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 정신과 의사가 권하는 인생이 편해지는 유연함의 기술
정두영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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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세워놓은 인생의 우선순위에는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에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돈과 관련된 목표를 우선으로 할 것입니다. 돈이 충분해야 가족이 아파도 마음이 든든하다며 삶의 가치 중에 우선순위를 높여두는 것이죠. 그리고 누군가 대신해서 세워준 목표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내가 세우지 않았다고 해서, 부정적인 경험에 의해 세웠다고 해서 무조건 좋지 않은 목표는 아닙니다. 내가 세운 목표들을 하나하나 실행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이 선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바람직하게 세워진 우선순위입니다.
그러니 일상생활에서 특정 순간마다 집중력이 떨어지고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 인생의 우선순위를 돌아보길 바랍니다.
나는 인생의 크고 작은 목표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있나요?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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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 - 알타이 걸어본다 6
배수아 지음 / 난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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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 앞으로 반복해서 등장하게 될 여행이란 단어는 길이나 지도, 낯선 나라, 인상 깊고 아름다운 풍광, 새로운 문물, 혹은 새로운 자신, 두근거림이나 자유, 혹은 모험이나 떠남, 대개는 돈을 지불함으로써 현대인이 얻게 되는 어떤 종류의 비일상적 체험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아마도 단지 지극히 개인적이고 정적인 꿈, 고통의 또다른 이름으로서의 꿈, 혹은 정체불명의 그리움, 슬픔과 체념으로 가득찬 발자국, 혹은 그러한 감정의 순간에 우리를 사로잡는 은밀하고도 슬픈 몽환과 동의어에 불과할 것이다. (p.12)

 

 

십년도 더 전에 몽골에 간 적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국에 속해있는 내몽골이었다. 우연히 가게 되었으며 중국 여행 중이었으므로 저녁에 출발한 여행은 침대기차에서 하룻밤과 초원에 있는 게르에서의 하룻밤만을 보내고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기차에서 눈을 떴을 때 눈앞에 보이던 초원과 지평선 그리고 기차에서 내렸을 때 몸에 딱 맞는 것 같은 기온이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공기가 너무 신선해 내 몸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고 날아갈 듯 가벼워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먹었던 양고기와 전통 씨름 대회들 커다란 새장에 갇혀 있던 커다란 솔개, 그리고 새벽 3시의 밤하늘, 너무 많은 별들이 머리 위에 쏟아질 것 같이 무서워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던 초원의 밤하늘.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가고 싶다고 느꼈지만 그런 기회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평소 여행기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당연히 배수아라는 작가의 책이기에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배수아가 몽골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그녀가 그 험난한, 더구나 잘 알려지지도 않은 몽골의 깊숙한 알타이라는 곳에 다녀왔다니, 그러나 예상했듯이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알타이에 다녀온 일들을 서술한다.

 

그녀는 독일어로 글을 쓰는 몽골인 갈잔 치낙귀향이라는 책을 읽고 그를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먼 길을 떠났다. 그에 대해 찾아보다가 일 년에 한 번 그가 있는 알타이로 가는 여행 코스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른 유럽인들과 함께 그곳에 가게 된다. 3주 동안 그들은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전기도 없고 신선한 과일과 커피도 없는 초원에서 보내게 된다. 어쩌면 낭만적으로 보일지 모르는 것들이, 알겠지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아마 그녀의 글을 읽다보면 나도 그렇지만 대부분이 그곳에 가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그녀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러한 삶을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만족스럽다.

 

