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마
최정원 지음 / 어문학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한 남자가 자신의 유전인자를 빼내어 시험관 안의 세포에 주입한다.

푸르스름한 액체가 들어 있는 시험관에는 서서히 세포분열이 일어나

하나의 합성물질이 만들어지고 빠른 속도로 성장한다.

그리고 특수한 철분과 무기질로 이루어져, 장차 돌연변이 레트로바이러스로 만든

성장촉진제를 주입함으로써, 마침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하나의 생명체가 탄생하게 된다.

 

「'이 실험이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기를….;」p.11

 

나는 이 대목에서 이미 그가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말았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유전인자를 가지고 복합적인 제3의 생명체를 탄생시키려 했다는 것,

그렇게 생체로봇 '맏산애'가 탄생한다.

갓 태어난 아기와 다름없는 생체 로봇에게 컴퓨터, 값비싼 그림책을 사주는 것을 시작으로

'맏산애'는 스스로 단어를 습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는 로봇 행동지침이란 규칙을 맏산애에게 입력시키고

인간과 다름없는 인간다운 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인간의 감정이라는 것을 쉽사리 주입하지 못하는데…….

 

<카르마>는 현실과 미래를 아우르고 그 속에 감춰진 사회적 알레고리가 주는 섬뜩함과

공포에 대한 우려와 심각성, 그리고 그에 따른 실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맏산애'를 탄생시킨 이기웅 박사!

어느 날 뇌사 상태에 빠진 '돌이'라는 아이를 알게 되고, 그 아이의 기억메모리칩을

'맏산애'에게 주입해서 진정한 인간으로 만들려고 하는데…….

 

 

「네가 이 세상에서 훌훌 떠나 버리지 못한 것은 업, 카르마 때문이야.

이 일을 잊지 않도록 네 이름을 카르마라고 짓겠다.

하지만 너는 윤회의 수레바퀴에 치어 신음하는 카르마가 아니다.

인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끈을 놓을 수 없는 카르마가 되어야 해.」p.87

 

 

<카르마>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이기웅 박사와 카르마를 선을 행하는 자라 칭하면

그들의 반대쪽에서 초인지적 힘을 지닌 카르마를 빼앗아 지구 정복은 자신을 중심으로

시작되어야하며, 그것이 만인의 행복이라 스스로 자처하는 하백 박사를

악을 행하는 자라 볼 수 있겠다.

 

 

사회는 선(善) 안에 갇혀서만 살 수도 없고 또 악(惡)으로 인해 돌아가서도

안 될 것이다. 때로는 선함이 필요하고 또 악함이 필요할 때도 반드시 존재한다.

 

책에 나오는 '하백 박사'는 어릴 적 세상을 떠난 어린 딸을 다시 재창조했다.

그의 딸 '아리수'는 전형적인 사이보그라 볼 수 있다.

 

 

「내 마음은 언제나 차갑다구요. 아버지 과학은 실패했어요.

전 아리수의 복제인간도 아니에요. 제 뇌에는 컴퓨터 칩이 들어가 있어요.

전 거기 입력된 자료에 의해서 말을 하고 생각하는 척하는 거라구요.」p.164

 

 

 

'아리수'가 가진 다섯 살짜리의 몸은 더는 성장하지 않고 오직 정신적인 성장만 진행된다.

'카르마'를 자신의 아들이자 분신이라 생각하는 이기웅 박사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카르마>‘SF 청소년소설‘이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사실 그 대상자는 광범위하다고 본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을 통해 나는 독자들과 함께 생각해 보고 싶다.

선과 악, 삶과 죽음, 죄지은 자와 심판하는 자

그리고 SF에서 가장 중요할는지도

모르는 지구인과 외계인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p.331

 

이것은 그저 생체로봇의 소유권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것이라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카르마>의 시작이 업(業)으로서 일어났으니, 그 끝도 업(業)으로서 다시금

업(業)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는 일종의 경각심을 가져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날드덕 2010-07-15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정말 잘쓰셨네요 ㅠㅠ 평소에 독후감이나 논설문..? 이런걸 자주쓰시는건가..? 너무 잘쓰세요...너무 부럽네요 ㅠ.ㅠ

서령(書嶺) 2010-07-16 19:02   좋아요 0 | URL
에고.. 별말씀을 ..^^;; 근데 '카르마' 진짜 재밌게 읽었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리뷰도 즐거운 마음으로 작성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