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베씨에게 ...

오전 6시 15분 전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둘둘 걸쳐 입고는 이제는 제법 쌀쌀한 시월의 오전 속으로 걸음을 걸어봅니다. ​

당신처럼 동네를 시찰하려는 목적으로 그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

집 앞에 내다 놓은 쓰레기봉투를 보면서 당신이라면 봉투에 넘쳐나게 담긴 쓰레기들을 보면서 어떤 말을 하실까 생각을 해봅니다.

주차 구분선 안에 제대로 주차를 시키지 않아 다른 차의 주차를 방해하는 차를 본다면 어쩌면 뭘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땅치 않은 눈길을 주시겠지요.

한 시간 여의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면서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치약을 가운데서부터 짜지 마라 ... ​사용한 수건은 잘 펴서 걸이에 걸고 ... 젖은 욕실화는 벽면에 세워 물기가 잘 빠지게 하고 ... 욕실을 나서기 전에는 바닥에 머리카락이 떨어져 있으면 치워라 ...

어렸을 때는 그런 말들이 참 듣기 싫은 잔소리로만 들렸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낭비하지 말고, 다음 사람이 사용하기 편하도록 조금만 더 자신이 수고하라는 말이었는데 말입니다. 

~하지마라​, 이렇게 해라! 그런 말들이 어릴 때는 왜 그렇게 잔소리로만 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아버지 방식대로 하지 않는 삶은 틀린 삶이라고 그렇게 너는 이걸 틀리게 한거야 라고 지적을 받는 느낌이 강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고 말았습니다.

샤워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십니다.

​벌써 해는 동그랗게 떠오르기 시작하여 햇살이 눈부신 그런 시월의 아침입니다.

오베씨께서 젊은이들을 보면서 그리 못마땅해하셨던 것은 당신이 살아오신 그 세월 동안 익힌 그 관습과도 같은 습관들과 살아오면서 터득했던 예의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나 역시 아버지를 그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어렸을 때 가족이 나들이를 나가는 날이면 어린 마음에 너무나 좋아 늘 팔짝거리며 걸음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쯤이면 대부분 시무룩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종업원들에게 화를 내셨거든요. 식사를 하고 있는 테이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일하시는 분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빗질 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말투는 무척이나 투박하셨고, 퉁명스러워 그런 말투가 아버지의 입 밖으로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기분이 안 좋아졌습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 그 종업원의 행동이 잘못된 행동이란 걸 ... 식탁에서 머리를 빗는 행위는 비위생적인 행위라는 걸 깨우치게 된 나이기도 하였지만, 그렇게 아버지께서 역정을 내고 나시면 괜히 세상과 싸움을 한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다른 식당에서는, 아마도 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이었던 것 같은데 ... 뭔가를 주인아주머니에게 요구를 하였더니, 물론 주인아주머니는 들어라는 투로 말씀을 하셨겠지요. 고기도 안 시키면서 뭘 그리 달라는지 ... 그런 말을 지나가는 말투로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가족들의 귀에 당연히 들렸고​ 아버지는 버럭 화를 내셨으며 주인아주머니도 드세게 말투에 날을 세우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은 날이면 늘 내가 뭘 잘못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와 외식한 날은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끝없이 행복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런 일들 때문인지 ... 아버지께서 출장을 가시는 날 어린 나는 아버지에게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와 함께 사람들과 싸우지 말라는 말을 했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그런 일들로 싸움을 하신 것은 아니라는 건 한참 나이가 든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께서 생각하신 만큼에서 옳지 못한 일에 대해서 옳지 않음을 지적하신 것이었고 ​사람들이 정도를 걷기를 바라신 것이겠지요.

오베씨도 그렇고 내 아버지도 그러셨고 말입니다.

세상을 향해 지적을 하고 옳지 못하다고 말을 하고 못마땅함을 늘어놓는 일은 참 쉬운 일입니다.

지금 내가 분명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베씨와 아버지처럼 스스로 지킬 것은 지키시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이만큼은 지키며 살자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듯합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가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그리고 오베씨가 오베씨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에 의해 몸에 밴 습관들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토록 아버지에게서 숱한 말들을 듣고 자랐는데 지금도 가끔 치약을 짤 때면 자연스레 끝부터 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음성을 떠올리며 짜곤 합니다.

