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도 사랑했었고 너무 사랑하고 있는 이들이, 내가 죽고 또 그들보다 오래 살았던 이들마저 죽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거라면,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나는 죽어서도 계속 기억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내가 살았던 흔적을 세상에 남겨둘 필요가 있을까?)
1978.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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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10-20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스와힐리족은 사람이 죽어도 누군가 기억하는 한 `사사 sasa` 라 하고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으면 비로서 진짜 죽었다는 뜻에서 `자마니 zamani` 라고 한다고 합니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대는 사사다!˝

이별의 아픔앞에 한동안 애도일기에 침잠되어 있었던 적이 있었어요..

boooo 2015-10-27 22:33   좋아요 0 | URL
그렇게 구분하기도 하는군요. 저도 언젠가 애도일기를 다시 읽게 될 거 같아요.
 
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그가 쓴 에디톨리지의 한 대목을 읽어보자.


(인간의 의식과 행동은 도구에 의해 매개된다. 숟가락을 들면 '뜨게' 되어 있다. 젓가락을 손에 쥐면 '집게' 되어 있다.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되어 있고, 나이프를 들면 '자르게' 되어 있다. 평생토록 하루에 세번씩 '뜨고' '집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과 '찌르고' '자르는' 행위를 반복하는 사람의 의식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훨씬 공격적인 이유다.) 김정운, <에디톨로지>


서양인이 동양인에 비해 공격적이란 근거는 무엇이고, 서양인의 공격성이 포크와 나이프에서 온다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그의 글에는 '순전히 가설'인 내용들이 상당하다. 그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


(예상컨대, 일본 사람들 중에는 <그림1>에서 삼각형이 왼쪽 위나 왼쪽 아래로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국인에 비해 훨씬 많을 것이다. 일본 책의 구성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대부분 위에서 아래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게 되어 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그토록 순종적인 거다. 위에서 시키면 아주 착하게 따라 한다. 시키면 칼로 배도 가르고, 옥쇄도 하고, 가미카제도 한다. 책을 읽을 때, 위에서 아래로 끊임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전히 내 가설이다.)


그의 강연이나 글은 재미있지만, 엄밀하지 않다. 근거가 없다. 어떤 이야기들은  근거가 없어도 되지만, 이런 글들은 당연히 논거를 필요로 한다. 논거가 없으면, 그냥 재미로 말하고 듣는 이야기가 될 뿐이다. 그런데 저자의 책에는 그러한 부분이 너무 잦다. 여러 현상들을 이어붙여 설명할 뿐이다. 근거 없이 던지는, 아님 말고 식의 이야기들이다. 한 대목 더 읽어보자.


(지나친 배변 훈련은 아기에게 어떤 식으로든 정신적 상처를 남기게 되어 있다. 프로이트의 개념을 빌리자면, '항문기 고착'이라는 퇴행 현상이다. 일본 문화 전반에 나타나는 청결에 대한 이 집요한 강박은 결국 항문기 고착의 성격적 특징이라고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 정결한 스시와 같은 일본 음식도 결국 항문기 고착의 결과라는 거다. 기막힌 설명 아닌가?


한국의 경우, 이런 항문기 고착의 성격은 별로 볼 수 없다. 장판 문화이기 때문이다. 똥오줌을 아무리 싸도 그냥 걸레로 한 번 슥 닦아내면 된다. 도무지 심각할 이유가 없다. 대신 한국인들은 '구강기 고착'의 성격인 듯하다. 입이 거칠다는 말이다. 목소리도 크고, 담배도 많이 피운다. 욕도 정말 다양하게 잘한다...


한국인들에게는 왜 이런 구강기 고착의 퇴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지난 세월 너무나 가난했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세월이 거의 없었다. 한 번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다.)


풍요로운 세월이 없고, 제대로 먹지 못해 '구강기 고착'이란 퇴행 현상이 나타난다면, 전후 유럽이나 일본이 가난했던 때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지금 그 나라들이 부유해졌기 때문에 구강기 고착 현상이 사라진 거라면,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우리나라는 왜 이런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가? 지금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사는 국가에서는 여전히 '구강기 고착'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가? 


어쩌다보니 이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이런 이유로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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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10-20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읽어봤는데, 보는내내 기분이 안좋더군요.
완전 아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대로된 논증도 없고, 오류투성이에...

 
산에는 꽃이 피네 - 법정 스님 대표 명상집
법정 지음, 류시화 엮음 / 문학의숲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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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줄곧 혼자 살고 있다. 그러니 내가 나를 감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수행이 되겠는가. 홀로 살면서도 나는 아침저녁 예불을 빼놓지 않는다. 하루를 거르면 한 달을 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삶 자체가 흐트러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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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츠바랑! 5
아즈마 키요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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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귀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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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의 여자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5
아베 코보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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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이 책을 읽었을까? 한 여인에게 이 책을 받고 삼분의 일에서 절반 가까이 읽다가 덮어두었다. 읽지 않은 채 한참동안 책을 꽂아 두었던가, 아니면 책을 돌려주고, 읽을 요량으로 책을 샀는지도 모른다. 아마 5년, 어쩌면 7년은 되었을 게다. 소설의 배경이 주는 괴김함은 흥미로웠지만, 작은 이야기들은 빠르게 읽히는 류는 아니었다.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읽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로 덮인 이 마을은 무엇을 의미하지? 모래 속에서 살아가는 여자는? 마을 사람들은? 태도가 바뀌는 남자는? 카프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책 날개에도 "일본의 카프카"라고도 불린다고 적혀있다.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작가로 초현실주의적인 수법으로 인간 소외, 정체성 상실 등 현대 사회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든 실존주의적 작품들을 남겼으며, 일본의 카프카라고도 불린다. 

아베 코보, <모래의 여자> 작가소개 중, 김난주 옮김, 민음사


아주 재미읽게 읽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다.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을지도 모르겠다.


+ 알라딘 리뷰가 엄청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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