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유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5
멕 로소프 지음, 김희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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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가족의 해체, 청소년의 일탈, 참혹한 전쟁이 낳은 비극이 모여서 이루어진 소설이 있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성장소설이라는 성격을 지닌 <내가 사는 이유>는 자신을 낳고 세상을 떠난 엄마의 빈자리를 낯선 새엄마가 차지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데이지가 등장한다. 뉴욕의 도심 한복판에서 자라온 소녀는 영국의 시골 마을에 위치한 이모 집으로 가게 된다. 악마처럼 느껴지는 새엄마와 더는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인위적이지 않았음에도 낯설은 시골 이모 집에는 4명의 사촌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드먼드, 파이퍼, 아이작, 오스버트 그리고 고양이들, 흑백 얼룩을 가진 개 진과 제트까지…

 

소녀는 제각기 개성이 강한 사촌들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적응법, 즉 생존방식에 대하여 골똘히 생각한다. 자신을 친언니처럼 따르는 파이퍼, 사촌지간임에도 오묘한 애정을 느끼게 되는 에드먼드, 항상 말없이 동물과 교감하는 아이작, 맏이답게 제법 위엄을 갖추려는 오스버트까지, 그러던 어느 날 이모가 급한 일이 생겨서 오슬로로 떠나게 된다. 아이들은 아동 지킴이 역할을 하던 어른이 자리를 비웠다는 사실에 내심 기쁨을 감출 수 없었고… 각자 역할분담을 하면서 제법 씩씩하고 유쾌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자 알찬 계획을 짜게 된다. 그러나 커다란 집에 아이들만 남겨졌다는 것은 장차 다가올 엄청난 비극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이모가 출발한 다음 날 런던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기차역에서 폭탄이 터져서 7천 명 혹은 7만 명인지 하는 사람들이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것은 곧 전쟁의 시작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

 

 

 

 

「그때 검문소에서 조우를 쳐다보고 있던 군인 한 명이 귀찮다는 듯한 동작으로 총을 빼 들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뭔가 쪼개지는 것 같은 큰 소리가 나더니 조우의 얼굴 한쪽이 폭발했다. 사방에 피가 튀고 조우는 트럭에서 길로 떨어졌다. 파이퍼는 모든 것을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 보고 있었지만 나는 쇼크 때문에 구역질이 나서 얼굴을 트럭 밖으로 돌려야만 했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이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선사하는 분위기는 맑고 친숙함을 자아낸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시야에 비친 자연의 모습과 서로 의지하면서 동고동락하는 모습은 그 뒤에 이어질 참혹한 전쟁을 예상치 못하게끔 한다. 그러나 기차역에서 폭탄이 터짐과 동시에 작가는 아이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쟁은 평화로웠던 시골 마을까지 침투하여 아이들의 행복을 짓밟아버린다.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갈림길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전쟁이 가져온 비극적 참사에 대한 쓰라림을 사춘기 소녀 데이지의 눈으로 해석한다. 또한, 사촌 동생인 파이퍼와 외딴곳에 남겨진 주인공 데이지가 나머지 사촌들을 찾아가기 위해서 보여주는 전쟁 속 기나긴 여정은 우리에게 고달픔 혹 여린 소녀의 강인한 모험정신을 숨죽이고 지켜볼 수 있는 관찰자의 역할을 제공하기도 한다. 전쟁으로 엉망이 되어버린 고립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열다섯 살 소녀의 모습에 압도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작가가 곳곳에 지뢰를 숨겨놓은 듯,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돌발상황을 만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과 상황에 대한 이해력이 부족했던 데이지, 그러나 나에게 보여준 데이지의 대범한 추진력은 여리고 상처입은 아이가 스스로 삶을 개척하고 치유하는 고정된 패턴의 성장소설을 뛰어넘는 청소년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청소년을 무대의 중심에 세워놓고 그들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이러한 소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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