그녀의 문장은 내 입맛에 맞아서 단숨에 읽히는데 가끔은 무척이나 길다. 그래서 한 문장을 읽다가 끊기지 않아서 잠시 쉬어가야 할 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호흡에 익숙해져서 그 긴 문장을 천천히 곱씹으며 여러 번 읽을 때도 있다. 맛난 음식을 천천히 즐기는 기분이다. 그녀가 표현하는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익숙해져서 마치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소설가들의 에세이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녀의 에세이는 소설만큼이나 좋으며 그 경계도 없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그녀의 문장을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매우 주관적으로 그녀의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대부분 책을 어둠 속에서 스텐드만 켜놓고 읽었는데 그래서인지 그녀가 그리고 있는 그 여행은 더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내가 갔던 내몽골이 떠올라 완전 낯설지만은 않았다. 좋은 책은 천천히 오래도록 보고 싶다. 그녀의 책을 읽는 며칠 동안 그녀가 말하는 그 끝없는 언덕으로 이루어진 초원과 얼음같이 차가운 물과 느리게 걷는 말, 유목민들의 순박한 미소들이 바로 곁에서 느껴지는 것 같아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기분을 느꼈다. 아쉬우면서 홀가분하면서 아직은 여행지의 공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는 기분이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그 여운은 더욱 짙고 길게 남았는데 책 제목이 왜 처음 보는 유목민 여인일까. 라는 의문이 풀리는 마지막 문단 때문이었다. 그 문장을 읽으며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전혀 슬픈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담담한 몇 문장이었지만 그 문장이 묘사하고 있는 그 풍경과 그들의 감정들에 깊이 동요되면서 알 수 없는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덕분에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확실한 이미지가 남게 되었다. 멀리서 보이는 낯선 유목민 여인, 델을 입은 그녀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었다.

 

덧붙여 이 책은 난다의 걸어본다시리즈 중의 하나인데 시리즈 목록을 보니 꽤나 흥미로워보였다. 단순한 여행기들이 아닌 작가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특정한 곳을 에세이로 풀어낸 글들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보이니 그들의 책들을 하나씩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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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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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정적인 꿈을 꾸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 꿈은 우리가 매일 생각하는 것들을 반영해서 만든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이 사소한 것들을 모두 모아 크게 부풀리지요.

 

 

 

오래 전부터 ‘잠’과 ‘꿈’은 나의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지금이야 아이를 키운다고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잠을 잘 못자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도 누워서 최소 30분 이상은 뒤척여야 잠을 잤고 잠이 들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릴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누워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내가 꿈으로 꾸었으면 하는 것들을 매일 밤 릴레이 소설 쓰듯이 상상하다 잠이 들었다. 그 중에는 정말 꿈에 나온 것들도 있었는데 간혹 좋은 꿈을 꾸다가 깨면 그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그 뒤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했다.

 

 

불면증까지는 아니지만 잠에 쉽게 들지 않고 얕은 잠을 자고 그래서 잠에서 자주 깨는 것이 문제였다. 올해 초에는 시작부터 잠을 못 잤더니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 병원을 참 자주 다녔다. 최근에도 잠을 못자는 날이 계속되었는데 기분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일에 짜증이 났고 소화 기능까지 떨어졌다. 엄마 아빠 얼굴을 발로 걷어차고 온 방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옆에 있으니 숙면을 취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런 밤이 길게 이어질 때면 심신이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나는 당장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수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상대가 생긴 듯 기뻤다. 물론 책을 사놓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읽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그래 내가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거야.’ 라는 안도감이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은 잘 자는 사람보다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년 전 한여름에는 만삭이었는데 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불편한 몸에 더위도 무척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난 그냥 잠을 포기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동안 책을 읽었고 잠이 오면 그제야 잠을 잤다. 그렇게 잠에 대한 집착을 좀 벗어났더니 오히려 나중에는 잘 자게 되었던 것 같다. 출산 후에는 밤에 잠이 올 때는 잘 수가 없고 자도 될 때는 잠이 안 올 때가 많아 힘들었다.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끝을 알 수 없이 계속 이어질 때는 정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어 폭발할 것 같다.(실제로 몇 번 폭발해버리기도 했다) 정말 약이라도 먹어야 할까 싶을 순간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저자가 말하는 이완 요법대로 문제를 해결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배운 가장 귀한 교훈은 잠을 잘 자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기울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건강, 섹스, 대인 관계, 창조성, 기억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이 모든 것은 매일 밤 우리가 잠자는 시간에 달려 있다. 모든 동물에게 필요한 것을 무시한다면,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약에 의존하고,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건강 문제로 고생하고, 자녀를 수면 부족 상태의 삶으로 몰아넣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청소년기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잠을 망각하고, 간과하고, 뒤로 미룬다. 잠의 중요성을 깨닫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운동이나 요법, 혹은 단순히 이것과 같은 책을 읽는 것 등 어떤 것이건), 필연적으로 우리를 더 개선되고 건강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요컨대 잠은 여러분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자신의 수면 문제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는데 작가처럼 누구든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해결하려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나도 스스로의 수면문제를 인식하고 이 책을 들고 읽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처음에는 잠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과 흥미로운 에피소드, 실험들이 이 책 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주 놀라운 실험도 사실도 없었다. 결론은 앞에서도 말하고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개선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초반에서는 예전에 전기가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첫 번째 잠과 두 번째 잠을 잤다는 사실이나 수면박탈 실험에 관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실험 내용이나 결과가 조금은 뻔해서 지루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당연한 결론을 얻기까지 저자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나의 시간은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을 실험과 사실들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우리의 잠은 아직도 우리 조상들이 살던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이가 들수록 얕은 잠을 자고 새벽에 일찍 깨게 되는데 그것을 생존 매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십대와 중년과 노년의 수면패턴이 다른 이유는 집단생활을 할 때 누군가는 항상 깨어 있어 보초를 서야하기 때문이며 행동이 느린 노인은 초조해서 깊은 잠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대상인 노인들은 깨어 있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꿈을 꾸는 수면이 렘수면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인데 오늘 렘수면을 적게 잤다면 내일 그것을 보충하려고 렘수면을 늘린다는 사실은 꿈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시사해준다.

