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라오가 좋아
구경미 지음 / 현대문학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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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도 이제 세계화가 되어가는 듯하다.

거리에 나가면 외국인 노동자는 물론이고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여성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한국에도 다양한 인종이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외국인 여성과의 결혼을 약간 삐딱한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오죽하면 외국인 여성하고 결혼을 할까?' 라던가,

또는 '한국으로 데리고 오는 데 비용은 얼마나…' 와 같은 말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거기까지는 괜찮다. 말이라고 무슨 말을 못할까?

하지만, 외국인 여성들이 한국으로 와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며,

자신의 권리를 당당히 내세우고 떳떳하게 살고 있느냐, 아니 살 수 있게끔

우리 한국 남성이 그렇게 해주고 있느냐가 문제다.

물론 잘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시부모와의 갈등을

비롯해서 아직 한국어를 습득하지 못해 의사소통 문제에 이르기까지….

문제는 끊임없이 쏟아진다.

 

 

<라오라오가 좋아> 이 책은 평범한 40대 남성과 20대 라오스 여성인 아메이가

벌인 일종의 사랑(?)도피를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도피 행각이 아니었다.

나름대로 각자의 이유 있는 도피였다. 라오스에 파견되어 건설업 소장으로

근무하던 그에게 뜻밖의 사고가 터진다.

현장에 강도가 침입하면서 한참 난동이 일어나던 중,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강도들 앞에 나타난 아메이의 아버지는 강도가 쏜 총에 맞아 죽는다.

그것을 시작으로 유족에게 인사를 하러 가게 된 남자와 아메이의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30대 후반을 바라보는 처남이 아직 장가를 가지 못했음에 아메이를

소개해주고 결혼까지 성사된 마당에 벌어지는 뜻밖의 도피 행각이란…….

 

「남편들은 자신이 이용당하는 게 아닌가 의심하고 우리가 도망갈까봐 걱정해요.

(중간생략) 할 말을 하면 말대꾸한다고 화를 내고 말을 안 하면 곰 같다고 화를 내요.

살림을 하라면서도 돈을 잘 안 줘요. 음식을 못 만든다고 구박해요.」p.154

「인생이 우울해서 술 좀 마신 거? 서울에 못 가게 한 거? 옷 안 사준 거?

동생 학비 보내자고 했을 때 돈 없다고 한 거?(중간 생략)

험한 말은 좀 했다. 그래도 손찌검은 안 했다. 가장이 할 도리는 다 했다.」p.111

 

자신의 매형과 눈이 맞아 쥐도 새도 모르게 도망을 가버린 외국인 아내를 원망하면서

술로서 마음을 추스르는 아메이의 남편 모습, 그리고 라오스에서 풍족하게 살지 못했던 마음에

한국으로 오면 마음고생 안 하고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노라 생각했던

아메이의 모습에서 지극히 현실적인 우리 사회의 모습과 서로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생각의 차이를 엿 볼 수 있었다.

 

아내를 버리고, 자식을 등지고 아메이를 선택했던 그와 그를 믿고 아니, 진정 믿었는지

알 수 없는 아메이의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도피는 아메이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가면서 끝이 난다.

말없이 사라진 아메이를 찾으려고 가진 것 하나 없는 빈털터리가 되어 온 천지를

헤매다가 결국 원래 살던 집으로 간 것을 알고 다시 돌아오라 매달리는데….

 

<라오라오가 좋아>에서 '라오라오'는 라오스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라오스의 전통술 이름이다.

아메이 아버지의 유골 항아리를 들고 아메이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가 처음 마신 술이었다.

 

「한마디로 화끈한 술이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강한 자만이 마실 수 있는 술이었다.

마시면 강해지는 술이었다. 넉 잔만으로도 온몸에 활기를 주고 뱃속에 용기를 심어주었다.」p.81

 

화끈한 라오라오를 마심과 동시에 그의 눈에 비친 아메이를 향한 사랑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

 

「이제는 결정해야 했고 그는 후회를 남기지 않기로 했다.

라오라오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p.87

 

결국은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짧게 끝이 났지만, 남은 자들에게는 아픈 기억과

상처가 남겨졌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사는 지역에도 다문화 가정이 제법 많은 걸로 알고 있다.

거리에 나가면 아기를 등에 업고 다니는 외국인 여성도 자주 본다.

<라오라오가 좋아>를 읽고 다문화 가정의 실태와 우리 사회가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도움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며,

그들의 일탈기를 통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나름 유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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