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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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에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인간에게 가장 극단적인 선택은 결국 죽음밖에는 없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중학교 3학년, 친구들과 나는 저마다 가고 싶은 고등학교에 적합한 성적을 계산하느라 머리를 맞대고 깊은 묵념에 빠졌었다. 점수의 높낮이에 따라 상중하로 나누어지는 학교의 서열, 우리는 일종의 변명 아닌 반항심으로 '젠장, 우리 고등학교 가지 말까?'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1지망, 2지망으로 가고 싶은 고등학교가 아닌 갈 수 있는 고등학교를 선택해야만 했던 나의 학창시절. 중학교에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정녕 내가 배운 것은 무엇이었나에 대한 허탈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거둔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교에 가서 정말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하기도……

 

이름만 들어도 '아, 그 학교?'라는 시답잖은 반응을 보이는 어른들을 보면서 '내 인생이 학교 때문에 망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가 부끄럽냐, 나 자신이 부끄러우냐는 질문을 누가 한다면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왜요, 왜 제가 둘 중의 하나를 꼭 집어서 부끄럽다고 말해야 하나요. 라고 도리어 따졌을 것이다. 나도 한때는 청소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청소년을 먼발치에서 혹은 아주 가까이서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래. 다 한때야. 마음껏 즐겨.'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너네 그러다가 아주 큰일 나는 수가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겁 없이 무한 질주하는 십 대 청소년을 볼 때면, 나도 저런 모습이었을까 싶기도 하다. 가끔 뉴스를 보면 안타까운 사건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헬멧도 착용하지 않고 폭주족처럼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한순간에 세상을 떠나버린 아이들, 성(性)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판단으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아이들, 술과 담배를 비롯한 유해물질에 중독된 아이들까지… 때로 그것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른들의 마음을 씁쓸하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은 왜, 아이들이 어쩌다가, 아이들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우리에게 차마 보여줄 수 없었던 아이들의 속마음을 솔직담백하게 털어놓고 있다. 책에는 유미와 재준이가 등장한다. 재혼가정이라는 배경을 등에 지고 당차게 살아가는 유미, 아빠엄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사는 듯한 재준이의 모습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청소년이 겪는 심리적 위축감 또는 스트레스를 보여준다. 이 책은 청소년 소설에서 빠질 수 없는 학교생활, 이성 친구, 입시교육, 부모와의 갈등이라는 요소를 적절히 배치함으로써,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청소년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어른들의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자 한다. 재준이는 자신이 남몰래 좋아하는 소희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밤늦도록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부모님과 공부밖에 모를 것만 같았던 재준이의 가장 큰 고민은 짝사랑하는 소희의 마음을 얻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준이는 한순간의 실수로 오토바이와 함께 하늘을 날아올라 영원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재준이의 부모는 아들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었고, 일기장의 첫 장에는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라는 섬뜩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있었다. 재준이에게 일기장을 선물했던 유미, 재준의 엄마는 유미에게 일기장을 대신 읽어주기를 부탁했고, 유미가 재준의 일기를 읽으면서 기억을 떠올리는 것으로 이 책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아까 모래밭에 누운 채 사막에서 목말라 죽은 시체 흉내를 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던 탓인가. 나는 진짜 내가 죽은 시체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몸을 움직여도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았다. 한번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니 덜컥 겁이 났다. 만약 내가 몸을 움직이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그 기분이 어떨까?」- 본문 중에서

 

재준이는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러다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냈는데, 애석하게도 시체놀이를 하거나 죽은 사람이 되어서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와 같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게 된다. 화가 나고 울적해지면 으레 그러하듯이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리고자 했던 것이다. 어른들은 애초에 상처가 나지 않게끔 예방하는 법은 친절하게 알려주면서도 정작 상처가 났을 시에 스스로 치유하는 법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게다가 상처가 났을 시에 뒤따르는 크고 작은 부작용에 대해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설명하면서. 그 상처란, 어른들의 관점에서 정해놓은 것들, 즉 청소년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문제행동에 의한 신체적·정신적 상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재준이는 스스로 치유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재준이의 일기장에 적힌 글자 하나하나만이 유일한 치유제였던 것처럼… 작가는 일기장을 통해서 재준이가 겪어야만 했던, 결국은 그것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는 개인의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일기장, 언젠가는 누군가에 의해 밝혀질 비밀을 간직한 일기장, 재준이의 유일한 소통의 공간이 일기장이었던 것처럼… 가슴 속에 상처를 짓누르고 살아가는 청소년이 처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 우리 청소년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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