 

 

잠을 자지 못했을 때 그것을 회복시킬 수 있는 건 오직 잠 밖에 없다. 어떤 약물로도 기기로도 그 수면부족의 상태를 회복시킬 순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행복한 상호 작용을 예측하는 데에는 직장에서 보낸 힘든 하루나 그 밖의 어떤 스트레스보다도 아내가 느끼는 수면의 질이 훨씬 중요한 요소였다. 트록셀은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이유는, 일반적으로 여성은 관계의 감정적 분위기를 남성보다 훨씬 강하게 표출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여성은 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드러내고, 대화를 더 많이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남편은 아내가 자신보다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신호를 포착하기가 훨씬 쉬웠죠.”

남성은 혼자 잘 때보다 배우자와 함께 잘 때 잠을 훨씬 잘 자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배우자의 코 고는 소리를 듣는 불편이 없이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잔다는 사실이 주는 정서적 이득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여성은 코를 골 확률이 남성보다 훨씬 낮을 뿐만 아니라, 잠도 훨씬 곱게 잔다. 그 결과는 밤의 소극으로 나타나는데, 남편보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통 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비밀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와 수다를 떨고 난 후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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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퇴장 주커먼 시리즈
필립 로스 지음, 박범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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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작품을 쓰면서 그가 왜 그렇게 파멸한 거죠”

 

 

“작가는 글을 쓰는 것만으로 파괴될 수 있거든. 상상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인생에선 그럴 수 있어. 그 이상도 가능하고.”

 

 

 

 

도서관에 가기 전에 들춰 본 다이어리에서 오래 전에 메모 해 놓은 읽을 책 목록을 발견했다. 신간 소개를 보면서 읽어볼만한 책들을 가끔 적어 두었는데 일 년 전쯤의 메모가 이제야 눈에 띄었다. 몇 개 적힌 리스트 중에 읽은 책은 거의 없었고 어떤 내용의 책이어서 흥미를 보였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들도 많았다. 『유령 퇴장』이 책 또한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필립 로스라는 이름이 너무 익숙해서 책 한 권 쯤은 읽었을 것 같았지만 그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처음 책을 몇 장 읽어갈 때 느꼈던 것 역시 노련한 작가다. 라는 것이었다. 나는 소설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망설이거나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 성큼 성큼 그의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나중에 책의 뒷면에 ‘주커먼 시리즈의 완결판’ 이라고 적힌 글을 보고 나서야 주인공 네이선 주커먼이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미국의 목가』『휴먼 스테인』『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의 책들에서도 은둔하는 늙은 작가로 네이선 주커먼이 등장한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제목과 같이 주커먼의 마지막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책을 어느 정도 읽어갈 쯤에 드는 생각은 이것은 굉장히 미국적인 소설이라는 것이다.(미국 소설이 대부분 그렇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사는 유대인의 삶 그리고 상류층의 사람들, 대통령 선거를 비롯한 그들의 정치와 문학의 역사까지 속속들이 언급하는 이 작가는 미국이 사랑할만한 작가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당연하지만, 소설은 낯선 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보편적으로 공감되는 캐릭터들이 있기에 낯설지 않다. 전립선 암에 걸린 후 요실금에 시달리고 이제 점점 기억력까지 쇠퇴해져가는 늙은 유대인 작가 네이선 주커먼과 젊은 작가지망생 부부의 이야기 그리고 주커먼이 숭배했던 이제는 망자인 로노프라는 작가와 그의 애인 에이미, 로노프의 비밀을 폭로하려는 혈기넘치는 전기작가.

