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아침
한희수 지음 / 은(도서출판)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신학생들이 매춘을 하고 신학교 교수가 성상납을 받았다는 얘기가 도는 마당에, 거기에 대고 '나는 잘못한 거 없다'고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럼 이사장이 '그래, 너 잘했다.' 그럴 것 같아? 학교가 문을 닫게 생겼는데." "그게 제 잘못은 아니잖아요?" "아무도 잘못한 사람이 없다면 화살은 너를 향하게 돼 있어."(p.22)

 

믿음보다 강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믿으면 그것이 다 사실인가?

이것은 어느 신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 실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 깜짝 놀랄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작가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어쩌면 현실 속 어딘가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신학교에 다니는 한 남자와 여자가 있었다. 일찍이 병고와 싸우던 남편을 떠나보내고, 신앙의 힘, 하느님의 힘으로 살아보려 신학을 배우기 시작한 30대 초반의 강지영, 그리고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접근하는 배영우라는 남자가 있다. 지영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전세금을 빌려주고, 핸드폰을 사주고, 100만 원 상당의 선물을 사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한 배영우의 치밀한 계획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영은 애초에 그와 결혼할 생각 자체가 없었으며, 자신이 본의 아니게 받았던 현금을 돌려주고 애매한 관계를 말끔히 정리하려고 한다. 배영우는 자신이 지영을 도와줄 만큼의 여윳돈이 있는 것이 곧 하느님의 뜻이라고 했으나, 사실 무일푼에 가진 것 하나 없는 처지였고 거액의 돈을 빌려서 지영에게 일방적으로 소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신학교에 떠도는 문란한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믿음으로 하나 된 사람들이 모이다.

결국, 배영우는 지영과의 결혼이 실패하자 신학교에 이상한 소문을 내고 다닌다. 지영이 결혼을 전제로 자신과 수차례 성관계를 맺어왔으며, 혼수대조금으로 400만 원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지영이 신학교 교수들과 성상납을 은밀히 해왔다는 소문까지 떠돌기 시작한다. 학교 이사장과 총장 그리고 교수들은 신학을 가르치는 곳에서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생겼노라며, 배영우와 강지영을 불러들여 소문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그들과 일대일 면담을 하기 시작하는데……

 

뚜렷한 증거는 없다. 그러나 당사자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를 했으니, 그것은 사실이라 볼 수 있다.

《유월의 아침》은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에 대하여 말한다. 신학교 교수의 관점, 지영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수의 관점, 그리고 강지영의 관점 이렇게 세 가지 관점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신학교의 신성함이 실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일방적으로 배영우의 말을 믿는 신학교 교수들의 모습은… 뭐랄까.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 것인가?'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고, 그것을 전제로 신학교를 지키려고 다른 한 사람의 정체성, 인격 그 모든 것을 철저하게 짓밟는 신학교 교수들의 모습은 가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들은 말한다. "신앙인들에게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믿음도 중요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간음한 것으로 치고요. 사회에서는 그러지 않습니다.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하죠. 증거 대라. 사진 있냐? 하지만 우리에게는 사실 이전에 마음의 문제입니다. 이해하시기 어렵겠지만 저희가 눈에 안 보이는 싸움을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주세요."

 

마음을 더럽히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한다. 그것이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이라고…

그래서 증거는 없으나, 문란한 생각을 한 적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징계사유가 되며, 강지영은 자퇴 혹은 퇴학처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배영우는 지영의 신체적 특징을 언급하기에 이르고, 신학교 교수들은 지영에게 신체검사를 받아서 결백함을 입증하라고 유도한다. 강지영은 신체검사를 받아야 하는가? 그들은 지영에게 신체검사를 강요할 수 있는가? 무엇을 근거로, 그들은 믿음으로 그녀를 몰아붙이고 있다. 직접 보거나 듣지 않았으나, 배영우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 그것이 곧 증거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가 좀 아팠다. 하나의 사건을 자꾸 되풀이하면서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했습니까?", "안 했습니다.", "사실이 아닙니까?", "사실이 아닙니다." 신학교 사람들은 추측을 가장한 믿음으로 강지영을 막다른 길로 밀어내고 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배영우의 여러 증언들의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진술과 여러 정황들을 종합하여 판단할 때 강지영은 신학생의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한 것으로 사료되며, 이는 징계사유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함." 증거는 없다. 그러나 그럴 수 있겠다는 가정하에 만장일치로 하나의 결론을 도출한다. 《유월의 아침》은 신학교를 배경으로 한 性과 믿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다소 껄끄러운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이 책은 우리에게 진정한 믿음과 진실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끔 한다. 한편으로는 왜곡된 사랑, 그 사랑에 접근하는 인간의 양면성, 사회의 부조리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배영우와 강지영은 그저 사랑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한 사람은 사랑을 왜곡하였고, 한 사람은 사랑의 실체를 발견하지 못하고 이용당했다. 이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것이다. 애초에 그릇된 종교적 믿음이 문제였던가? 어느 신학교에서 일어난 性과 믿음에 관한 이야기, 직접 읽어보고 판단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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