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와의 이틀 밤
문지혁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고요한 사막의 밤, 여인은 꼬리가 높게 올라간 사자 곁에서 잠을 잔다. 나는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자의 갈기는 하늘하늘 흔들리고, 집시 여인은 평온한 숨을 내쉬며 꿈을 꾸고, 사자는 그녀의 머릿결에서 나는 향취를 맡는다. 사자와 집시 여인을 향해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아무것도 신지 않은 내 발가락 사이로 사막의 모래가 쏟아져 들어왔다가 스르르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본문 중에서

 

해석이 없어서 자유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사자와의 이틀 밤>

대게 단편소설은 문학평론가에 의한 작품해설이 수록되어 있기 마련이다. 작가가 작품에 무엇을 투영시켰는지조차 알아내지 못하는 독자를 위한 하나의 해석론일 것이다. 하나의 해석 가능한 관점을 제시해놓으면, 독자는 그제야 작품을 다양한 각도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것 같다. 단편소설집을 제법 읽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의도조차 파악하지 못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번에 읽은 <사자와의 이틀 밤>이라는 책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우리에게 조금 낯선, 그러나 조금 친숙한 소재가 골고루 섞여 있는 듯하다. 책은 읽는 이의 취향대로 해석하기 나름이라서,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가슴이 조금 답답했다. 굵은 빗줄기가 내리치는 날, 무미건조한 인간의 삶이 빨랫줄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일까. 무언가 억눌린 감정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작가는 글을 통해서 완벽하게 드러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보여줄 듯하면서 다시 감추고야 마는 희미한 문체가 불안을 증폭시켰다. 총 8편이 수록된 <사자와의 이틀 밤>을 취향대로 해석해보자면, 작가 혹은 인간의 자화상이 무의식중에 극적으로 회생하는 과정, 희뿌연 담배 연기 같은 남녀 간의 고독한 사랑, 그리운 사람을 향한 부질없는 몸부림에 이르기까지 가혹한 현실 속 인간의 모습을, 그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의 모든 것을 은밀하게 함축시켜놓았다는 생각이다.

 

 



 

 


「최연소 등단을 고대하며 헛된 꿈을 꾸던 시절은 이미 지난 세기의 일이 되어버렸고, 그 사이 고등학생이던 나는 어느새 삼십 대에 들어섰다. 따지고 보면 그 십여 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쓰고 고치고 보내고 떨어지는 과정의 반복뿐이었다. 십 년이 훌쩍 지나 강산이 변했는지, 혹은 내 소설이 조금은 나아졌는지, 아니면 나도 모르게 일만 시간의 법칙 같은 걸 채웠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 시간들은 이렇게 여덞 편의 흔적을 남겼다. 어떤 의미에서 이 소설들은 작가를 꿈꾸던 소년이 어떻게 아저씨가 되어갔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본문 중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간 없이 시작되는 이야기 없다는 것… 인간은 곧 문학의 시발점이 되어주는 셈인가? 부귀영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의미 없어 보이는 책 속에서 '왜 우리가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찾아냈다. 작가가 바라본 하늘과 내가 본 하늘이 같을 수 없듯이, 우리는 서로 다른 입장에서 시작하는 삶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서로를 더욱 이해하는 여유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주제가 다양한 책을 읽은 날이면… 그래서 다 읽은 다음에, 이렇게 감상문을 적어야만 하는 순간이 찾아오면 나는 더더욱 여유를 찾아내야 한다. <사자와의 이틀 밤>이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하여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을 뿐이다. 때로 실질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명쾌한 책도 필요하지만, 이처럼 은유적인 소설책도 읽어주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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