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하퍼 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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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앵무새 죽이기"가 하퍼 리 여사의 유일한 소설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여사의 새로운 소설이 55년만에 발표가 된다고 한다.

​55년동안 묵혀져 있던 원고는 "앵무새 죽이기" 보다 먼저 쓰여졌지만, 시간 상으로는 "앵무새 죽이기"로 부터 20여년 후의 이야기라고 한다.

그러니까 완전 다른 이야기의 소설 작품이 아니라 "앵무새 죽이기"의 그 가족에서 세월이 흐른 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한다.​

그 소설이 어떤 형식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아닐까 싶다.​

만약 마가렛 미첼 여사의 미발표 원고가 깊이 숨겨둔 금고 안에서 발견되었다면 ... 그 역시 반드시 읽어야 할 ​것이다.

"파수꾼"이란 이름의 새소설은 작가의 유명세만큼이나 2015년 7월 14일, 전 세계에 동시출간을 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소설 "파수꾼"에 대한 나의 호기심 혹은 관심은 새로운 소설의 내용에 대한 것이 전혀 아니었다.

참 이상하지 ...

​"앵무새 죽이기"를 이미 읽어본 사람이라면 분명 알 것이다.

그 소설이 얼마나 재미난 이야기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얼마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주인공으로 지니고 있는지를 ...

장담하건데 ... 이미 광고를 통해 접해보는 정도로도 파수꾼이란 소설은 도저히 재미가 없을 수 없는 그런 소설이란걸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파수꾼"의 내용보다 "파수꾼"에 얽힌 이야기들에 더 궁굼함이 많았다.

영화 "카포티"에서 주인공 카포티의 친구로도 화면에 등장하는 하퍼 리 여사를 떠올리며 ...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 이런 식으로 ... "앵무새 죽이기" 보다 먼저 쓰여진 소설이 55년이나 지난 후에야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 읽혀지게 된 그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돌아가셨을거라 생각했는데 아직 생존해 계시는 하퍼 리 여사의 이야기가, 참으로 궁금해졌다.

어떤 알지못할 사연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설적인 일인 것만 같았다.​

파수꾼은 26살의 ​진 루이스 핀치가 뉴욕에서 고향인 애틀랜타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을 한다.

1954년의 애틀랜타.

​애틀랜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무대이기도 하다.

미국의 역사에서 큰 부분에 해당하는 남북 전쟁​이 한 편으로는 노예 해방 전쟁 쯤으로 알려진데는 남부의 흑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거 같다.

​많은 영화들과 많은 소설에서 남부를 다룸에 있어 주요 사건이 인종 차별인 것은 그만큼 흑인들의 육체 노동력을 요했던 지역이며 그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기에 흑인의 인구수도 많은 증가를 함으로써 팽창해져버린 흑인들과 백인들의 문제가 어떤 형태로 드러난 것이 인종 차별이 아닐까 싶다.

그 옛날, 민주적이지 못하던 시절, 아프리카 대륙에서 흑인들이 노예선에 끌려 미국 땅을 밟을 때만 하여도 인종 차별의 형태로 흑인들을 바라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나 동물과 같은 매매의 가치로 여겨진, 그래서 인종이라고 여기지 않은 ... 노예였던 시절에는 인종 차별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예 제도가 폐지 되고​, 백인들 입장에서는 흑인들을 똑같은 인간으로 대하여야 하며 그들과 지역 사회를 함께 살아가야 할텐데 ... 민주주의의 역사가 깊어갈수록 모든 인종은 평등하다고 생각해야하는 것이 일반론이 되어가는 즈음에, 사람이 사람을 차별하고 사람이 사람을 인간 이하로 대할 때 인종 차별이 문제가 되어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50년대만 하여도 여전히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간으로 서로를 대해주지는 못하였던 듯하다.

흑인은 흑인일 뿐이며 백인과 같은 인간이지는 않은 존재,​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를 받기에는 여전히 인간일지라도 모자란 존재 쯤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절인가 보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에 암살을 당하셨으니 ​1950년대에 흑인들의 지위는 어떠했을지 ...

그런 시절에 하퍼 리 여사는 인종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무참하게 토해낸다.

그것도 자신의 영웅이자 신과 같은 정답의 존재인 아버지에게 ...

비록 "파수꾼"은 시대상을 담았지만 첫번째 소설로써는 적절하지 못하였는지 모르겠다.

