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더가 우는 밤 - 제1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
선자은 지음 / 살림Friends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은조님 말씀대로 아버님의 사인은 목 골절이지만, 처음 저희 쪽에 오셨을 때 전두부를 부딪힌 상태였습니다. 저는, 저는…… 그분의 진짜 사인을 꼭 밝힐 겁니다. 그래서, 꼭 그래서…… 한을 풀어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릴 겁니다." (…) 어쨌든 아빠는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는 소리다. 그건 엄마도, 나도, 아빠 기억 속에 없다는 말이다. 그 생각을 하니 서글퍼졌다.」- 본문 중에서

 

은조의 아빠는 펜더 스트라토 캐스터를 사랑하는 기타리스트였다. 아빠의 손길에 파르르 떨면서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냈던 펜더… 은둔자처럼 기타만 끌어안고 세상과의 접촉을 끊어버린 은조의 아빠, 그런 아빠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와 딸 은조는 '아빠는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한다. 아빠에게 유일한 희망은 펜더, 영원히 숨고 싶은 곳은 바로 6년 전에 새로 이사 온 집이 되었다. 은조의 아빠는 무성한 잡초로 뒤덮힌 이층 집을 저렴한 값에 구입하자, 집을 위해서 자신이 존재하는 것마냥 집착하기 시작한다. 집 안 곳곳을 고치고 꾸미기를 수십 번… 여느 잡지에 나올 법한 궁전같은 집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재탄생 시킨 것이다. 그러던 은조의 아빠가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펜더가 우는 밤>은 아빠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딸의 심정을 복잡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그와 더불어 아빠와 밴드 생활을 했던 존과 뚱이라는 귀신, 죽은 이의 명부특별감사를 맡고 있는 370이라는 의문의 귀신도 등장하여 함께 사건을 역추적한다.

 

 



 

 

 


「아빠가 뒷집 아저씨와 마주하고 있던 그 장면. 나는 내내 그 장면이 흔히 않은 일이어서 기억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그게 아니었다. 그 장면은 단순히 이웃집 아저씨와 우리 아빠의 다정한 모습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어린 나는 그 장면을 더 기묘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내내 기억하고 있던 것이다. 아빠는 뒷집 아저씨, 즉 신유네 아빠와 다투고 있었다. 아빠의 화난 모습은 나에게 너무도 낯선 풍경이었고, 그래서 내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것이다.」- 본문 중에서

 

<펜더가 우는 밤>은 저자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창작소설이다. 물론 허구의 세계, 가상인물이 등장하는 소설 자체가 창작이라고 볼 수 있겠으나, 이 책은 판타지 요소가 재치있게 삽입되어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운 상상을 하게끔 유도한다. 비록 세상과 벽을 쌓고 단절된 생활을 했으나,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한 예인으로 살다간 아빠의 업을 기리기 위하여 노력하는 딸의 모습이란… 이승을 떠난 아빠의 친구들은 다시 하나의 뜻을 위해서, 은조의 아빠를 위해서 저마다 품었던 선율을 모으기 시작한다. 음악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모습은 마치 저마다 숨겨놓은 아픈 사연을 꺼내어 아름다운 화음으로 승화시키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 책은 음악을 사랑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보여준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욕심을 내보자면, 열일곱 살 은조의 내적 변화를 세심하게 드러내서 가족 구성원을 맺어준 혈연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즉 소설의 주춧돌이 되어주는 음악적 감성으로 다듬었다면, 작품의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 한밤중에 울려퍼지는 펜더의 구슬픈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펜더 바디가 우는 게 손끝으로 느껴졌다. 아빠가 왜 나에게 그 곡 연주를 가르쳐 주었는지 알 것 같다.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나는 이 기타가 울리는 동안 행복해질 수 있다. 아빠는 내가 행복해지길 바란 것이다. (…)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 구름이 지나가는 소리까지 다 우리 연주처럼 여겨졌다. 아빠가 만든 곡이 우리 집에서 완성되고 있는 것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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