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가 막혔다. 나는 길다란 바늘을 찾아와서 이내 세면대의 수챗구멍을 쑤셔댔다. 계속해서 말려 올라오는 뱀의 허물 같은 잘려진 도마뱀의 꼬리 같은 그 구부러진 체모들. 내가 그토록 잊어버리고 싶었던 과거들이 여기에 있다. 어느 집의 누군가의 수챗구멍도 언젠가는 막히기 마련이고 이제, 그 과거들은 이제 다시 돌아온다. 그럼에도 실로 이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의 나도 군대를 다녀오기 전의 나도 이 사실을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수체구멍은 막혀만 가고, 어쩐지 과거의 나보다 윗머리가 조금 비어보이는 나는 그 사실을 안다. 세면대 수체구멍의 그 심연을 들여다보지 않더라도 거기 내 과거가 흘러들어가 이제는 꽉 막혀져 더이상 어찌할 수도 없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내 안의 깊은 곳 내장 깊숙히의 어둠도 얼마나 놀랐을까 그렇게 날카로운 바늘이 갑자기 들어왔다면. 나는 몇 번이고 집요하게 들이대던 바늘을 내버려두고, 관리인에게 전화를 해서 그 막힌 곳을 뚫어달라 해야겠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는다. 하지만 꼭 그래야만 할까, 막힌 곳을 뻥 뚫어버리고 우리의 내장을 깨끗히 비워버리면 이 깊은 구멍의 어둠은 사라지는 것일까. 지난 밤의 꿈에 나는 벗겨진 뱀의 허물 도마뱀의 잘려진 꼬리 같은 것들이 저 혼자서도 날듯이 기듯이 그렇게 저 자유로이 나아가는 것을 보았다. 나의 정신도 그 꿈 속에 나온 하늘처럼 맑고 바늘처럼 날이 선채로 이제 저 깊은 구멍을 향해 전속력으로 내려갈 태세를 갖추었다.




파리와 나의 기묘한 공생은 벌써 3일째가 되어간다. 나는 몇 번이고 잡으려 했지만, 이제는 녀석이 내 눈앞을 알짱거리다가 문득 내 팔뚝 위에 앉아도 나는 그저 한 번 팔을 부웅 휘두를 뿐 녀석을 잡기 위해 괜한 힘을 쓰지 않는다. 보아라 놈의 손짓을, 보아라 놈의 발짓을. 치지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게 해줘. 입이 없어 열심히 날개짓으로만 전달하는 저 애처러운 소리를. 계절를 잊어버리고 추위를 맞이한 파리 한 마리가 따뜻함을 찾아 흘러 들어온 내 방. 이곳은 상호간의 협약도 강대국의 감시도 철조망과 무기도 필요없는 DMZ. 파리에게 있어서 나나, 나에게 있어서 파리나, 서로에게 가장 보통의 존재였다. 우리는 서로를 잘 모른다고 할 만큼 잘 알고, 서로를 잘 안다고 할만큼 서로를 모른다. 저나 나나 서로를 때리면 아픈 불쌍할 혈족일 따름이다.

나에게 넌 허무한 별빛
너에게 난 잊혀진 길
이곳에서 우린 변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었지.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겠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걱정이 된다. 내가 잠을 자다가 입을 벌렸을 때 녀석이 내 안의 어둠이 궁금해져서 그 안으로, 깊은 수채 구멍 속으로 들어가버리지는 않을지, 걱정이 된다. 부디 내 안의 어둠도, 파리도 너무 놀라지는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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