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전용복 - 옻칠로 세계를 감동시킨 예술가의 꿈과 집념의 이야기
전용복 지음 / 시공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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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온통 피난민들로 인해 북적거리고 어수선했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은 전쟁으로 인해 혼란스러웠다.

소년의 아버지는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가 간신히 탈출을 하여 고국으로 돌아와

소년의 어머니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렇게 소년이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했던 형편에 합판으로 기운 자국이 선명한 판잣집에서

유년기 시절을 보내면서 소년에게 유일한 낙이 있었다면 붓을 잡는 것으로 마음을

다스렸던 걸로 보인다.

어려운 형편에 그림 도구를 살 수 없었던 소년은

판자로 된 담장을 캔버스로 삼아 그림을 그렸고, 손재주가 좋았던 탓에 길에서

주워온 나무토막을 다듬어 토끼집과 개집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일찍이 병으로 세상을 먼저 떠나버린 형과의 이별, 그 충격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생계를 이어나갈 여력을 잃으시고 주저앉아버리셨다.

그렇게 소년은 가장 아닌 가장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우연히 한국목재주식회사에 취직하면서 서서히 옻칠과의 연을

맺게 되는 듯 보였다.

그 소년은 장차 세계를 놀라게 할 한국인 전용복이었다.

 



 

 

<한국인 전용복>의 저자 전용복은 국내에서 옻칠작가로 활동을 하다가

일본의 유서 깊은 연회장 '매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 5천 여점을

복원, 제작해냄으로써 세계적인 옻칠작가로 인정을 받았다.

현재 세계 최대의 옻칠 미술관인 이와야마 칠예미술관의 관장,

전용복 칠예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일본 이와데 현의 문화예술진흥심의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전, 열정, 신념이 완벽하게 어우러져 매순간 생애 최고의 날을 만들다


전용복의 삶 자체가 한 편의 인생드라마였다.

자신의 재능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어 찬란한 빛을 발하게 할 줄 알았던 전용복

군 제대 후 우연히 한국목재주식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가구 디자인 쪽으로

관심을 쏟게 된 것이 옻칠과의 만남을 이끌었던 계기였다.

그는 창조보다 단일화된 가구디자인 생산에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잠재된 예술적 욕망을 끌어내어 새로운 디자인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사일과 퇴근 후 새로이 몰입해야 되는 디자인 작업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과감히 사표를 내고 개인 공방을 열어 자리를 잡고 옻칠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다.

 



꿈을 향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순리대로 차근차근 진행되는가 싶다가도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해도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새로운 기법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한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실험에 실험을 거듭해 비로소 제 것으로 만드는 그의 모습에서

강한 희열을 느꼈다.

 

'이렇게 살아야되는구나. 이것이 진짜 인생을 향해 도전 정신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세상을 놀라게 할 커다란 행운이 찾아온다.

일본의 '아서원'이라는 곳에서 오래된 밥상을 복원해달라는 부탁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장차 일본의 유서 깊은 연회장 '메구로가조엔' 의 옻칠 작품 5천 여점을

복원하는 총 책임자로 발탁된다.

메구로가조엔은 일본 최고의 엄청난 규모와 역사를 지닌 연회장이다.

그 곳에는 일본 최고의 예술작품이 밀집해있기도 했다.

전용복은 그 곳에서 한국의 선배 장인들의 손이 스쳐간 옻칠작품을 보면서 이렇게 다짐을 한다.

 

「대나무, 소나무, 학, 새우……. 선배 장인들이 땀과 눈물로 작품 속에 새겨 넣은

자연에서 나는 생명을 잉태시켜야 한다. 핏기를, 온기를 불어 넣어야 한다.

(중간 생략) 나는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간 선배 장인들의 혼령들과

작품 속 생명체들에게 굳게 약속했다. 기필코 목숨을 바쳐 내 손으로 되살려놓겠다고…….」p.107

 

<일본의 장인들이 복원 불가라고 했던 '송학도'를 완벽하게 복원해 낸 전용복의 작품>


모든 것이 일차천리로 진행되지는 않았다.

일본의 유서 깊은 연회장 작품들의 복원을 위한 무수히 많은 일본 장인과

단 한명의 한국인이었던 전용복을 두고 메구로가조엔 측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던 걸로 보인다.

2년전 메구로가조엔 측근으로부터 복원작품에 관한 제의를 받고,

철두철미하게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메구로가조엔 미술품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복원가능여부 및 재료의 성분을 파악하며 완벽한 준비를 하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다.

그의 치밀함에 놀라움과 감탄사를 드러내는 일본인들의 모습에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진심으로 자랑스러웠다.

아직 자신에게 복원을 담당해달라는 제안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반드시 자신이 하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파고드는 모습은

잠들어있던 나의 꿈을 미친 듯이 흔들어 깨우는 듯한 깊은 섬광을 느꼈다.

 

 

그는 해냈다. 해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국인 전용복이었다.

메구로가조엔의 오픈식 날 하늘을 향해 휘날리는 태극기를 보며,

그동안 피와 땀으로 모진 세월을 보냈던 전용복과 함께 했던 동지들은

연신 만세를 외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인 전용복>을 읽으며 못내 안타깝고 마음이 애절해지기도 했다.

고국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일본에서 자신의 재능을 펼치며, 장차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던 그의 삶에서 우리의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애국심이

끓어오르면서도, 우리의 장인을 일본에게 빼앗겼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그만큼 자랑스럽고 훌륭한 그였기에 이런 속내를 비춰본다.

그의 삶을 어찌 이 짧은 글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미처 다 알리지 못한 전용복의 삶은 이제 <한국인 전용복>을 통해서

제대로 느껴보기를 바란다. 그는 진정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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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바이러스 2010-06-24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리뷰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