아직 이름을 알리지도 못한 작가의 처녀작이 세상을 향해 칼날을 날카롭게 드리웠다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파수꾼" 대신에 "앵무새 죽이기"를 먼저 발표하게 되었는지도 ...​

"앵무새 죽이기"와는 완전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리고, 아버지는 비록 자신이 변론을 해야 하는 이가 흑인이라 하여도 최선을 다해 ​변호를 한다.

"앵무새 죽이기"에서 아버지는 인종 차별을 극복하는 덕망있는 인물이며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함을 보여주는 완전한 민주주의 인간형을 보여준다.

그로인해 이 "앵무새 죽이기"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읽는 스테디셀러가 된 것일게다.​

"파수꾼"을 읽으면서​ 남부의 흑인들에 대한 전반적인 백인들의 사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 음

하퍼 리 여사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렇지 않게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을 떠올렸다.

남부의 여인상을 떠올린 것인지 ... 소설이나 영화의 주인공으로서의 캐릭터쯤을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미국의 남부라는 환경 때문인지 드넓은 평야와 바다만큼 큰 미시시피 강을 지녔기에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미국의 남부에서 자란 말광량이와 개구쟁이들을 몇 명쯤 알고 있고 그 중에서 나는 스칼렛 오하라와 스카웃을 비슷한 여인 쯤으로 생각하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파수꾼"에서 가장 큰 사건이 되는 부분은 ​중반 이후부터 드러나는 아버지와의 인종 차별에 대한 대립일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인종 차별에 대한 각자의 입장과 분노를 드러내며 26살의 순수 정의만을 몸에 체득한 스카웃은 고향, 가족과 등을 지려고 까지 하게 된다.

​...

이러한 이야기 전개 속에서도 나에게 가장 부러웠던 것은 가족이었다.

일 년에 한 번 ​가족들이 있는 고향으로 찾아가 한 달 정도의 휴가를 보내는 ...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다 친한 것은 아니고, 그 안에서도 내적 갈등이 있지만 그래도 가족이기에 ...

​1950년대 ... 우리나라는 한국 전쟁을 겪었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살았던 시절.

1970년대까지만 해도 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쉽지 않았으며 일찌감치 공장에서 산업의 역군으로​ 살기도 해야 했던 ...

여성으로서 딸로서 자신의 주장을 목소리 높혀 말하지 못했던 ...

하지만 미국에서는, 뜨거운 남부에서는,​ 26살의 딸이 일흔이 넘은 아버지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강력하게 주장한다.

​그것은 소통의 시작이 아니었을까 한다.

아버지니까 딸이니까 가족이니까 그래서 접고 두루뭉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언행에서 옳고 그름을 배워나간 사회에서는 그 순간이 얼마나 중요할지 알 것도 같다.

우리나라의 가족 문화와는 아주 다른 문화를 지녀서 이해하기는 아직 어렵지만 ...

그것이 어느 나라의 일이다 하더라도 ... 잘 어우러지는 가족들을 보고 있자면 참 부러운 마음이 크다.​

"파수꾼"에 대한 나의 이야기가 참 두서없이 적혀버렸다.

이야기에 대해서는 내가 무어라 할 부분이 없는 것이다.

"앵무새 죽이기" 만큼이나 재미있다.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후에 "파수꾼"을 읽는다면​ 딸의 분노를 더 잘 이해 할 수 있겠지만 굳이 읽지 않고 "파수꾼"을 읽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싶어질 것이다. "파수꾼"에서도 "앵무새 죽이기"의 내용이 언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굳이 같은 맥락의 소설로 읽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본다.

두 소설은 분명 다른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출판이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그 궁금함과 "파수꾼"과 "앵무새 죽이기"와 하퍼 리 여사에 얽힌 이야기들이 무려 20여 페이지에 걸쳐 번역가 공진호 선생의 번역 후기가 제공되어진다.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번역 후기까지 읽고 나니, 한 여름 대한민국에서 인중에 맺힌 땀한번 지워내고 다시 천천히 처음부터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감사하고 싶은 그런 소설이었다.