바쁜 일로 문 앞까지 운동을 구겨 신으며 뛰쳐나갈 때면  아버지의 말씀이 등짝에 찰싹하고 지금도 들려옵니다.

나 역시 그리 부유하지는 않은 1970년대를 어린 시절로 보냈다고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더 힘들었을 1940년대를 어렵게 보내셨기 때문에 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몸에 검소함이 배여있었겠지요.

​그래서 아버지 역시도 아버지 때와는 다른, 자식들의 어린 시절은 훨씬 더 풍요로워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식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어떤 두려움들도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풍요를 지키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그냥 즐기기만 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오베씨 역시 그런 거겠지요.

문법을 제대로 사용하여 말하지 못하는 젊은이나​ 운전도 제대로 하질 못하고, 일제나 독일제 차를 타는 사람들과 이해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겠지요.

시도 때도 없이 집으로 찾아오는 이웃집 여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을겁니다.

집이란 식구들이 편안하게 지내는 곳이니까요.

아버지 역시도 그러셨습니다.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친구들을 데리고 집으로 오는 바람에 어머니께서는 식사를 준비하시는 수고로움을 해야 하셨고, 나에게는 친구겠지만 가족들에게는 남임에 틀림없을, 남이 사용하는 수건이 아무렇게나 욕실에 걸려야 하며 가족이 사용하는 집에서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야 하는 불편함을 아버지는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들 데리고 오지 말라고 말입니다.

집이란 공간은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 자식들이 부모의 경계에서 멀어진 바깥에서 술 마시고 돌아다니며 어떤 사건 사고에라도 휩쓸리지 않을까 걱정하시며 어지간하면 일찍 일찍들 집으로 돌아가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집에 와서 술을 마시라고 말씀을 하셨지요.

그리고 그다음 날에는 어김없이 잔소리를 해주시고 말입니다.

​오베씨 ...

부인이 돌아가신 후 매일같이 자살을 꿈꾸셨습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시리게 가슴에 다가옵니다.

뭘 위해 살아야 할지 모르게 되었을 때, 삶의 목적이 사라진 후의 삶은 너무나 무의미하게 느껴지겠지요.

그 시절의 분들은 아마도 그런 삶을 사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장남으로 가족을 책임지는 삶을 살아야 했고, 가장은 가족을 위해 어떤 어려움도 홀로 견뎌 내야 했으며 어머니는 또한 어머니의 삶을 살아야 했으며 그렇게 살아내는 것이 기쁨의 전부인 ... 그래서 루네씨의 부인께서 그들의 아들이 바빠서 부모를 보러 오지 않는다는 말로 주변에서 쉽게 입에 올릴 불효 자식이란 이름을 막기 위해 그렇게 자기 자식들을 감싸는 일을 해야만 하는 부모의 역할.

그런 역할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을 때의 허망함 혹은 삶의 무의미함은 어떤 말로도 ​다독일 수 없겠지요.

오베씨 ...

당신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주 오래도록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들은 세상 어느 구석에서나 닮은 모습으로 존재하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못마땅함을 내비치시고 투덜거리시는 것도 그리고 퉁명스러움까지도 어쩌면 아버지들의 사랑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아주 늦게 떠올려봅니다.

이렇게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을 보다 행복하고 평화롭게까지 살 수 있는 ... 그런 거창함을 가르치려 하신 것은 아닐 겁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규칙을 잘 지키고 옳지 못한 일들에 대해 바꾸어 나가려는 노력을 하며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해내며 살라는 아주 기본적인 가르침을 주시는 거겠지요.

오베씨와는 이제 작별을 하겠지만 오베씨는 아주 오래 가슴에 남아 있을 듯합니다.

​그로 인해 내 가슴에 아버지의 자리가 있듯이 그 한 옆에 오베씨의 자리도 생겨날 듯합니다.

읽는 동안 많이 즐거웠으며 때론 가슴 한 쪽이 아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잔소리해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베씨 ...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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