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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책을 사면서 '지른' 책인데, 남편이 먼저 읽더니 계속 언짢아하며 읽지 말라고 한다. 남편은 심성이 지고지순 스타일이어서 절대 '멀티' 같은 건 할 사람이 못 되지만, 그렇다고 보수적으로 꽁꽁 막힌 사람도 절대 아니기에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약간 의외였다. 저 격한 반응은 왜일까...
작가의 말에 나오는 축구 얘기며 사회학은 또 뭔가 했더니, 책 안에는 일부다처 및 일처다부에 관한 온갖 사회학, 인류학 논의들이 나온다. 또 주인공의 현재 심경을 꼬박꼬박 축구(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축구는 별로 상대를 안 해준다. 남편이 새벽잠 설치며 보는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각종 활약상과 어록들만 상대해 준다.)에 비유한다. 수많은 축구와 관련된 사건과 어록 가운데서 주인공 상황에 맞는 걸 찾아내 접목시킨 부분은 참 절묘하다 싶었다. 그래서 축구에는 안티에 가까움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반면 아내가 일처다부를 옹호하는 사회학, 철학, 인류학 논의들은 거의 날것으로 줄줄 나오는 것이, 이 사람은 자기 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아예 매뉴얼을 만들어놨나보다 할 정도다. 전체 내용과 좀 겉도는 느낌이어서 약간 지루했다. 이 정도로 소화할 거면 빼도 되지 않았을까 싶게...
한때 나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때 프리섹스가 맞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얼토당토 않게도 연애를 안 하던 기간에 이런 백일몽을 꾸고 있었다. 왜 백일몽이냐 하면, 프리섹스주의 같은 게 서로 상처받지 않는 쿨한 사랑을 꿈꾸고 만들어진 걸 텐데, 상대가 프리섹스주의자가 아닌데 혼자 쿨하고 혼자 멋있는 척하면 그 무심함에 결국 상대가 상처 입는다는 뻔한 사실을 아주 쉽게 간과한다는 거다. 자기 겉멋을 위해 또는 자기 욕정을 위해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예의 따위는 쉽게 내던지는 꼴이 된다. 주인공의 아내가 그럴듯한 이론을 들이대며 혹은 맨송맨송한 순진한 얼굴로 자기 주장을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분노가 느껴지는 것도 이런 이유였다. 남편이 옆에서 '화나지, 화나지?' 하고 물었을 때 '응,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어'라고 대답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책 자체로는 재미있고 상상력도 발칙하며 문체도 나무랄 데 없다. 어차피 이런 위험한 가정을 한 데 결론을 요구하는 건 무리니 결말이 다소 썰렁한 것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아 정말이지 예의를 상실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