작가이신 하퍼 리 여사에게도 감사하며 이 소설이 출판하는데 기여한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번역가와 "열린 책들"에게도

이런 소설을 읽게해주셔서​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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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현경 시리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검은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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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년 이상 경찰밥을 먹은 미카미 요시노부는 D현 경찰본부 경무부 비서과 조사관 "홍보담당관"이며 계급은 총경이다. 아빠를 닮아서 얼굴이 너무 밉게 생겼다는 불만이 가득한​ 고등학생 딸인 아유미는 석 달전 가출을 한 후로 연락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유미는 엄마를 싫어했다. 미인인 엄마를 닮지 않고 아빠를 닮은 자신의 얼굴 때문일 것이다. D현에서 신칸센과 택시를 이용해 네 시간이 걸린 다른 지방의 경찰서에 미카미 부부가 들어서며 소설은 시작을 한다. 자살한 어린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어 확인차 그곳까지 간 것이다. 가는 동안 그 자살한 소녀가 자신의 딸이 아니길 빈다는 것은 곧 다른 누군가의 자식이기를 빈다는 것과 같은 뜻임을 절실히 깨닫는다.

   미카미가 말단 형사 시절에 그의 눈에도 홍보실은 '기자들의 끄나풀', '경무과의 개', '승진시험 공부방' 그런 뒷말이 오가곤 하던 곳이었다. 밤마다 술자리 접대를 갖고, 사건 현장을 찾아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방관자처럼 기자들과 잡담이나 나누는 그런 홍보실 사람들을 경찰 조직의 일원으로 인정할 마음이 들지 않았는데 그런 미카미가 형사 생활 3년 차에 홍보실 근무를 명 받았을 때는 잔뜩 기가 죽고 말았다. 홍보실 근무란 바로 '형사 실격'이란 낙인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고작 1년 만에 형사부로 되돌아갔고, 매 번 '다음 인사이동'이 두려워 엉덩이에 ​불이 붙은 사람처럼 일에 몰두했지만 올봄 다시 홍보실로 발령이 났다. 과거의 경험으로 미카미는 2년만 버티면 형사부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다독였다. 그렇게 미카미는 경무부 홍보실 일을 하면서도 자신은 형사부 사람이라고 속으로 다짐하고 다짐하였으니 홍보실 일을 제대로 해내기가 쉽지는 않았다.

   범죄 사건을 다루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탐정과 형사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픽션에서 형사보다는 탐정이 좀 더 ​멋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도 사법권이 없는 상태에서 '재치'를 발휘해서 범인을 잡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형사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법제도 안에서 움직이는 부분들이 많다 보니, 탐정물만큼의 매력이 덜한 게 아닐까 하는, 아니 서로 다른 매력을 갖고 있겠지만 탐정들이 보여주는 어떤 천재적인 재능과 형사들 보다는 훨씬더 인간적인 여유로움이 느껴진다고 할까?​ 그런 저런 이유로 나에게는 형사보다는 탐정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소설 "64"는 경찰 소설이라고 어디선가 그런 글귀를 본 듯했다. 그래서 경찰이 등장해서 어떤 사건을 해결해 나가고 하는 그런 소설일 거라고 혼자 지레짐작하며 읽어나가는 바람에 처음 5~60페이지까지는 아주 질긴 오징어를 씹는 기분으로 소설을 읽어내려갔다. 읽다가 눈이 따가워서 잠들어 버리기도 몇 번. 홍보실에서 근무하는 미카미가 기자들과의 관계에서 너무 고단해 보이는 문장들이 아주 촘촘하게 적혀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 사건이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책의 두께는 엄청 두꺼워서 ​충분히 뒤 쪽에서 얼마든지 사건이 일어나고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나오 ... 그러나 중반을 훨씬 넘어가도 그런 부분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훨씬 더 중요하고 긴박한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다.

   소설 "64"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사건의 해결보다는 경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경찰 소설이다 ... 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사, 감찰 등을 다루는 경무부 소속 경찰들은 현장에서 발로 뛰는 형사부의 형사들과는 사이가 그리 좋지를 않다. 조직이란 그 안의 많은 부서와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 하면서 하나의 조직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지만, 사실 조직이란 게 또 그 안에서 이기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도 하다. 남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말을 듣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동료를 이용해 자신의 가치를 더 높게 만들기도 하고, 타부서를 깔보기도 하며 그렇게.​ 경찰이라면 직접 발로 뛰어 범인을 잡고 사회악을 제거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는 형사들은 현장을 누비지 않고 사무를 보거나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간부직 "캐리어" 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풍토에서 홍보실 근무를 하는 미카미에게는 초반부터 아주 곤욕스러운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


