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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 - 빈털터리 고아에서 노르웨이 국민영웅까지 라면왕 Mr. Lee 이야기
이리나 리 지음, 손화수 옮김 / 지니넷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평소 나에게 애국심이란 감정이 가슴 속에 있기는 한 걸까라는 의구심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게 현실이다. 이따금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세계인이 참여하는 대회를 보면 희열을 느끼고 애국심에 불타오르곤 했다. 저마다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고 일심동체가 되어 목이 쉬도록 응원을 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자랑스러운 애국심을 가슴 속에 심어준 사람이 한 명 있다면, 바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그는 내가 보아온 자랑스러운 한국인임이 틀림없다. 세계의 중심에서 한국인의 위상과 자부심을 대표하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비록 서로 다른 환경에 살고 있지만, 나도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는 데 의미를 둔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한국을 알리기 위한 한국인의 움직임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 고유의 음식문화, 복식과 전통문화에 이르기까지 작은 땅덩어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열정과 힘은 세상 그 누구도 쉽히 범접할 수 없는 한국의 미를 알리는 애국심이다.
머나먼 땅 노르웨이에서 '미스터 리'라는 상표를 내걸고 출시된 라면이 있다. 2011년 현재 노르웨이 라면시장의 95%를 장악하고 있는 '라면왕 이철호'의 위대한 성공작! 노르웨이의 입맛을 사로잡은 '미스터 리' 라면이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는 라면왕 이철호의 막내딸 이리나 리씨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집필한 라면왕의 성공담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38도 분계선을 넘으면서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이 일어나던 당시, 그는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열네 살에 불과했다.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서 길이 엇갈리면서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떠나기 직전, 아버지는 가족들에게 여분의 돈뭉치를 나누어준다. 서로 흩어지더라도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아남아 다시 만나야 한다는 굳은 약속을 한 것, 그렇게 어린 나이에 그의 사업 기질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나 보다. 돈의 가치가 떨어지기 전에 빨리 써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뜨거운 열기에 지친 피난민에게 모자를 팔아서 장사하기로 결심한 것. 필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하여 안 해본 일이 없었던 라면왕 이철호.
극심한 고통 속에 피어난 잡초의 생명력처럼 그의 도전 정신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스스로 선택한 미군부대의 막사에서 시작된 생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병사들의 침대를 정리하고 군화를 닦고 군복을 빨았다. 그렇게 자신의 몫을 만들어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 없었던 이철호. 그를 눈여겨본 쉬나이더 장군은 자신의 개인 비서로 데리고 다니며 아들처럼 보살펴준다.
「힘들었지만 내가 다른 인종, 불구의 몸이라는 건 어떻게 해도 바꿀 수 없는 조건이었다. 나는 상처받고 아파하는 대신, 있는 상황 그대로를 받아들여 언젠가는 내가 당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사람이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곤 했다.」- 본문 중에서
꿈과 사랑 그 모든 것에 열정을 쏟아부은 라면왕 이철호의 삶, 그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드는 날이 길어질수록 학문을 향한 야심이 사그라들었다. 원래 음식 만드는 일을 좋아해서 새로운 진로를 택하게 된 것일까? 그는 요리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하루종일 설거지를 하고 감자를 깎는 일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는 하찮고 더러운 일일지라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4년간의 펜팔로 운명적 만남을 이어간 첫 번째 부인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세 딸을 키우면서 끝까지 꿈을 놓지 않은 그의 모습은 인간의 한계란 도대체 어디까지인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였다.
가진 것 하나 없었던 전쟁고아에 43번의 다리수술까지 받아야 했던 라면왕 이철호, 머나먼 땅 노르웨이에서 의지할 사람도 없이 강한 정신력으로 살아남기까지 그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참아내야 했던가. 사람이 먹는 음식이 아니라, 그릇을 씻는 수세미를 가지고 흥정한다는 오해를 사며 쫓겨나기를 수차례, 라면이 익숙하지 않았던 외국인에게 심한 문전박대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뜻을 펼쳐나갔고, 드디어 그의 강한 의지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철호는 자신의 고국이라고도 할 수 있는 두 나라, 노르웨이와 한국을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인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숨을 쉬고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삶을 일구어나가는 데 도움을 준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있어 고맙다고 말한다. 그를 전쟁의 구렁탕이에서 구해준 사람이 바로 유엔에서 일하고 있던 노르웨이인이었으며, 그 후 그의 목숨을 구해 준 사람도 바로 노르웨이 군인장교와 의료진들이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실 노르웨이에서 라면을 알리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었다. 그리고 노르웨이 라면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시피 유명하다는 것조차 몰랐으니,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된 것 같아 기쁨이 먼저 앞선다. 그의 삶에는 실패가 심심찮게 찾아온다.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조금이라도 안정을 찾고 잘 되고 있다 싶으면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일쑤다.
그래서 인간의 정신이야말로 세상 그 무엇보다 위대할 수 없음이 증명된 셈이다. 넓디넓은 세상을 인간의 지시하에 지배할 수는 없겠으나, 저마다 주어진 삶에서 주체가 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가족과 건강을 잃고 낯선 땅에 버려진 고아가 되어 평생을 살아갈 것인가, 현실을 직시하고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하여 도전할 것인가? 라면왕에게 내려진 두 가지 선택이었다. 만약 우리에게 그와 같은 상황이 닥쳐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마>는 노르웨이 라면왕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강한 신념, 자신을 향한 믿음이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이루고자 하는 뜻을 향해 전진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에게 영웅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세상 모든 이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뜻을 이루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어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그게 진정한 성공 비결이다.
라면왕 이철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남의 나라에서 똥지게도 졌던 사람이다. 그런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한 번도 비참하다거나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못한 상태에 놓이는 걸 두려워 하는 이유는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거기서 영영 끝나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망감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다르게 생각한다. 어려운 상황을 만나도 이 길은 잠시의 내리막길일 뿐이며, 그 다음에는 새로운 길을 갈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신에 대한 믿음만큼 큰 힘은 없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