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聖史略 한국성사략>
천오백년 내지 일천년전에는
금강산에 오르는 젊은이들을 위하여
별은, 그 발밑에 내려와서 길을 쓸고 있었다.
그러나 宋學 이후, 그것은 다시 올라가서
추켜든 손보다 더 높은데 자리하더니
開化일본인들이 와서 이 손과 별 사이를 虛無로 도벽해 놓았다
그것을 나는 單身으로 側近하여
내 체내의 광맥을 통해, 십이지장까지 이끌어갔으나
거기 끊어진 곳이 있었던가
오늘 새벽에도 별은 거기서 일탈한다
일탈했다가는 또 내려와 관류하고
관류하다간 또 거기 가서 일탈한다
腸을 또 꿰메야겠다
대학교 1학년 때, 서정주 시인의 <화사집>를 읽던 중 '시를 읽다가 사람이 숨이 멎어서 죽으면 누굴 탓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이 시를 읽으니, 숨이 멎을 뻔 했던 건 아무래도 좋다라고 느꼈답니다. 천상과 지상, 별과 인간이 함께 하던 삶으로부터, 천오백년. 한국전쟁 이후로 1950년대의 모든 생명은 장이 끊어진 삶이 되었는데, 장이 끊어진 시대와 삶 속에서, 이렇게도 장은 자꾸만 끊어지고, 그 때마다 그걸 이내 꿰메어 이어야 겠다고 쓴 시도 있는데, 숨이야 잠깐 멎은들, 그게 뭐 어떻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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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누워서 공부하다 목을 삐긋해서, 며칠을 고생하고 있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해서 파스를 붙이고 찜질을 하며 시험공부도 쉬엄쉬엄 해가며, 집밖으로 한 발자국 안 움직이고 있네요. 그러다가 윤성희 님의 <그 남자의 책 198쪽>이 영화화 되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어요. 단지 예고 영상을 보았을 뿐인데, 그 전에 할말이 많았는데, 아주 할 말이 사라져 버렸답니다. 대신에 시험공부가 바쁜 이 와중에 윤성희 님 소설을 붙잡고 있어요. 그러니까, 푸코의 말대로 저자란 죽거나 사라져야 하는 존재인데, 우리가 끊임없이 그에게 회귀하고자 하는 마음이란 이런 것이로군요. 영화를 만드는 그분들도 아마 그 책을 많이 읽었겠지요. 그 사람들도 이 소설을 읽고나서부터는 무슨 책을 펴든지 198쪽부터 펼쳐 보았을까요? 그게 궁금해졌답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아마 전 영화를 보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왠지 모르게, 아마, 쓸쓸해질 테니까. 무슨 책이든 198쪽부터 찾아 봐야 했던, 그 남자의 비밀스러운 198쪽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는 건, 잘 상상이 가질 않아서.
이제보니 윤성희 님의 <거기, 당신?> 소설집의 198쪽은 이렇게 시작하네요.
"우리는 4월 1일에 결혼을 했다. 결혼기념일이 생일하고 같으니 죽었다 깨어나도 잊을 리 없을 거라고 여자가 말했다."
목 아픈 게 다 나으면, 4월 1일에 결혼한 사람이나, 결혼기념일이 생일하고 같은 사람이나 찾아봐야지, 그런 생각이나 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