   형사로서의 자긍심도 강하고 형사로 업무 능력도 뛰어났던 미카미라는 인물은 가출한 딸 때문에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는 아내에 대한 걱정도 많고,​ 출근해서는 작년까지만 해도 한 곳에서 같이 일한 동료들이었던 형사부 사람들에게서 외부인 취급을 받고, '캐리어'지만 세 살 연하인 상사에게 시키는 일만 잘하라는 말을 들으며 업무에 임해야 하며 기자들에게서는 왜 정보를 더 제공하지 않느냐고 몰리고 ... 소설을 읽는 중반까지는 화가 나기도 했다. 미카미가 숨을 제대로 못 쉴 정도로 몰리는 상황들이 너무나 많아서 화가 마구마구 나기도 했다. 작가에게 화가 났다. 뭔가 미카미를 속시원하게 해 줄 일도 좀 만들어주고 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삶이 어디 그런가. 우리네 직장에서 우리는 어쩌다가도 히어로가 되기도 어려운게 사실이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고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소설 "64"는 ​굉장히 현실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기도 하고 인간적이다! 라는 느낌이 가장 강하게 들었다. 굴욕을 당한다고 해서 금방 그 굴욕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처음 몇 장만 읽어가도 이 소설 진짜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집필 기간이 10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오래 쓰고 아니고의 문제라기 보다 작가의 남다른 필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다르다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봐온 미스터리 소설, 이런 유의 추리 소설들과 좀 다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수놓아진 느낌, 내가 마치 홍보실에서 근무라도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홍보실 직원들에게 가해지는 수난들에 나조차 울분이 생겨나게 만들 정도로 인간적 심리를 아주 촘촘하게 엮어 놓았기 때문이다. 경찰이라는 조직, 그리고 ​경찰서라는 하나의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씨줄과 날줄로 짜여지는 동안 오가는 말들 속에 담겨진 숨은 뜻을 파악하며 미카미는 아주 오래 자신의 생각들을 펼쳐 보인다. 그동안 익숙했던 추리 소설들은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이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그런 트릭을 푸는 재미의 추리였다면 대부분의 추리 소설들이 사건에 대한 추리를 해나가는 부분에 치중한다고 하면 소설 "64"는 미카미가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곱씹어보고 되새겨보면서 인간의 심리를 추리한다고 할까? 그런 인간 대 인간으로, 인간의 수많은 모습과​ 감정들 속에서 미카미의 변화를 함께 읽으며 겪는 그런 남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동안의 대부분 소설들은 주인공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 주인공을 격려하더라도 나는 그저 바라보는 입장의 독자였다면, 소설 "64"는 마치 내가 "영웅본색"을 보고 난 후에 성냥개비를 입에 물고 말하기를 즐겨 했던 삼십 년쯤 전 '주윤발'과 자신을 물아일체인 척했을 때처럼, 독자로 미카미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그것이 마치 나의 생각인 양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는 나 스스로 미카미가 되어 책을 보게 되었다. 거의 700쪽에 가까운 책이지만 초반에 그릇된 나의 선입견으로 소설을 읽기 시작한 부분을 지나면서부터는 아주 재미난 속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진짜 이런 소설도 다 있구나 하는 그런 생각​. 얼마나 사실적인지는 솔직히 잘은 모르겠지만 내게는 충분히 사실적으로 읽혀서 소설을 읽는 내내 등장 인물들에게 내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말았다. 살면서 또 이런 소설을 얼마나 자주 만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면 ​너무나 늦게 알아버린 요코야마 히데오라는 작가. 그래서 그의 많은 작품들이 절판되어 있는 상태여서 너무나 아쉽고 아쉽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당장 구할 수 있는 책들은 구해 읽어보아야 할까 보다. 그의 다른 책에서 경찰들의 모습은 또 어떠할지 너무나 궁금하게 만들어준 소설이 "64"이다. 탐정들이 뛰어나고 특별한 재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준다면 아마도 경찰 소설은 나와 같은 인간이기에 인간적 고뇌를 함께하며 푹 빠질 수 있겠단 생각이 가슴에 깊게 새겨졌다.​

​   미카미가 홍보실의 일원으로, 다른 어떤 힘에 의해 더이상 흔들리지 않고 홍보실 일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난 후 선배 형사에게 하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형사들의 눈에는 한심하게 비칠 수도 있겠죠. 경찰 본연의 엄부와는 무관한 일이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범인을 검거하는 것이 곧 치안, 이 사회는 사냥터.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26만 명의 경찰들 모두 제각기 맡은 자리가 있습니다. 형사는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평범한 일을 하지요. 그들에게 신의 손 같은 건 없지만, 그렇다고 자긍심까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런 개개인이 긍지를 가지고 하루하루 맡은 일을 충실히 수행하기 때문에 이 거대한 조직이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홍보실에는 홍보실만의 긍지가 있습니다. 형사들은 언론과 한통속이라 야유하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내부의 안색을 살피며 바깥과 통하는 창문을 닫는 것이야말로 홍보실의 수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족을 달자면 혹시나 이 소설을 읽으며 초반에 나처럼 읽는 속도가 빨리 나가지 않아 애먹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만 더 참고 견뎌보시라고 말해 드리고 싶다.

