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사는 집 문지 푸른 문학
조명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영은이의 가족은 특별하다. 할머니의 작은 키를 쏙 빼닮은 꼬맹이 영은이는 올해 고등학교 2학년,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영은의 엄마, 파란 눈에 금발을 가진 이모, 바느질솜씨가 뛰어난 작은 거인 할머니까지… 이국적인 외모가 매력적인 영은이의 이모. 이모는 코끼리를 닮았다는 아빠, 할머니의 연인을 찾으러 핀란드로 향한다. 사실 할머니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피부가 하얀 아기를 슬그머니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할머니는 아기 엄마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일절 묻지 않았으나, 내심 속이 많이 상해졌을 터다. 그렇게 엄마가 다른 영은이의 엄마와 이모가 어른이 되었고, 할아버지와 아빠의 얼굴을 모르는 영은이가 한 지붕 아래에 살아간다. 이모는 할머니가 외국남자와의 짧았던 로맨스를 통해서 자신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남자의 고향인 핀란드로 가서 직접 아빠를 찾아오겠다고 다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은이는 알고 있었다. 실은 할머니와 엄마가 이모에게 거짓말을 했음을… <농담이 사는 집>은 주인공 영은이의 시점에서 주변인물의 감정까지 유추하고 해석하며,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드러내는 형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은이는 작은 키가 콤플렉스였으며, 열 일곱 살이 넘도록 생리를 하지 않음에 잠을 못 이루는 사춘기 소녀다. 학교에서는 마치 있어도 없는 존재가 되어서 생활하는 말 그대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있다. 교우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자신의 가족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에 더욱 애착을 가지는 영은이다.  

 

「인생에는 수학에서처럼 법칙도 공식도 없는 모양이었다. 분별없고 무질서한 공식과, 동의하고 싶지 않을 만큼 혼란스러운 인생의 법칙들 때문에 나는 느닷없이 아빠를 잃었다. 그리고 공식과 규칙이라곤 없는 한 지점에서 경악에 찬 엄마의 비명이 들렸고, 내가 군고구마 접시를 떨어뜨렸고,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렸고 어쩌고 하는 장면들만이 군데군데 잘린 채로 남아 있을 뿐.」- 본문 중에서

 

 

 

 

작가는 영은이를 고립된 사각지대 한가운데에 세워 놓았다.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은 겪을 법한 소재 속에 풍덩 빠트린 것이다.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해온 영은이는 학교생활과 교우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으며, 아빠를 잃은 상실감에 자신을 미처 돌보지 못하는 엄마를 원망하는 대신에 그 현실을 몸소 인정하고자 무덤덤하게 침묵을 지키는 입장을 택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아빠를 찾겠노라며 외국으로 떠나는 이모를 보면서 영은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한, 학교에서 유일하게 영은이의 친구가 되어주었던 여진이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모의 재력으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다. 그러나 여진이는 대학교 진학문제로 자신을 억압하는 부모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농담이 사는 집>은 주인공 영은이의 입장에서 바라본 세상 속 사람들의 이야기, 그 중에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나,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삶의 무게감이 애잔하게 펼쳐지고 있다. 작가는 이 책의 무게중심을 '코끼리'에 맡겨두었다.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이모와 영은이에게 '코끼리'라는 존재를 제각기 그들의 소망을 심어서 간직하게끔 만들어준 것이다. 독자로 하여금 영은이의 꿈속에 심심찮게 등장하는 코끼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하여 추측하게끔 유도하면서 이 책이 지닌 함축된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눈을 뜨자 제일 먼저 코끼리 생각이 났다. 잠옷을 입은 채로 나는 콩콩 소리를 내며 손님방으로 달려갔다. 방문을 열면서 나는 또 꿈일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p.128) 우람한 덩치의 코끼리가 가족을 지켜주는 수호천사라도 된 것 마냥, 영은이의 가족은 코끼리라는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다. 작가는 그들에게 듬직한 수호천사를 선물한 것이다. 사춘기 소녀 영은이의 가슴 속에 사는 코끼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농담과 진담이 한데 어우러진 가족의 이야기가 기나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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