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탱 파주 지음, 이상해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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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바람이 부는 방향을 등지고 서 있으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허공의 손길에 의해 밀려가는 느낌을 받는다. 손바닥을 오목하게 모으고 떨어지는 빗물을 받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몸속으로 물의 기운이 흥건히 스며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자연을 바라보는 몸과 마음이 새롭게 열렸다는 신호일까? 건조한 날에는 무중력 상태에 놓인 듯, 정신마저도 몽롱해지곤 한다. 자극 없는 날씨가 사람의 마음마저 힘 빠지게 하는 것이다. 자연 속에서 소재를 찾아내어 영감을 얻고 싶었다. 그래서 풍경이 있는 곳이라면 꼭 찾아가고 싶다. 글이 쓰고 싶다는 것은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뜻일 테지. 그래서 소재를 찾아 떠나는 이 심정을 그 누군가는 이해하고 공감해주리라 믿는다. 이번에 읽은 <비>는 말 그대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소재로 쓴 책이다.

 

 


「비는 우리에게 재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먹구름이 선창을 비우고,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럴 때면, 시름을 던 동시에 겁에 질린 우리는 생각한다. 안녕, 모든 게 끝났어, 인류는 이제 곧 비에 휩쓸려 도랑 속으로 사라질 거야.」p.21

 

 

 

인간의 삶은 흐르는 빗물, 땅으로 내리 꽂히는 빗물이 지닌 섬광 속에는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저자 마르탱 파주의 발상 전환은 그야말로 기발하고 참신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리는 빗줄기에 깊숙이 내포한 본질을 인간의 삶에 투영시켰다는 점에서 작가의 통찰력이 돋보인다.

 

 


「구름의 자궁이 수축된다. 하늘의 배가 살짝 열린다. 거기서 양수가 흘러나와 우리를 덮친다. 매번 비가 내리는 것은 양수가 터지기 때문이다. 그것을 탄생의 예고로 받아들여 축하하자. 우리에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다. 우정, 사랑, 사상, 어쩌면 우리 자신의 일부도. 많은 이들이 유아기 때 맺은 그 약속들의 탯줄을 자르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어른이 되지 않을 것이다.」p.49

 

 

이 책을 읽고 비가 오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긍정과 부정적 효과는 무엇이 있으며, 우리의 심리는 어떻게 자극받는지를, 한 사람의 인생에 커다란 전환기를 가져다주기도 하는 빗줄기의 의미에 대하여, 왜 우리는 비를 좋아하는가? 싫어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자연 현상에서 시작된 한 사람이 지닌 내면세계의 풍부함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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