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 세트 - 전2권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쇤네는 인시 조금 지나 물지게를 지고 우물가로 왔습니다. 흰 비단 수건을 대야에 띄워 물에 찌꺼기가 뜨지 않는지, 황토가 섞이지 않는지를 보는데 불그스레한 색이 배어났습니다. 황토물인가? 혹은 지난밤 비에 흙탕물이 배어났을까? 등잔을 가까이 비추었더니… 피… 핏물이었죠."」- 본문 중에서

 

그것은 살인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경고의 메시지와 같은 것이었다. 왕의 학사들을 노리는 암흑의 살인마는 누구인가?

<뿌리 깊은 나무>는 세종대왕과 훈민정음 창제에 얽힌 집현전 학사들의 연쇄 살인사건을 그려낸 역사적 픽션작품이다. 훈민정음 반포일 이전 7일 동안 궁 안에서 벌어지는 충격적인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찾아내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주인공의 활약이 돋보인다. 궐 안의 연쇄살인 수사를 맡게 된 말단 겸사복 강채윤, 외소주간에서 도살을 업으로 하는 반인 가리온, 학사들과의 치정사건에 연루된 의문의 여인 소이, 집현전의 수찬 성삼문, 궁중 천문연구기관인 서운관 관인 이순지, 왕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대전 호위감 무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과 임무를 부여받은 등장인물이 치밀하게 짜여진 미로 속을 요염하게 헤집고 다니기 시작한다. 수사를 진행하던 채윤은 학사들의 죽음에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되는데……

 

 



 

 


「밤사이 궐 안 주자소의 화재 사고로 또 다른 학사가 불에 타 죽고 사건은 다시 미궁으로 빠진다. 현장을 조사한 채윤은 두 번째 학사의 죽음이 화재를 위장한 살인임을 알아차리고 지난밤 은밀하게 주자소로 향하던 무휼을 의심한다. (…) 등잔조차 없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채윤은 오들오들 떨었다. 방문 밖에는 추적추적 빗소리가 들렸다. 문득 창밖이 불그스럼해졌다.」- 본문 중에서

 

 

 



 

 


매일밤 이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 주상의 침전에 출몰하는 귀신의 정체, 저주받은 책들의 공동묘지에 숨겨진 비밀!

새로운 격물의 시대를 열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 찬 주상과 젊은 학사들의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한다. 비록, 이 책이 픽션에 불과한 것일지라도 지난 9일 한글날의 의미를 되새기게끔 만들어주는 데는 결코 부족함이 없었노라며 말하고 싶다. 지금 내가 책을 읽고 나의 생각을 글로서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나라의 뜻을 바로 세우고 백성들이 저마다 품은 뜻을 당당히 펼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스물여덟 글자를 만들게 되었노라며 훈민정음 해례에서 밝히고 있는 세종대왕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 듯하다.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 속에 숨겨둔 세종대왕의 비밀 코드를 파헤치는 사람들의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실려 있다. 이 책은 최근 드라마로 제작되어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원작에 가까운 박진감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겠다. 예전에 이정명 작가의 작품인 <바람의 화원>도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나, 원작을 살려내기란 쉽지 않은 것임을 확인했던 경우였다. 여튼간에 결말이 궁금해서 밤을 새더라도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으로 기억에 남을 듯하다.


 


 

「시대는 살아 숨쉬었다. 시대는 생각하고 성장하며 완숙해졌다. 사람이 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시대가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시대가 성장하는 데는 그 시대의 명을 좇는 자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거대한 시대의 전쟁에 맨몸으로 나선 자들이 그들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시대가 성장하고 발전하여 융성의 시대가 올지라도 사람들은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의 부름을 피하지 않고 맞선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살이 융성의 시대를 만드는 한줌 거름이 됨을 기꺼워 할 것이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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