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먼 자들의 도시>를 하도 쇼킹하게 읽어서, 그리고 <눈 뜬 자들의 도시>를 마음 아프게 읽어서, 이 책도 제목과 작가만 보고 기대에 충만해 읽기 시작했다. 처음 든 생각은... <눈 먼>이 진짜 눈 먼 사람들의 도시 이야기를 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제목을 좀 끼워맞췄다는 느낌을 받았고, 전작들에 비해 읽기가 좀 편해졌다는 게 눈에 띄었다(행갈이 때문에, 대신 쉼표와 마침표의 구분은 당최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 전작들은 쉼표와 마침표를 꽤 열심히 구분해가며 읽었는데, 이 책은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해서). 내심 소장이 보다 대단한 역할을 해주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끝난 것도 그랬고, 결말이 약간 허전하달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익명성에 대해 파고든 깊이는 대단하다고 본다. 아주 예전에 읽은 이문열의 <익명의 섬>이란 단편이 있는데, 그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큰 작품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전작들에 비해 단단한 짜임새의 글이란 느낌은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대가의 작품임엔 틀림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