​그러면 곧, 금방 아주 굉장한 속도감으로 달리는 소설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 겉들여서 지금 당신은 최고의 소설을 읽고 있는 중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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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조용한 비
미야시타 나츠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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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책소개를 읽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터질 것 같습니다. 혼자여야 할 올해의 봄에 아주 잘 어울리는 소설같아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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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20주년이면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한다고 말하잖아요 ^^ 성이닝 된 걸 축하가고 성인이 된 만큼 더 야무진 알라딘이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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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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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소문을 달고 나타난 소설이었기에 아마도 많은 이들의 기대를 많이 받은 책이 아닐까 싶다. 내용의 소재가 미대륙의 흑인 노예의 삶을 다룬다고 해서 느닷없다거나 이제 와서 왜~ 그런 식의 의문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 이순신의 삶을 다룬 영화를 이제 와서 왜 만드냐고 묻는 것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역사이니까, 그들의 삶의 시간 속에 포함된 일이니까, 그리고 우리 인간의 역사이기에 늘 기록되고 누군가에게는 전달돼야 할 문제이니까 말이다.

   어린 시절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드라마인 뿌리Root를 보았다. 그리고 선명하게 까지는 아니지만 아프리카 대륙에서 어떻게 백인들에 의해 잡혀 노예가 되고 노예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미국 땅에서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역사 책이나 위인전으로 만난 대통령 링컨의 이야기만으로는 알지 못했던 속 깊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렇지만 그 드라마 역시 내가 사는 곳과는 아주 먼 땅의 이야기일 뿐이었고, 나와는 일절 상관없는 이야기일 거라고 여겼다.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의 역사에서 식민의 역사가 존재하고 이 땅의 사람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조차도 피부로 생생하게 느끼기 그런 일이 있었으니 분노해야 하며 그런 일이 있었으니 그들을 밉게 봐야 하며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들을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 정도로만 인식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분명 남의 일의 일은 아니지만 지금의 일은 아닌 듯이 한켠에 두고 살아가는 나에게 드라마 뿌리의 이야기는 그냥 드라마 속 이야기와 얼추 비슷한 정도로 여겼으리라.

   뉴스를 봤다. 몇 년 전 흑인 청년을 사살한 백인 경관이 무죄판결을 받음으로써 대규모 시위가 미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였다. 간간이 세계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 중에는 백인 경찰들의 흑인 범죄자뿐만 아니라 흑인을 향한 인종 차별적 대우에 대한 것들이다. 지구에서는 언제부터 이렇게 인종과 지역을 중심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미워하며 싸우게 된 것일까? 바벨탑 이후에 그리된 것일까? 성경에서는 십계명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라 하셨는데 그 이웃에는 우리도 흑인들도 포함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과연 지구의 역사에서 인종 차별이 사라진 시기가 있었을까? 단 한순간이라도. 편을 가른다. 색깔로 가르고 지역으로 가르고 연고로 가른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우리와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색출해내서 우리와 다르다는 이유로 질책하고 면박을 주려 한다. 이러함은 과연 인간의 본성일까?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지금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시위의 역사적 시작 부분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더 이전의 역사는 미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들에 대한 백인들의 행포였을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며 장문으로 이어지지 않는 수식어과 없이 단문으로 이어지며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그리 드러내지 않으며 상황을 사실적으로 전달하려 하는데 그것은 마치 르포 문학을 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그래서 코라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아프리카에서 건너와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흑인들의 삶이 얼마나 비인간적이었으며 그런 삶 속으로 또 흑인 노예들을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또 그 안에는 어쨌든 흑인의 삶을 거세하려는 삶들도 있으며 또한 흑인들 사이에서도 흑인을 고발하거나 다른 흑인의 삶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는 아주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이면서 왜 우리 인간들은 이런 삶을 살 수밖에 없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들어준다. 긴 여정 후, 코라의 삶은 그 후 미국에 어떤 모습으로 스며들었을까? 우리는 과연 그러한 삶의 모습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까? 벗어나려고 노력을 하기는 할까? 그러는 나는 과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를 진지하게 묻게 만드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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