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사랑 이야기
마르탱 파주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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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비르질. 그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사라진 얼굴없는 그녀의 행방을 다시 떠올리기 시작했다. 건조하게 갈라진 자신의 감정을 한순간에 바꾸어놓은 그녀가 갑자기 이별을 고한 것이다. 내가 그녀와 정녕 연애를 했었단 말인가. 그동안 만나 온 여자는 많았으나, 만나고 있었던 여자는 없었노라고 중얼거린다. <아마도 사랑이야기>는 난데없이 이별통보를 하는 정체불명의 여자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이 책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주인공 비르질의 내면을 섬세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가차 없이 드러내고 있다. 얼핏 보아 독신주의를 지향하는 듯하나, 알고 보면 애정에 목마른 순수한 청년의 일탈을 보여주는 면도 적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누구와 사랑을 나누었는지에 대한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다면 아마 비르질처럼 행동하지는 않을까.

 

「주문한 차가 미지근해졌다. 클라라가 그리웠다. 기억도 할 수 없는 그녀, 하지만 비르질은 클라라가 그리웠다. 24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그는 클라라와 사귀었다고 믿었다. 진정한 사랑 이야기라 믿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클라라와 헤어졌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녀를 향해 조금씩 솟아나는 그의 마음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마치 상처받은 사람인 양 행동하는 것이 정말 그의 가슴에 상처를 낸 것 같다.」- 본문 중에서

 

 

 

 

친구들은 그에게 다그친다. 어쩌다가 헤어졌으며, 상심이 꽤 크겠노라고 말이다. 자동응답기에 남긴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이름만 알았을 뿐이다. 생김새, 사는 곳, 취미, 연락처를 비롯한 그녀에 대한 모든 것에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던 비르질은 심각한 고민에 휩싸인다. 어쩌면 자신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하여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건강검진을 받아보았으나,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나온다. <아마도 사랑이야기>는 의문의 여인을 찾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건망증 혹은 꿈속의 환상체험과도 같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우리는 그가 그녀를 찾아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의 건망증을 통해서 이 시대의 젊은이가 추구하는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억 속에서 사라진 얇지만 순수했던 참사랑이란 무엇인지, 사랑에 목마른 청춘이 진정 소중히 다루어야 할 인간의 감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땐 내가 철이 없었지.'라는 말로서 어설픈 첫사랑을 깊숙한 창고에 숨겨두기엔 우리가 사랑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오늘 사랑을 속삭이다가 등 돌리면 남이 되어버리는 우리의 짧고 강렬한 사랑이 결코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고… 비르질은 그녀를 찾기 위해서 삶의 중심이 흔들리는 위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가 그를 향해 부질없는 짓이라고 손가락질할 수는 없지 않은가. 행여 그것이 어리석은 자의 사랑일지라도… 우리가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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