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어디에 있나요? 제 말은 들리나요? 어쩌면 이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편지겠어요.”

책을 몇 번이나 덮었다가 다시 폈다. 한 문장만 더, 한 문장만 더, 그러다 숨이 막히면 다시 책장을 덮었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리고 참을 수 없어서, 현실의 속도는 마음의 속도보다 빠르다던데, 지금 나의 마음의 속도가 현실의 속도를 추월해 나갔기 때문에, 나는 다시금 책장을 펼쳐 다시 끊어진 문장의 꼬리를 찾아냈다.

칼 세이건은 우주에 대해 생각할 때, 등골이 오싹하며 숨이 막힌다고 했지만, 내게 있어서는 이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대할 때, 우주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때의 아름다운 문장이란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 둘은 다르지 않다. 내가 알기로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소설이란, 이를테면 단 한명의 여성, 내가 모르는 타자의 세계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탄생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내가 아름다운 그녀의 세계를 상상하는 그 문장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소설은 아름다운 문장에서 나오므로.

나를 데려가우. 이번에는 진짜 바다를 내게 보여줍소.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떠한 사람으로 되며 사람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잘 압지. 그러니 내게 진짜 바다를 보여줍소. 그럼 나는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당신의 바다로 들어가는 작은 오솔길이 되겠슴둥.

내가 아는한 세상에 이보다 아름다운 사랑의 밀어는 없다. 그것은 말 그대로 너를 통해서만 나는 나의 바다를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었으니. 우리 모두가 도무지 하나의 온전한 이야기가 되지 못하는 현실을 살아가면서 소설을 읽는 이유가 거기에 있는 것이기도 했다. 길송이형의 물음마냥 니 누기야? 라고 물어왔을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우리가 속한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모르는 그 세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므로. 때때로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 농밀한 어둠이 우리를 덮쳐누를 때에도, 내 눈동자, 두 개의 검은 눈동자, 어둠을 보지 못하고, 또 믿지 못하는 두 개의 검은 눈동자는 어둠으로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꿈꾸므로. 아름다운 암코양이 눈동자에서 시간을 읽는 남경의 중국인 소년처럼.

그 아우성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간도 땅에서 살아가는 조선인들은 죽지 않는 한,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경계에 서있었다.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민생단도 되고 혁명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항상 살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건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이므로, 시시때때로 운명이 바뀐다는 뜻이므로.

어쩌면 그들 모두는, 그리고 우리들, 그렇다 우리들은 삼나무 높은 우듬지까지 올라가본 까마귀처럼, 다시는 뜰로 내려 앉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그 고귀한 진실, 그 모든 세계를 얻을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차라리 한 권의 소설을 읽는 현명함을 안다. 언젠가 우리는 모두 우리를 잃을 운명이지만, 우리는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였으므로. 이 역사에는 편입될 수 없는 잊혀지고 가려진 내밀한 삶의 이야기에 끌릴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왜 저 이야기가 아니라 이 이야기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명할 수가 없다. 그것은 사랑에 빠지는 일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니까,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바로 그 세계.

한때는 이 세상 전부를 원했지만, 이젠. 겨우 그 정도. 이제 내가 아는 세계의, 그러니까 거의 전부.

스바시바, 스바시바. 책장을 다 덮고 나서 아무리 외롭고 쓸쓸해지더라도, 우리는 꺄르르꺄르르 헤어져도 좋을 것이다. 그가 모르는 세계에 대하여 도저히 적을 수 없다고 느낄 때, 그는 결국 다시 소설을 쓰게 될 것이므로. 우리가 모르는 세계란 끝이 없으니, 그의 소설의 세계도 끝이 없으리라는 것. 김연수의 바다로 가는 오솔길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그의 바다를 보는 일이 가능하므로. 아, 그것은 참으로 넓고 아름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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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5 1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arSur 2008-10-05 16:46   좋아요 0 | URL
흐흐. 알스님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그도 그렇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에 대해, 혹은 리얼리티에 대해 잠깐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우찬제 교수님의 비평집 가운데 "리얼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만은."이라는 말도 떠올랐답니다.

김연수 님이야 뭐, "음악은 내게 다른 리얼리티를 보여준다. 다른 리얼리티라는 게 소설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작가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시인이 되지 못하면 소설가가 된다고 말하던데, 당치도 않은 소리다. 나는 연주자가 되지 못해 소설가가 됐다."(...) "삶은 잠이고 사랑은 꿈이다. 자는 동안에는 계속 꿈을 꾸고 싶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 분이니까요.

한편 수잔 손택은 이렇게도 적었네요.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너무 압도되었다는 말은, 그것이 대단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비친다는 의미다. 리얼하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는 것이며, 그로 인해 겸연쩍음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리얼하다는 것은 의식이라는 작은 진창을 둘러싸고 있는, 그야말로 마른 땅이다.

그러니까 그건 우리가 저 말의 현실감을 느끼려먼, 먼저 압도될만한 사랑부터 해야된다는 이야기가 되나요?

저처럼 그래도 안생긴다면, 그 세계를 이해하는 건 영영 무리일지도 모르겠네요.
Orz

건 그렇고 제가 전역하고 알스님 흔적을 찾다가, 알라딘까지 흘러온 사연은 알고 계시나요? 이런 이야기도 제법 비현실적이지 않나요? 제가 스토커란 이야긴 아니구요. 여전히 책을 많이도 읽으시네요. ㅎㅎ

2008-10-05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