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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촛불집회가 이제 100회차를 맞는다는 뉴스를 보고, 허, 벌써 100일이라는 데 소름이 돋았다. 물대포에 백골단에 별 xx를 다 해대는 공권력에도 100일을 버텨낸 사람들에 대한 말못할 우직함과, 그 사이 사과를 몇 번씩이나 했음에도 돌아서면 칼을 들이대는 정권의 뭐랄까, 잔임함과 무식함과 아전인수가 곁들여진 행태 때문이다. 살면서 이민을 고려해 본 적이 두 번 있는데, 한 번은 97년 대선 때 '이회창이 되면 어쩌지?' 두려울 때였고, 한 번은 현 정권의 100일을 보면서였다. 이명막의 밀어붙이기에는 이회창을 능가하는 포스와 공포가 느껴진다. 노무현에게 바통을 이어받아 현 정권이 신명나게 주창하는 FTA, 그리고 의료보험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하려는 움직임이 현실화되는 날에는 이민을 좀더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것 같다. 이명박은 미국 같은 선진국의 개방논리가 그렇게 공약했던 우리나라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거라고 정말 믿는 걸까? 이 책은 읽어보기나 했을까?
장하준 교수의 책은 처음 읽는다. 왠지 어려울 거란 선입견이 있었는데, 막상 읽어보니 학자의 허영을 버리고 강경하고도 독자에게 친절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다. 신자유주의자들 및 선진국들을 '나쁜' 존재로 규정하고 들어가는 대목에서부터 이미 통쾌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신자유주의란 게 이 나라에 들어온 지 10년이 훌쩍 넘도록 이 체제가 힘들긴 하지만 거부하기도 어렵다는 최면에 걸려 있던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각성제가 되지 않을까. 점점 힘들어지면서도 거부할 논리와 용기를 갖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짱돌을 들라'던 <88만원 세대> 이상의 현실적이고 단순한 대안을 제시한다(물론 시대를 규정하고 선동하는 성격이 강한 <88만원 세대>와 큰 틀에서 비판하고 대안을 찾는 이 책은 각각 다른 면에서 가치가 있으므로 우위를 가르는 건 무의미하겠다).
다만 박통 시대를 '개발' 부분에서만 조명하느라 '독재'의 폐해에 대해서는 거의 지적하지 않은 점은 균형이 맞지 않은 것 같은데, 우리나라에서야 박통의 공과에 대해 비교적 잘 알려져 있으니 독자들에 새겨 읽으면 되는데, 애초에 영어로 씌어진 이 책을 다른 나라 독자들이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60-70년대를 매우 모범적이고 근면했던 시기로(그런 지도자가 이끌었던 시기로) 오해하면 어쩌나 하는 일말의 걱정은 들었다. 뭐, 박통의 문제점까지 다룬다면 이 책의 오지랖이 너무 넓어지는 것이겠지만.
여튼 신자유주의가 여전히 최고의 대안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다면 꼭 한 번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자동차 살리려면 농민을 희생해야 한다는 정권의 말이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말이다(이건 <경제학 콘서트>의 논리이기도 하다). 이명박이 안 읽었다면 내 돈 털어서 한 권 보내주고 싶다. 개도국으로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힌트가 이 책에 있다고. (읽었는데도 저 난리인 거면 어쩌지 ㅡㅡ:) 정권에서 친히 볼온서적으로 지정해주셔서 이 책의 가치를 드높인 바 있으니 좀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