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인데 어두운 방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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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쿠니 가오리 소설은 정말 오랜만에 읽어본다. 그간 읽다만 책들로부터 제목조차도 생소해져 가는 가운데, 신작이 나왔다.

흑백 사진에 분홍색 글씨라.. 표지만 보면 내 스타일은 아니다싶은데 들고다니면서 정들었는지 보면볼수록 괜찮은것 같기도 하다.

 

  일본의 차분하고 단정한 느낌을 온몸으로 표현해주는 미야코는 담장 높은 집에서 살고있다.

집밖의 풍경에도 생소해할만큼 가정일에 충실하며 남편 히로시에겐 현명한 아내로 남부럽지 않는 예쁜 모습으로 살아간다.

미야코가 사는 동네에는 고양이와 외국인이 많이 산다. 그래서 어렵지 않게 외국인과 어울릴 수 있고, 그렇게 존스를 만났다.

존스의 취미인 필드워크를 통해서 둘은 더 가까워지고 친함이상의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남편 히로시는 듣고 싶은말만 듣고 의도치않게 미야코의 말을 끊어버리는데, 존스는 아주 다정다감하며 대화를 이끄는 재주가 있다.

 

  먼저 다가온건 존스였다. 매번 집에 찾아가는것도 존스였고(물론 미야코도 반갑게 맞이해줬으며), 필드워크를 제안한것도 존스였다.

존스는 미야코가 마음에 쓰였다. 그리고 존스 역시 결혼해서 아이까지 있는 몸이다. 일본은 혼자 와있고.

 

  아닌 게 아니라 존스 씨는 이전부터 미야코 씨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여하튼 작은 새 같은 사람입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만 해도 반가운 마음이 앞서고, 처음 말을 나누더 날에는 이 사람하곤 잘 통하겠다는 확신과 함께 묘한 그리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존스 씨의 경험으로 미루어볼 때 그것은 멋진 관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p58)

 

  사랑이란 감정은 차근차근 오다가 갑작스런 폭포를 만나 떨어지듯 그렇게 마음에 쿵 하고 자리잡는 것이다.

미야코의 심경변화를 아주 섬세하게 표현한 부분이 상당히 많은걸 보면 이여자 그동안 재미없이 산 모양이다.

 

  아, 두근거려서 혼났네.

아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미야코 씨는 생각했습니다. 존스 씨의 얼굴을 봤을 때에는 예기치 않은 선물이 도착한 것 같아서 무척 기뻤고,

현관 앞에서 말을 나누었을 때에는 그 기쁨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집 안에 그를 맞이하는 순간, 심장박동이 빨리지면서 제대로 호흡하기가 힘들어지고,

이 이상 존스 씨에게 다가갔다간 숨이 멎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비슷한 감정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p88)

 

  그런데 문을 연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런 준비는 아무 쓸모도 없는-혹은 준비 따위 처음부터 되어 있지 않았던-것이었음을.

계단 아래, 큰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의, 생생히 살아 숨쉬는 존스 씨가 서 있습니다.

미야코 씨 자신이 나중에 생각한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기대 이상'의 기쁨이었습니다.

너무 기뻐서 눈앞에 있는 존재가 바로 믿어지지 않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p132) 

 

  보이지 않는 감정을 상세히 표현하고 이해시키는데 이만한 내용은 없을거란 생각은 든다.

단지 책을 읽는 동안 불편한 구석이 있다면, 3인칭 시점이라 주인공들에게 한발자국 떨어져 지켜보는 듯한 느낌에 겉돌았고,

불필요한 구문 해설로 상상의 나래의 한계를 던져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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