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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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백색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

나는 생각해본다. 관찰의 대상이 주어졌을 때, 나는 무엇을 먼저 찾으며- 또 무엇을 이용해서 그것을 해석하려 하는가. 나는 의미 있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찾을 것이며, 그것이 어떤 가치로서 나에게 이로울 것인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것이다. 혹, 그 대상을 중심으로 글을 써야 한다면…… 아마도 이렇게 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바로 이제하의 인간들처럼.

 

고뇌하는 인간이여, 지금 이곳에 다 모이거라.

이제하의 <코>를 열 장 남짓 넘겼을 무렵이었다. 의미의 부조화로 가득한 글을 읽으면서, '나는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소시민의 삶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한 작가의 가치관이 엿보이기도 했던 <코>, 인간은 무엇에 열광, 분노, 갈등, 고뇌, 슬퍼하는지에 대한 적나라한 분석이 이루어진 서른아홉 개의 픽션이 모여있다. 작가는 초반에 『코』라는 단편을 시작으로 픽션의 장을 열었다.

 

"기를 쓰고 다른 데로 눈을 돌리려해도 보이는 건 고년의 코뿐이에요."

『코』는 '코'로 시작하여 '코'로 끝을 맺은 두 남녀가 등장한다. 그들은 서로의 '코'에 반하여 사랑을 시작했으나, 결국 '코'로 인해 이별을 택한다. "코 때문에 결혼했던 거예요."(p.8), "그 사람 칭찬할 만한 것이라곤 코밖에 없었다니까요."(p.10) 인간의 신체기관 중, 외부의 환경과 냄새에 민감히 반응하는 코를 풍자하여- 인간에의 희노애락을 암시하는 듯한 『코』, 나는 이 글을 시작으로 이제하의 <코>가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지에 대한 흥미진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대가 돌고 돌아도- 언제나 그 자리는 변함이 없는 것인데…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이요, 다시 돌아서면 떠오르는 것이 인간- 바로 그 실체인데…… 우리네 사는 이야기가 한 편의 모노드라마가 되어 내 앞에 펼쳐질 때, '아, 내가 저리 살았는가?', "그대는 어찌 그렇게 살고 있는가?'라는 허망과 안타까움이 교차하게 된다. <코>에 등장하는 서른아홉 개의 픽션이 나와 당신이 펼치는 모노드라마를 재연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에 약한 인간의 감정을 미끼로 삼아, 돌리고 또 돌려서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나와 당신에게 책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개의 주검이 아니라 살아 있었을 때의 그 유다른 습성이다."(p.415『뻐꾹아씨, 뻐꾹귀신』중)

 

「지긋지긋하다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니라 일상적인 하루하루마저, 심심하면 고향을 뻔질나게 오가는 그런 패턴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새삼스런 깨달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침에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때는 딴에는 열심히 살고 있다고, 앞으로 나가고 있다고,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는 절대적인 믿음처럼 눈을 뜨지만, 매양 다다르는 곳은 뒤안길 뿐이다.」(p.414『뻐꾹아씨, 뻐꾹귀신』중)

 

습성을 잃은 자에게 <코>를 말하다.

인간은 생각이 필요한 순간을 애써 피하려고 노력하는 동물이다. 무모함을 가장한 대범함으로 인생을 사는 인간의 모습, <코>를 읽으면서 잃어버린 나의 과거 그리고 현재를 발견하게 되었다. 누군가의 취향, 가치관으로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는데…… 서른아홉 개로 이루어진 미니픽션 모음집 <코>, 잠시 현실을 떠나 우리가 사는 모습을 새롭게 구상하고 싶은 자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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