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갈릴레오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에게 추리소설은 역발상에 의한 쾌감을 느끼게끔 도와주는 삶의 윤활제 역할을 한다. 항상 어떤 문제에 놓이게 되면, 나는 집요하게 거꾸로 파고든다. 그리고 수많은 인과관계를 분석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습관은 일상생활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해서 나의 추리력을 실감케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결말이 뻔한, 속된 말로 수법이 흔하디흔한 것에 매력을 느끼지는 못한다. 제아무리 작가가 모래사장에 바늘을 숨겨놓았다고 한들, 반드시 누군가는 그 바늘을 찾아내고야 마는 것처럼 인간이 구상할 수 없는 가상공간을 현실처럼 만들지는 못할 것이다. 추리소설은 치밀하게 짜여진 환상의 세계와 같다. 일찍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을 미친 듯이 읽으면서 추리소설 작가들이 쓰는 일종의 트릭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들이 활용하는 독특한 트릭을 발견함으로써, 추리소설의 묘미를 예견하기에 이르러 흥미가 뚝 떨어졌던 경험도 있었다. 은연중에 독자로 하여금 트릭의 정체를 발견하게끔 방심한 작가의 소설은 썩 유쾌하지 못하다. 이번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갈릴레오>는 그러한 예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히가시노 게이고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내심 그의 냉철한 문체와 치밀한 구상력에 감탄사를 연발했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번에 읽은 <탐정 갈릴레오>는 다소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이 책은 총 5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었는데, 초자연 현상을 가장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에 등장하는 피해자는 갑자기 머리에 불이 나기 시작해서 곧 새까만 잿더미가 되어 죽거나, 이미 죽은 사람의 얼굴이 한 치의 일그러짐도 없이 마스크가 되어 전시장에 붙어 있게 되고, 가슴에 동그랗게 썩어들어간 상처만 남긴 채 죽거나, 한적한 바다 한 가운데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죽기도 한다. 끝으로 유체를 이탈한 사람이 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주장하는 알리바이를 입증하기도 하는데……

 

 

 

 

「갑자기 그의 눈이 화등잔처럼 커졌다. 그와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야마시타의 뒤통수에서 불길이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 불은 눈 깜짝할 사이에 머리 전체로 번졌다. 야마시타는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천천히 앞으로 쓰러졌다. 마치 커다란 나무가 불길에 휩싸인 채 넘어지는 것 같았다. 가즈히코와 다른 세 명은 그저 입만 쩍 벌리고 있었다. 멍하니 그 슬로 모션 같은 영상을 바라보면서.」- 본문 중에서  

 

천재 물리학자 유가가와 경시청 형사 구사나기. 두사 람은 불가사의한 살인사건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서 다양한 실험을 하기에 이른다. 정녕 망령의 짓이란 말인가? 아니, 틀림없이 인간에 의한 살인사건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범임은 아무런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범인은 하나같이 화학물질의 절묘한 결합을 통해 과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유가가와 구사나기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이미 독자로 하여금 범인의 정체를 파악하게끔 도와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독자의 입장에서 속된 말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미 독자가 초자연 현상의 실체를 먼저 밝혀내지 못할 것임을 장담한다는 전제하에 이러한 배려를 베풀었는지도 모른다. 살인을 성공적으로 마친 화학실험의 비밀을 향한 궁금증에 초점을 맞추고 일종의 두뇌게임을 시작했다고 보여지는데,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미루어 보면 다소 흡입력이 떨어지는 역효과를 부추긴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전작 <용의자 X의 헌신>에 비해 아쉬움이 큰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