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아이들 (반양장)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는 즐거운 경험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것은 고통스럽다. 책장을 넘기는 것이 이처럼 힘겹고 목이 멘 것은 처음이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은 1986년에 일어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로부터 몇 주 동안에 한 가족(으로 대변되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닥친 무시무시한 비극을 그린 소설이다. 책은 악몽이 시작된 운명의 금요일, 1986년 4월26일 새벽 1시30분부터 시작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쉬고 있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직원 안드레이씨의 집 바로 근처에 있는 발전소에서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는다. 4기 원자로가 폭발한 것이다. 평화롭던 동네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미처 '방사능'의 공포를 실감하지 못한 채 피난길에 오른다. 열다섯살 소년 이반도 아버지 안드레이, 어머니 타냐, 여동생 이네사와 함께 행렬에 합류한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피폭자 분류에 의한 갑작스런 가족의 생이별, 그리고 죽음에 의한 영원한 지상과의 이별뿐이다. 아, 죽음 전에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에게 닥친 무시무시한 육체적 고통도 빠뜨리면 안되겠다. 눈이 멀고, 머리카락이 한 주먹씩 빠지고, 피부에 붉은 반점이 돋고, 입안에서 피가 나고, 다리가 풀려서 걸을 수가 없으며, 백혈구가 감소해 창백해진 아이들은 폭발사고 뒤 불과 며칠 만에 하나둘 죽어간다. 그리고 당국의 철저한 보안단속 아래 피지도 못한 그들의 생명은, 한 송이 꽃도, 한 마디 작별의 인사도 없이 구덩이 속에 내던져진다.

그러나, 이반의 눈을 멀게 하고, 여동생 이네사를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게 만들고, 어머니 타샤가 병원을 돌며 아이들을 찾아헤메게 만든 이 죽음의 재는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 체르노빌 사람들을 죽이고 그들의 삶을 파괴한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중에서 흩어진 재는 바람을 타고, 비를 타고, 물을 타고 조금씩 지구 전체로 스며들어와 인류의 목을 조여온다. 

 이제 20년이 넘은 과거가 되어 버린 체르노빌. 반핵의 구호는 갈수록 빛이 바래고, 원자력 에너지는 '깨끗한' 대체 에너지인양 버젓이 TV광고를 해대는 세상이 되었다. 우리의 외면 속에 오늘도 신음하는 체르노빌이 있는데도. 지은이 히로세 다카시 선생은 원자력 산업의 보급은 "1950년대에 일군의 독점자본가가 돈벌이를 위해 그 보급을 획책한 데 기인한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란 것도 알고 보면 원자, 수소폭탄 산업을 경제적으로 성립시키려는 상당히 무리한 방법일 뿐"이라고 원자력 발전의 본질을 정확하게 폭로한다. '군수산업 가운데 이윤을 내는 데 단연 으뜸'이기 때문인 것이다.

체르노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 이순간에도 방사능 오염에서 비롯된 각종 암에 시달리는 사람들, 죽어버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우리는 정확한 통계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 백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있다고 한다. 핵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이상,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제2의 체르노빌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는가. 어느 누가, 우리가 이반 소년처럼 눈이 멀거나, 이네사처럼 입에서 피를 토하며 죽지 않을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가.

안드레이, 타샤, 이반과 이네사, 그리고 핵으로 인해 고통스럽게 죽어간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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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팍 2006-11-06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기회가 되면 꼭 읽어봐야 겠네요. 서평 잘 읽었습니다.

2006-11-21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