 

 

 

“괜찮았었죠. 지난 몇 달은 괜찮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그 망할 게 재발했다는 말을 들었어요. 늘 그런 식이죠. 운명이 등 뒤에 숨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와 ‘왁!’ 하고 소릴 지르죠. 처음 종양이 생겼을 땐, 그런 게 생긴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나는 다시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짓들을 했어요.……”

 

 

 

 

이 모든 인물들은 주커먼이 요실금을 치료하기 위해 오랜만에 뉴욕에 오게 되면서 등장한다. 뉴욕에 머물던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가 과거의 인물들과 우연히 얽히고설키면서, 잊고 있었던 성적 욕망까지 그의 머릿속을 헤집게 되면서, 마치 늙은 작가가 퇴장하기 전 마지막 축제를 하듯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소설 속의 소설처럼 주커먼이 제이미와의 일을 상상하며 써내려간 글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현실을 딛고 있는 작가가 머릿속에서 어떤 상상을 하며 글을 쓰는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소설과 소설가에 대해서 늙어가는 육체를 가진 인간과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것 같은 젊은 사람들이 토론하고 싸움하는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그러나 흥미롭고 멋진 작품일 뿐 나에게 크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필립 로스는 이미 2012년 절필을 선언했다고 하니 그의 마지막 책부터 조금은 궁금해서 읽어볼 것 같다.

 

 

 

 

 

그녀   고통에서 도망치기요.

 

그     무슨 고통에서?

 

그녀   존재하는 것의 고통요.

 

그     그건 자네 이야기 아닌가?

 

그녀     어쩌면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함으로써 생겨나는 고통이죠. 맞아요, 그게 제가 실행하려는 극단적인 조치를 아주 깔끔하게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선생님의 경우엔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이 문제가 아니에요.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죠. 무언가의 존재 속에 존재하는 게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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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배수아 글.사진, 베르너 프리치 사진 / 가쎄(GASSE)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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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염 약은 너무 독했다. 2주가 넘도록 병원엘 다녔고 독한 약을 계속해서 먹었다. 나중에는 내성이 생겼는지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처음 며칠은 약만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잠이 쏟아졌다. 서서 설거지를 하거나 거리를 걸으면 그나마 괜찮았지만 앉아서 책을 펼치면 한 페이지가 넘어가기 전에 졸음이 쏟아졌다. 글자들은 해독되지 않는 암호들로 눈앞에서 춤을 추었다.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를 그런 상태에서 2주에 걸쳐 겨우 읽었다.

 

 

가끔 소식이 궁금한 작가들의 이름을 검색해본다. 신간 소식에 느리기에 혹시나 그 사이 신간이 나오지 않았나 궁금해서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해보는 것이다. 배수아를 검색하자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이란 책이 검색되었다. 주저하지 않고 바로 구매하였다. 대충의 내용을 훑어보아도 충분히 흥미로웠다. 배수아의 문장을 읽을 생각에 책을 펼치기도 전에 두근거렸다.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언제부턴가 나는 그녀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렸다. 책을 몇 장 읽었을 때 나는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를 먼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콤한 것을 아껴서 나중에 먹듯이 그녀의 책을 살짝 덮어놓고 『잠자는 남자』를 펼쳤다. 그리고는 약에 취해 잠자는 여자가 되어 책을 읽었다.

 

시간의, 하루하루의, 주의, 계절의 저 흐름에 맞추어, 너는 모든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분리시킨다. 너는 모든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떼어낸다. 너는, 네가 자유롭다는, 그 무엇도 너를 짓누르지 않는다는, 네 마음에 들지도 않고 들지 않는 것도 아닌, 일종의 취기를, 가끔이다시피 할 정도로 발견하곤 한다. 너는, 마모되지도 않고 가벼운 흔들림도 없는 이와 같은 삶 속에서, 트럼프나 다소간의 소음이, 네가 너 자신에게 제공하는 다소간의 스펙터클이 네게 마련해주는 이 유보된 순간들을, 매력적이고, 이따금 새로운 감동으로 부풀어 오르기도 하는, 완벽한 것이나 거의 다름없다시피 한 행복 하나를 찾아낸다. 너는 완전한 휴식이 무엇인지 안다, 너는, 매 순간, 절약되고, 보호된다. 너는, 그 무엇도 네가 기대하지 않는, 저 축복받은 괄호 속에서, 약속으로 충만한 저 공백 안에서, 살아간다. 너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맑고, 투명하다. 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의 연속과 계절의 변화와, 세월의 흐름 속에서, 너는, 즐거움도 슬픔도 없이, 미래도 과거도 없이, 바로 그렇게, 단순하게, 확실하게, 층계참의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분홍색 플라스틱 대야에 담긴 여섯 개의 양말처럼, 한 마리 파리나 혹은 바보 멍텅구리처럼, 게으름뱅이처럼, 달팽이처럼, 어린아이나 늙은 노인처럼, 한 마리 쥐처럼, 살아간다. - 조르주 페렉 <잠자는 남자> 중

