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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역사 21세기
마이클 화이트.젠트리 리 지음, 이순호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기본적으로는 낙관적으로 미래를 보고 있다. 핵전쟁과 대혼란 같은 재앙을 설정하고는 있지만, 다른 주제를 다룰 때는 암울한 분위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재앙에서도 휴머니즘을 겸비한 영웅의 등장으로 무마(?)하려는 시도가 엿보이는 걸 보면, 어떻게든 좋은 미래를 꿈꾸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장밋빛인생의 상당 부분은 과학의 발달에 빚지고 있는데, 이건 저자들이 사회학자나 정치학자가 아닌 과학자이기 때문일 게다. 그래도 과학에만 치중하지 않고 다른 부분도 지식을 바탕으로 예측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별셋을 찍을까 하다가 네개를 찍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인적으로 학제적으로 접근한 책을 꽤 좋아하는 편이라...)
읽으면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미국에 대한 일관된 냉소주의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대접을 받아마땅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저자가 유럽 사람이라서 그런가? 하는 정치적인 의문을 갖게 할 정도로, 미국에 대한 비판은 집요했다. 하긴 여태껏 해왔던 걸 보면 좋게 생각해주는 게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아쉬운 점이라면, 어쨌든 시각이 서양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 중국과 멕시코의 부상을 그리고는 있지만 정보의 한계 탓인지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무엇보다 분야별 영웅 설정 구도는 읽는 내내 불편했다. 어차피 가상역사고 저자들이 이 책에 스토리를 가미하기는 어렵다고 해도, 모든 사건의 해결을 한 인물에 맡겨버리는 건 21세기를 헤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아니라고 본다. 미래에 대한 예측서나 트렌드서가 아닌 '가상역사'를 표방했다면, 기존의 역사서가 가진 폐단을 극복해보려는 대안적 시도도 해봄직한데, 철저히 중심인물(역사의 승자) 중심으로 풀어가는 건, 아무리 지면과 정보, 필력의 한계가 있다 해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저자들의 문장력도 기본은 됐겠지만, 번역의 매끄러움은 칭찬할 만하다. 두꺼운 책이라 언제 다 읽을까 싶었는데, 잘 만든 글 덕분에 비교적 쉽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