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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배수아 글.사진, 베르너 프리치 사진 / 가쎄(GASSE) / 2014년 11월
평점 :
비염 약은 너무 독했다. 2주가 넘도록 병원엘 다녔고 독한 약을 계속해서 먹었다. 나중에는 내성이 생겼는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처음 며칠은 약만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잠이 쏟아졌다. 서서 설거지를 하거나 거리를 걸으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앉아서 책을 펼치면 한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 졸음이 쏟아졌다. 글자들은 해독되지 않는 암호들로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를 그런 상태에서 2주에 걸쳐 겨우 읽었다.
가끔 소식이 궁금한 작가들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신간 소식에 느리기에 혹시나 그 사이 신간이 나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는 것이다. 배수아를 검색하자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이란 책이 검색되었다. 주저하지 않고 바로 구매하였다. 대충의 내용을 훑어보아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배수아의 문장을 읽을 생각에 책을 펼치기도 전에 두근거렸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책을 몇 장 읽었을 때 나는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를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것을 아껴서 나중에 먹듯이 그녀의 책을 살짝 덮어놓고 『잠자는 남자』를 펼쳤다. 그리고는 약에 취해 잠자는 여자가 되어 책을 읽었다.
시간의, 하루하루의, 주의, 계절의 저 흐름에 맞추어, 너는 모든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분리시킨다. 너는 모든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떼어낸다. 너는, 네가 자유롭다는, 그 무엇도 너를 짓누르지 않는다는, 네 마음에 들지도 않고 들지 않는 것도 아닌, 일종의 취기를, 가끔이다시피 할 정도로 발견하곤 한다. 너는, 마모되지도 않고 가벼운 흔들림도 없는 이와 같은 삶 속에서, 트럼프나 다소간의 소음이, 네가 너 자신에게 제공하는 다소간의 스펙터클이 네게 마련해주는 이 유보된 순간들을, 매력적이고, 이따금 새로운 감동으로 부풀어 오르기도 하는, 완벽한 것이나 거의 다름없다시피 한 행복 하나를 찾아낸다. 너는 완전한 휴식이 무엇인지 안다, 너는, 매 순간, 절약되고, 보호된다. 너는, 그 무엇도 네가 기대하지 않는, 저 축복받은 괄호 속에서, 약속으로 충만한 저 공백 안에서, 살아간다. 너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맑고, 투명하다. 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의 연속과 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너는, 즐거움도 슬픔도 없이, 미래도 과거도 없이, 바로 그렇게, 단순하게, 확실하게, 층계참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분홍색 플라스틱 대야에 담긴 여섯 개의 양말처럼, 한 마리 파리나 혹은 바보 멍텅구리처럼, 게으름뱅이처럼, 달팽이처럼, 어린아이나 늙은 노인처럼, 한 마리 쥐처럼, 살아간다. -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중
이 소설은 ‘너’의 고독을, 고립을, 침묵을 거듭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한 소설은 배수아의 에세이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과 너무 잘 맞는다. 그래서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었지만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듯한 기분이다. 『잠자는 남자』를 다 읽자마자 비염은 나았고 덕분에 배수아의 책은 몇 시간 만에, 마치 며칠 굶은 사람마냥 허겁지겁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책 속의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안개, 침묵, 낯섦, 경계, 매혹적인, 중독적인, 비밀스런, 배수아의 책들을 읽으면 이러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 앞의 단어에 사막, 모래, 가루가 느껴지는 진한 커피, 완전한 어둠, 긴 드레스, 호수 들이 추가된다.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사생활을 엿본다. 그동안은 그녀의 소설로만 그녀를 만나왔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는 그녀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약간의 취향을 엿본다. 그녀의 소설들이 항상 작가 자신의 경계에 있었기에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라 흥미롭다.
나는 마치 그녀의 잠자는 남자가 호텔에 설치해 놓은 카메라의 시선이 된다. 침묵 속에서 각자의 글을 쓰는 두 사람, 백 년도 더 된 것 같은 프라이팬에 야채를 볶아 그것을 커다란 빵 위에 얹어 먹는 두 사람, 지독한 가스 냄새, 흐린 조명, 잠자는 남자의 가위질 소리,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는 그녀, 카메라 앞에서 한국말로 낭독을 하고 있는 그녀. (언젠가 팟케스트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상상과는 전혀 다른 아주 소녀같은 목소리라 좀 충격이었다) 그들의 소박하지만 운치 있는 별장의 생활.
나는 살짝 질투를 해본다. 자신들에게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그들에게, 아날로그적인 그들의 낭만에, 자신들의 작업에 가지고 있는 확고한 신념에,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던 '너' 는 내가 되었다가 그녀가 되었다가 잠자는 남자가 되었다가 결국 아무도 아니었다가 그냥 '너'가 되어 방 안에 남았다. 계속되는 ‘너’라는 호칭에 자꾸만 누군가 나를 카메라로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꿈꾼 것은, 그러므로 잠자는 남자가 필름에 담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순간 내 꿈이 곧 잠자는 남자의 영화가 되었다. 꿈과 필름,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잠자는 남자의 카메라를 향해서 꿈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함께 꾸었던 지난밤의 꿈이 되었다. - 배수아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중
늦은 저녁 아이를 재우고 후다닥 읽은 책이라 다 읽었을 때는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했을 때 그녀와 같이 사막을 걸은 것 같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끝없는 도로나 사막, 그리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는 오래된 호텔들, 무슨 맛인지 모를 끔찍한 음식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영원히 실종이 되어버릴 것 같은 공간. 그래서 설레는 공간.
책을 읽는 동안부터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하루 종일, 머릿속에는 사막과 그곳을 걷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문장들만 가득하다. 이 환각같은 여행에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덧붙여 그녀가 쓰고 있던, 잠자는 남자가 해석했던 섬뜩한 로맨스 소설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