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물속에서 들숨과 날숨을 내쉬며, 차츰 숨이 죽어가는 콩나물을 기다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우습기도 한데, 고춧가루와 참기름에 버무려지는 순간 다시 한번 제 몸에 고소한 빛깔을 입히면서 콩나물 무침이라는 음식으로 태어난다는 사실이 콩나물에게는 어둠을 뚫고 쭉쭉 뻗어 나갔던 성장의 의미를 찾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금물에 오이를 구석구석 씻으면서도 그러한 느낌이 들곤 했다. 아삭아삭 씹힘과 동시에 입안에 퍼지는 오이즙의 향이 기나긴 여운을 남기듯……

 

내가 생각하는 나의 삶도 구석구석 씹히는 맛이 있었으면 좋겠다. 쉴 새 없이 흐르는 물에 삶을 씻어내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삶을 거름망에 수없이 걸러내는 작업도 마찬가지다. 끓이면 끓일수록 깊은 맛이 우러나는 사골국처럼 나의 삶도 진지하게 우러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따금 채소나 과일을 다듬는 작업을 하게 되면 그 미묘한 동작에 집중하다가도 내 삶을 떠올리곤 한다. 이토록 신중했던가. 그저 나 자신이 온 정신을 집중했던 순간을 되새겨 본다. 조촐한 솜씨로 부엌을 정리하고 파울로 코엘료의 <흐르는 강물처럼>을 읽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몇 장 안 남았던 책이라서 얼른 읽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파울로 코엘료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회상한다. 고로 나 역시 내 삶을 회상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에게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를 드러내기까지의 기나긴 여정, 작가로서의 삶이 그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나. 고매하게 주름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 미처 벗겨 내지 못한 삶의 껍질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바로 그의 글속에 고스란히 짓눌려 버린 것이다. 그가 말한다. "폭풍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여느 폭풍처럼, 이것 역시 재해를 몰고 올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폭풍은 들판을 적셔주고 하늘의 지혜를 알려준다. 그리고 여느 폭풍처럼, 그것은 곧 지나갈 것이다. 사나울수록 폭풍은 빨리 지나간다. 얼마나 다행인지. 나는 폭풍을 마주하는 법을 배웠다."(p.324) 우리의 삶에 유익한 지혜를 선물하는 <흐르는 강물처럼>의 어느 장면에서 등장한 파울로 코엘료의 말이다. 이 책은 그가 겪은, 또는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101가지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우리의 삶도 흘러가기를 바라는 파울로 코엘료, 그는 기적을 믿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기적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격려한다. 그것은 한낱 부질없는 몽상이 아니라고 말이다. 간절히, 그것도 진실된 마음으로 끊임없이 믿고 행한다면 기적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고…… 산다는 것에 큰 책임감을 느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의 깨달음>의 저자 혜민 스님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이 바쁜가. 내 마음이 바쁜가?" 무엇으로 하여금 나 자신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단 말인가. 마음을 비우고 넓게 가진다면 삶이 한결 부드러워질 것이다.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