 아버지 역시도 아버지 때와는 다른, 자식들의 어린 시절은 훨씬 더 풍요로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식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어떤 두려움들도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풍요를 지키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냥 즐기기만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오베씨 역시 그런 거겠지요.

문법을 제대로 사용하여 말하지 못하는 젊은이나​ 운전도 제대로 하질 못하고, 일제나 독일제 차를 타는 사람들과 이해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이웃집 여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겁니다.

집이란 식구들이 편안하게 지내는 곳이니까요.

아버지 역시도 그러셨습니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바람에 어머니께서는 식사를 준비하시는 수고로움을 해야 하셨고, 나에게는 친구겠지만 가족들에게는 남임에 틀림없을, 남이 사용하는 수건이 아무렇게나 욕실에 걸려야 하며 가족이 사용하는 집에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 불편함을 아버지는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들 데리고 오지 말라고 말입니다.

집이란 공간은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 자식들이 부모의 경계에서 멀어진 바깥에서 술 마시고 돌아다니며 어떤 사건 사고에라도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하시며 어지간하면 일찍 일찍들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집에 와서 술을 마시라고 말씀을 하셨지요.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잔소리를 해주시고 말입니다.

​오베씨 ...

부인이 돌아가신 후 매일같이 자살을 꿈꾸셨습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시리게 가슴에 다가옵니다.

뭘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게 되었을 때, 삶의 목적이 사라진 후의 삶은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지겠지요.

그 시절의 분들은 아마도 그런 삶을 사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장남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했고, 가장은 가족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홀로 견뎌 내야 했으며 어머니는 또한 어머니의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기쁨의 전부인 ... 그래서 루네씨의 부인께서 그들의 아들이 바빠서 부모를 보러 오지 않는다는 말로 주변에서 쉽게 입에 올릴 불효 자식이란 이름을 막기 위해 그렇게 자기 자식들을 감싸는 일을 해야만 하는 부모의 역할.

그런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허망함 혹은 삶의 무의미함은 어떤 말로도 ​다독일 수 없겠지요.

오베씨 ...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세상 어느 구석에서나 닮은 모습으로 존재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못마땅함을 내비치시고 투덜거리시는 것도 그리고 퉁명스러움까지도 어쩌면 아버지들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늦게 떠올려봅니다.

이렇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보다 행복하고 평화롭게까지 살 수 있는 ... 그런 거창함을 가르치려 하신 것은 아닐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옳지 못한 일들에 대해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을 하며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며 살라는 아주 기본적인 가르침을 주시는 거겠지요.

오베씨와는 이제 작별을 하겠지만 오베씨는 아주 오래 가슴에 남아 있을 듯합니다.

​그로 인해 내 가슴에 아버지의 자리가 있듯이 그 한 옆에 오베씨의 자리도 생겨날 듯합니다.

읽는 동안 많이 즐거웠으며 때론 가슴 한 쪽이 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잔소리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베씨 ...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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