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 예찬
에비사와 야스히사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0여년 전, 한 꼬마는 동화책을 읽으면서,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는 버터와 치즈의 맛이 무척 궁금했다. 부드럽게 살살 녹는다는 버터와 말랑말랑하고 폭신폭신하다는 치즈는 어떤 맛일까? 생전 본 적도, 맛본 적도 없는 서양 먹거리는 동양의 어린 꼬마에게는 한없이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먹거리였다.
아이는 어른이 되었고, 버터와 치즈는 더 이상 이국적이지도, 신비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어린 시절의 미지의 먹거리를 향한 동경만은 아련한 추억이었다.
20여년 뒤, 어른이 된 그녀는 다시 한 번 한없이 궁금한 미지의 맛을 만났다. 이번엔 단어도 좀더 복잡하다. 푸아그라 파르페, 부야베스, 에크르비스 샐러드, 그라탱 드 피누아, 송어 스터프, 넙치 뫼르니에…. 서양 요리의 최고봉이라는 프랑스요리가 줄줄이 등장하는 <미식예찬>이라는 책을 만난 것이다.

<야구감독>을 통해 이미 한 분야에서 장인의 경지에 오른 실존 인물의 삶을 손에 잡힐 듯 그려내는 데 탁월한 작가적 솜씨를 보여준 에비사와 야스히사는 <미식예찬>에서도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이번에는 야구 배트와 글러브 대신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와 접시를 들었을 뿐, 작가의 전개방식은 일관된다. 생생하게, 치밀하게. 재료도, 소스도 프랑스요리 레시피 그대로를 고집하는 ‘진짜’ 프랑스요리를 향한 불굴의 탐구정신과 일본인 특유의 ‘잇쇼켄메이(열심히) 정신’이 열두폭 화첩을 하나씩 펼치듯 착착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아직 우리에게는 프랑스요리가 친숙하지 않지만, 이웃 일본에서는 일상 속에 꽤 깊숙이 파고들어 있다. 그 뒤에는 전후의 일본, 아직 정통 프랑스요리가 소개되지 않았던 시절에 그것을 소개하고 널리 보급한 전설적인 인물인 쓰지 시즈오라는 남자와 그가 평생을 바쳐 키워낸 일본 최고의 조리사 학교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 변변한 프랑스요리 소개 책자조차 없던 시절, 쓰지 시즈오는 직접 프랑스로 건너가 미슐랭 가이드 선정 별 셋짜리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끝없이 요리를 먹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혀에만 의존해 프랑스요리를 배워간다. ‘최고급 프랑스요리를 매일 먹을 수 있다니’ 하고 부러워하는 것도 잠시. 우리도 한정식을 먹으면 위에 엄청난 부담이 느껴지듯이, 프랑스요리를 풀코스로 먹는다는 것은 위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일종의 ‘몸학대’ 행위다. 그럼에도 쓰지 시즈오는 자신을 마루타로 삼아 먹고 또 먹고, 연구하고 또 연구한다. 현대 프랑스 요리의 거장 폴 보퀴즈 등 프랑스 최고의 셰프들과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교류, 일본 내 조리사 학교와의 경쟁구도나 부패한 공무원 사회와의 갈등 등도 생동감 있게 그려진다.

미식의 세계란 어쩔 수 없이 동물학대(?)와 맞물린다는 사실, 그리고 최고급 식재료와 최고급 와인이 등장하는, 한 끼에 몇 백만원씩 드는 호화로운 풀코스 디너 파티 등의 장면에서 느껴지는 계급적 차이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다루는 소재가 ‘프랑스요리’인 만큼 어쩔 수 없으리라. 그 두 가지만 접어두고 읽는다면 무척 먹음직스러운 소설이다.

… 아, 프랑스 레스토랑에 한 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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