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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사생활 - 관계, 기억, 그리고 나를 만드는 시간
데이비드 랜들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14년 11월
평점 :
우리가 부정적인 꿈을 꾸는 이유는 단순히 우리가 걱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쓰기 때문이다. …… 꿈은 우리가 매일 생각하는 것들을 반영해서 만든 최악의 시나리오입니다. 일어날 수도 있는 이 사소한 것들을 모두 모아 크게 부풀리지요.
오래 전부터 ‘잠’과 ‘꿈’은 나의 관심사 중의 하나였다. 지금이야 아이를 키운다고 잠을 잘 자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지만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잠을 잘 못자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때도 누워서 최소 30분 이상은 뒤척여야 잠을 잤고 잠이 들 때까지 한 시간 이상 걸릴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나는 누워서 이야기를 만들었다. 내가 꿈으로 꾸었으면 하는 것들을 매일 밤 릴레이 소설 쓰듯이 상상하다 잠이 들었다. 그 중에는 정말 꿈에 나온 것들도 있었는데 간혹 좋은 꿈을 꾸다가 깨면 그 꿈을 계속 꾸고 싶어서 그 뒤의 이야기를 상상하기도 했다.
불면증까지는 아니지만 잠에 쉽게 들지 않고 얕은 잠을 자고 그래서 잠에서 자주 깨는 것이 문제였다. 올해 초에는 시작부터 잠을 못 잤더니 몸은 엉망진창이 되어 병원을 참 자주 다녔다. 최근에도 잠을 못자는 날이 계속되었는데 기분은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일에 짜증이 났고 소화 기능까지 떨어졌다. 엄마 아빠 얼굴을 발로 걷어차고 온 방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는 아이가 옆에 있으니 숙면을 취할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그런 밤이 길게 이어질 때면 심신이 지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점에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나는 당장 사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수면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상대가 생긴 듯 기뻤다. 물론 책을 사놓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읽었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그래 내가 너무 집착하고 있었던 거야.’ 라는 안도감이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사람은 잘 자는 사람보다 잠을 자지 못했다는 사실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2년 전 한여름에는 만삭이었는데 밤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불편한 몸에 더위도 무척 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난 그냥 잠을 포기했었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동안 책을 읽었고 잠이 오면 그제야 잠을 잤다. 그렇게 잠에 대한 집착을 좀 벗어났더니 오히려 나중에는 잘 자게 되었던 것 같다. 출산 후에는 밤에 잠이 올 때는 잘 수가 없고 자도 될 때는 잠이 안 올 때가 많아 힘들었다. 그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 끝을 알 수 없이 계속 이어질 때는 정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스트레스 덩어리가 되어 폭발할 것 같다.(실제로 몇 번 폭발해버리기도 했다) 정말 약이라도 먹어야 할까 싶을 순간도 있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니 저자가 말하는 이완 요법대로 문제를 해결해 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배운 가장 귀한 교훈은 잠을 잘 자려면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기울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 건강, 섹스, 대인 관계, 창조성, 기억 우리를 우리답게 만드는 이 모든 것은 매일 밤 우리가 잠자는 시간에 달려 있다. 모든 동물에게 필요한 것을 무시한다면, 필요 없을지도 모르는 약에 의존하고, 충분히 다스릴 수 있는 건강 문제로 고생하고, 자녀를 수면 부족 상태의 삶으로 몰아넣어 그렇지 않아도 힘든 청소년기를 더욱 힘들게 만드는 상황에 빠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 잠을 망각하고, 간과하고, 뒤로 미룬다. 잠의 중요성을 깨닫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건(운동이나 요법, 혹은 단순히 이것과 같은 책을 읽는 것 등 어떤 것이건), 필연적으로 우리를 더 개선되고 건강하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요컨대 잠은 여러분이 되길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준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눈을 감기만 하면 된다.
저자는 자신의 수면 문제 때문에 이 책을 쓰게 되었는데 작가처럼 누구든 자신에게 발생한 문제가 있으면 그것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해결하려고 방법을 강구할 것이다. 나도 스스로의 수면문제를 인식하고 이 책을 들고 읽었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실 처음에는 잠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과 흥미로운 에피소드, 실험들이 이 책 속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아주 놀라운 실험도 사실도 없었다. 결론은 앞에서도 말하고 저자도 말하고 있듯이 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개선해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초반에서는 예전에 전기가 생기기 전에는 사람들이 첫 번째 잠과 두 번째 잠을 잤다는 사실이나 수면박탈 실험에 관한 이야기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실험 내용이나 결과가 조금은 뻔해서 지루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당연한 결론을 얻기까지 저자가 들인 시간과 노력은, 나의 시간은 조금도 아깝지가 않다.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사실을 실험과 사실들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덧붙여 우리의 잠은 아직도 우리 조상들이 살던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나이가 들수록 얕은 잠을 자고 새벽에 일찍 깨게 되는데 그것을 생존 매커니즘이라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십대와 중년과 노년의 수면패턴이 다른 이유는 집단생활을 할 때 누군가는 항상 깨어 있어 보초를 서야하기 때문이며 행동이 느린 노인은 초조해서 깊은 잠에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위험으로부터 가장 취약한 대상인 노인들은 깨어 있어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꿈을 꾸는 수면이 렘수면은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인데 오늘 렘수면을 적게 잤다면 내일 그것을 보충하려고 렘수면을 늘린다는 사실은 꿈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시사해준다.
잠을 자지 못했을 때 그것을 회복시킬 수 있는 건 오직 잠 밖에 없다. 어떤 약물로도 기기로도 그 수면부족의 상태를 회복시킬 순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잠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한다.
행복한 상호 작용을 예측하는 데에는 직장에서 보낸 힘든 하루나 그 밖의 어떤 스트레스보다도 아내가 느끼는 수면의 질이 훨씬 중요한 요소였다. 트록셀은 이렇게 말했다.
“한 가지 이유는, 일반적으로 여성은 관계의 감정적 분위기를 남성보다 훨씬 강하게 표출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면, 여성은 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드러내고, 대화를 더 많이 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남편은 아내가 자신보다 잠을 잘 자지 못했다는 신호를 포착하기가 훨씬 쉬웠죠.”
남성은 혼자 잘 때보다 배우자와 함께 잘 때 잠을 훨씬 잘 자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배우자의 코 고는 소리를 듣는 불편이 없이 사랑하는 사람 옆에서 잔다는 사실이 주는 정서적 이득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짓궂은 장난이라고 해야 할까, 여성은 코를 골 확률이 남성보다 훨씬 낮을 뿐만 아니라, 잠도 훨씬 곱게 잔다. 그 결과는 밤의 소극으로 나타나는데, 남편보다 아내가 불면증으로 고통 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비밀을 또 하나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비슷한 고민을 가진 친구와 수다를 떨고 난 후처럼 마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