 

 

이 소설은 ‘너’의 고독을, 고립을, 침묵을 거듭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한다. 그러한 소설은 배수아의 에세이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과 너무 잘 맞는다. 그래서 나는 두 권의 책을 읽었지만 마치 한 권의 책을 읽은 듯한 기분이다. 『잠자는 남자』를 다 읽자마자 비염은 나았고 덕분에 배수아의 책은 몇 시간 만에, 마치 며칠 굶은 사람마냥 허겁지겁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나는 더욱 책 속의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안개, 침묵, 낯섦, 경계, 매혹적인, 중독적인, 비밀스런, 배수아의 책들을 읽으면 이러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이 에세이를 읽으면 앞의 단어에 사막, 모래, 가루가 느껴지는 진한 커피, 완전한 어둠, 긴 드레스, 호수 들이 추가된다. 어쩌면 나는 처음으로 그녀의 사생활을 엿본다. 그동안은 그녀의 소설로만 그녀를 만나왔다. 그러나 이번 책에서는 그녀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와 사랑에 관한 이야기, 약간의 취향을 엿본다. 그녀의 소설들이 항상 작가 자신의 경계에 있었기에 크게 다르지 않지만 작가 자신의 입으로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라 흥미롭다.

 

나는 마치 그녀의 잠자는 남자가 호텔에 설치해 놓은 카메라의 시선이 된다. 침묵 속에서 각자의 글을 쓰는 두 사람, 백 년도 더 된 것 같은 프라이팬에 야채를 볶아 그것을 커다란 빵 위에 얹어 먹는 두 사람, 지독한 가스 냄새, 흐린 조명, 잠자는 남자의 가위질 소리, 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는 그녀, 카메라 앞에서 한국말로 낭독을 하고 있는 그녀. (언젠가 팟케스트에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상상과는 전혀 다른 아주 소녀같은 목소리라 좀 충격이었다) 그들의 소박하지만 운치 있는 별장의 생활.

 

나는 살짝 질투를 해본다. 자신들에게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그들에게, 아날로그적인 그들의 낭만에, 자신들의 작업에 가지고 있는 확고한 신념에,

 

 

파리의 밤거리를 헤매던 '너' 는 내가 되었다가 그녀가 되었다가 잠자는 남자가 되었다가 결국 아무도 아니었다가 그냥 '너'가 되어 방 안에 남았다. 계속되는 ‘너’라는 호칭에 자꾸만 누군가 나를 카메라로 찍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꿈꾼 것은, 그러므로 잠자는 남자가 필름에 담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순간 내 꿈이 곧 잠자는 남자의 영화가 되었다. 꿈과 필름,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알 수 없다. 내가 잠자는 남자의 카메라를 향해서 꿈을 이야기하면, 그것은 이미 우리가 함께 꾸었던 지난밤의 꿈이 되었다. - 배수아 <잠자는 남자와 일주일을> 중

 

 

늦은 저녁 아이를 재우고 후다닥 읽은 책이라 다 읽었을 때는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시간을 확인했을 때 그녀와 같이 사막을 걸은 것 같은 피곤함이 밀려왔다.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끝없는 도로나 사막, 그리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는 오래된 호텔들, 무슨 맛인지 모를 끔찍한 음식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영원히 실종이 되어버릴 것 같은 공간. 그래서 설레는 공간.

 

책을 읽는 동안부터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까지 하루 종일, 머릿속에는 사막과 그곳을 걷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문장들만 가득하다. 이 환각같은 여행에서 빠져나오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덧붙여 그녀가 쓰고 있던, 잠자는 남자가 해석했던 섬뜩한 로맨스 소설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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