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 소녀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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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연작소설집.

나쁜 경험은 아니었으나 썩 만족한 것 같지도 않다.

전에 읽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도 그랬고 그냥 나랑 별로 안 맞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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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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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혹은 정치적 행동의 발현과 작동 매커니즘.

사회적인 삶과 생존을 위한(육체적인) 삶.

권위와 힘.

그리고 인간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양상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서의 이야기.

 

특히 ‘공포’가 정치에 활용되는 방식은 50년대 미국의 ‘매카시즘’, 우리나라 독재 시절의 ‘빨갱이 사냥’이 떠올라 흥미롭다.

 

다만 번역은 못 봐줄 지경.

작품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동명의 영화(90년 作)를 참고해야 했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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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김혜영 지음 / 그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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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돈내산 리뷰. 작품들마다 반짝인다. 작품 편편마다 진심이 우러난다. 소설다운 이런 책, 정말 오랫만이다. 작가가 신인이라, 거대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들에게 닿을 수 없는 게 정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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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스콧 스미스 지음, 남문희 옮김 / 비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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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여행 중인 미국에서 온 두 커플. 호텔 수영장에서 만난 독일 젊은이에게 마야 유적지로 떠난 동생을 찾아 갈 거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지 않아도 호텔과 바닷가에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라 동행을 결정한다. 여기에 영어라곤 한 마디도 못 하는 그리스 젊은이가 의기투합하고, 여섯은 멕시코의 오지로 떠난다.

바야흐로 행복 끝, 고생 시작이다. 그들은 고생스럽고 무시무시한 결말을 향해 뚜벅뚜벅 나아간다.

 

전형적인 슬래셔(Slasher) 영화의 공식이다.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남들이 가지 말라고 말리는 장소에 굳이 발을 들이고 고립된 채 하나씩 죽음을 맞는다. 여섯이니 바디 카운트도 적당하다. 이들 모두 죽거나 운 좋으면 한 명 정도는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대적할 상대는 뭘까.

 

이야기는 인물들을 오가며 진행되는데, 그들의 과거와 내면을 보여주고 관계가 휘청대는 모습에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건, 작가가 호러에만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물들의 풍부한 드라마는 독자의 공감을 촉발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밀림에 함께 고립된 독자는 그들의 숨소리, 흙먼지가 일으키는 매캐한 공기와 땀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인물들의 이야기 옆에서는 위협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독자가 알게 되는 순간, 즉 바야흐로 액션이 시작되면 애써 쌓아올린 모든 게 와르르 무너진다.

 

그들은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까?

시도해 볼만 했고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적어도 세 가지는 되는데, 그들은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마냥 필요도 이유도 없는 일에 진땀을 뺀다. 성냥도 있고 약간의 기름도 있는데, 그들은 왜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걸까.

 

한 김이 훅 빠지니, 모든 게 시들해진다. 긴장과 공포는 한 순간에 사라지고 남은 건 캠핑 나온 것 같은 애들이 뭐가 없다, 뭐가 없다 툴툴거리는 불만뿐이다.

 

그럼에도 읽을 만한 소설이다. 충격적인 이야기는 다분히 세기말적이고 인간의 나약함, 우리는 과연 자연을 대적할 수 있는가, 라는 묵직한 질문이 긴 여운을 남긴다.

 

2008년에 동명의 영화로(the Ruins) 만들어졌다. 시나리오 작업에 작가도 참여했는데, 플롯의 구멍을 의식했는지 많은 부분이 보충되었다. 위험은 더욱 생생해지고 인물들의 갈급함이 더욱 처절해졌다. 행동이 풍부해지고 긴장과 공포에 좀 더 집중된 느낌이랄까. 소설이 동적이라면 영화는 한결 동적이다. 인물들의 드라마는 약해져 이야기가 한결 간결해졌는데, 이는 단점일 수도 장점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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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윈도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47
A. J. 핀 지음, 부선희 옮김 / 비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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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에 의한 트라우마, 별거, 공황발작, 광장공포증. 주인공 ‘애나’가 집에 갇힌 이유다.

애나는 언제나 약에 취해 있고(공황장애 치료제를 무슨 사탕 먹듯이 한다) 거의 모든 장면에서 와인을 마신다. 누가 봐도 믿음직한 주인공은 아니다. 이런 애나가 심심하고 무료해서 이웃들을 엿보는 재미를 들이는데, 집 앞 공원 건너에 새로 이사 온 이웃집 창문을 통해 살인으로 추정할 만한 장면을 목격한다.

작가는 초반에 이런 설정을 촘촘하게 깔고 있는데, 이게 뻔하면서도 믿음직스럽다. 앞으로 진행될 이야기에 초석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거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는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거기다 애나의 취미가 흑백 고전 느와르 영화를 보는 것이니, 애나가 심심찮게 언급하는 영화 제목만 보면 이야기의 전말을 짐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작품을 읽다보면 십수 가지 영화나 소설이 떠오른다. ≪이창(Rear Window)≫, ≪현기증(Vertigo)≫, ≪숙녀, 사라지다(Lady Vanishes)≫, ≪너무 많이 아는 남자(the Man who Knew Too Much)≫ 등의 히치코크 영화부터 ≪디아볼릭(les Diaboliques)≫, ≪바디 더블(Body Double)≫, 소설 ≪이제는 없는 여자(Celle qui n'était plus)≫, 최근의 ≪셧 인(Shut In)≫, 기타 등등.

이 책의 줄거리는 위에 언급한 영화와 소설들의 총합이다.

 

이쯤 되면 지루할 게 분명한데, 술술 잘 읽힌다. 장르 특유의 분위기를 잘 잡고 있고 현대적 배경에 스며든 고딕 소설의 풍미도 적절하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앙상블도 훌륭하고 특히 대화가 맛깔스럽다. 주인공을 오히려 의심스럽게 만들어 중후반에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방식도 쓸 만하고 그런 주인공을 서서히 위기로 몰아넣는 것도 잘 했다. 의외의 결말에 한 마디로 이 장르 특유의 긴장과 서스펜스를 끝까지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 소설에서 이것 만큼 중요한 게 또 있을까. 무엇보다 작가가 무척 능란하다. 특히나 이 장르에 대한 작가의 애정, 인생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영화, 소설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지 상상하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소설을 너무 쉽게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수많은 레퍼런스에서 핵심만 뽑아 짜깁기한 게 제대로 된 창작일까, 하는 의구심이 재밌는 이야기임에도 발목을 잡는다. 패러디니 오마주니 핑계를 댈 수 있지만 독창성, 오리지낼러티의 측면에서 본다면 이런 결함은 이 작품의 숙명처럼 보인다.

 

이 작품을 즐길 수 있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수많은 레퍼런스들 덕이다.

이 작품이 지루했다면 그 이유도 레퍼런스들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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