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베르테르의 기쁨 - 알랭 드 보통의 유쾌한 철학 에세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근거를 향해 내던지는 혹평, 이미 주어진 현상에 대한 결론을 반박하지 않고 그 어떤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분명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인기 있는 것들이 옳은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이성에 의한 논리적이고도 합리적인 의문을 제기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바로 소크라테스의 날카로운 지적이다. 그것은 흔히 말하는 상식인가? 상식이 도마 위에 오를 수 없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판단하려는 자체가 매우 민감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인간의 합의하에 이루어진 상식이므로 더 이상 우리는 그것의 근본마저 변형시킬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직관에 의한 실행보다는 이성에 따른 논리적인 실행을 중요하게 여긴 듯하다. 알랭 드 보통이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에서 소개하는 철학자 중의 한 명인 소크라테스가 이성의 논리력을 주장했다면,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쾌락이라고 했다. 그는 감각적 쾌락을 강조했는데, 그 구성요소로는 우정, 자유, 사색이 대표적이었다. 내가 해석건대, 쾌락에 의해 충족되는 욕망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이 지닌 원초적 욕구와 가치를 깨닫게 됨으로써, 물질적 숭배에 의한 값비싼 재화만이 우리를 만족시켜줄 수 있는 욕구가 아님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 책은 앞서 말한 소크라테스와 에피쿠로스뿐만 아니라, 세네카와 몽테뉴 그리고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사상을 저자 알랭 드 보통의 개성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인간을 둘러싼 철학에 의한 사상에 숨겨진 모순과 진실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세네카는 자신의 사상에 '운명의 여신'을 등장시켰다. 인간이 굴복할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네카에 의하면 인간으로서 자신의 삶에 일어날, 일어나지 않을 그 모든 것을 예측하면서 그 재앙이 나를 찾아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살면서 희망을 향한 가능성에 모든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한다. 불행을 떠올리는 것이 금기가 되어버린 긍정의 도가 지나친 이 현실 속에서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불행의 실현성마저 생생하게 떠올리며 대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몽테뉴는 무엇을 말하였는가? 프랑스 남서부 보르도에서 동쪽으로 30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한, 수풀이 울창한 언덕 꼭대기에는 검붉은 지붕에 노란 돌로 지은 멋진 성이 있었다. 성의 한켠에는 탑이 솟아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몽테뉴가 책을 읽고 사색에 잠겼던 거대한 원형 서재가 있던 곳이다. 몽테뉴는 평생 책을 읽고 사색에 잠겼는데, 그는 인간이 지닌 지식의 부적절함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인간의 지혜란 곧 지적 우둔함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독서를 통해 인간으로 살기보다는 동물로 살아가는 삶의 이점에 주목했다. 익히 배우지 않고 본능에 의해 살아가는 동물적 욕구가 진정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리라고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높이 칭송하고, 또 그것이 있어서 우리 인간이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존중하는) 이성이 인간에게 자리 잡은 것은 우리를 고문하기 위해서라고 감히 결론 내려도 괜찮을까? 만약 우리가 지식을 얻게 된 결과, 그것을 얻지 않았다면 누릴 수 있었을지 모르는 평정과 안일을 잃게 된다면, 그리고 그 지식이란 것이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더 열악하게 만든다면 지식이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본문 중에서

 

본능에 충실하지 못했던 인간이 사회적 기대에 부합한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서 노력한다는 것이 결국은 지적 우둔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알랭 드 보통은 말한다. "평범하고 도덕적인 삶이라면, 비록 지혜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우둔함에서 몇 발 벗어나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성취를 이룬 삶이다."라고 말이다. 그에 반해 염세적인 철학자의 삶을 보여준 쇼펜하우어. 그는 고독한 철학의 길을 자처했고 세상이 자신의 위대함을 알아주지 못함에 절망한 나머지, 자신의 영혼을 쉴 새 없이 괴롭혔다. 그는 사랑이 삶을 지배하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그가 말하기를, "사랑이란 것은…… 성적 관심은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 만하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맡기게 만든다. 그러나 종(種)의 의지는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연인은 자신의 것과 상반되는 모든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간과하고, 모든 것을 그릇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과 자신을 영원히 묶어버린다."라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사랑이란 감정에 대하여 썩 유쾌하지 않은 결론을 도출한다. 그것은 상대로부터 거부당할 경우에 대한 일종의 위안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가 평범한 사랑에 의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했던 시련이 그와 같은 정립을 하기에 이른 것은 아닐까. 알랭 드 보통은 쇼펜하우어의 일생을 나열하면서 그의 사상이 정립될 수 있었던 실마리를 찾고 있다.

 

이에 끝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적이라는 의미에 심취했던 니체의 사상이 등장한다. 그 중심에는 세네카와 비슷한 금욕과 절제 그리고 무수히 많은 악(惡)을 피하는 법이 있다. 니체는 "인생이란 고통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안다. 또 인생을 즐기려고 애쓸수록 우리는 더욱더 그것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잘 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삶의 아름다운 면을 얻기를 포기하고 금욕을 실천해야 한다." 고 말했다. 그는 즐거움이 아닌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는 것이 인간의 삶에 궁극적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은 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유쾌한 입문서와 같다. 알랭 드 보통의 역설적인 문체가 소크라테스, 에피쿠로스, 몽테뉴, 세네카, 쇼펜하우어, 니체의 사상을 광범위하게, 그러나 그들이 추구했던 독립성과 절정에 도달한 이상 세계에 대하여 대중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고 있음이 눈여겨볼 만하다. 책이 다루는 주된 내용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나, 인간의 삶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펼치는 사상의 논리성에 대하여 면밀히 비교하고 사색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하물며, 그들이(책에 등장하는 철학자) 현재 우리의 삶과 극심한 대조를 이루는 주장을 펼쳤다고 한들, 우리가 불리하다거나 위협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러한 사상이 찬반논란을 거치면서 세기에 걸쳐 우리의 삶에 나타났다는 것은 결국, 그 근본적 토대가 인간에게서 출발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고통과 번뇌의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는 그들의 사상을 뛰어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이에 몽테뉴의 말을 새기면서 이 글을 정리하고자 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다." 자, 당신도 베르테르의 기쁨을 누릴 시간이 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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