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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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 이후로 꾸준해 온 작가의 장르문학(환상문학, SF문학)에 대한 애정과 호기심을 볼 수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레퍼런스로 언급되는 작품들이 많아 현재 작가가 어떤 작품들에 영감을 얻고 영향을 받는지 기웃거리게 된다. 작가 자신의 삶과 고민이 틈틈이 엿보이는 것 같아 흥미로웠다.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반복되는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세 남자의 한담을 중심으로 새로운 출발을 기대하며 서로의 앞날에 행운을 빌어주는 <귤락 혹은 귤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생계형 예술가 커플의 희망과 좌절이 번갈아 오는 현실을 보여주며 창작 활동이 주는 환희를 그린 <도트와 프랭크>도 가슴에 오래 남는다. 여기 두 인물의 삶은 소설을 쓰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유령들><맥주의 알>, <맨발 교실>에선 내가 그들이고 그들은 바로 나라는 테마가 반복된다. 진정한 나를 드러내기 위해 지금의 나를 소거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는 <유령들>과 인간들이 청설모로 변하는 <맨발 교실>,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괴로운 현실의 도피처였던 꿈과 각박하고 고단한 현실을 바꾸는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는 환상성이 강한 작품들이다.

<왼손잡이는 꿈을 잘 기억한다>은 지나친 욕망을 경고하며 행복도 불행도 스스로에게서 비롯된다는 주제 의식이 읽힌다. AI라는 전형적인 SF 소재로 인간다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새로운 남편>25년 김유정문학상 수상집에도 실려 있다.

 

가끔 책에 몰입하면 일종의 트랜스(trance)’ 경험을 하곤 하는데, 그 순간을 작가가 자주 언급하고 있어 재미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도 책에 몰입하는 동안 반쯤은 유령처럼 변하기에, (<유령들>_23)

 

행복한 유령 상태. (<귤락 혹은 귤실>_168)

 

-반쯤 꿈꾸는 상태랑 비슷하니까-

뜨개질을 하거나 책을 읽을 때, 니터는 눈을 뜬 채 꿈을 꾸는 것과 비슷하게 몽롱하다고 했다. (<맨발 교실>_263)

 

또한 작가는 <유령들>에서 인물 마지를 소개하며 마지널리아(marginalia)’라는 단어를 빌려오는데(그러면서 마지널리아는 책 여백에 메모하는 행위를 말하는 거라는데, 18), 신기한 단어도 있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이탈로 칼비노의 글이 인용된 게시물이 있어 여기 인용한다.

 

빠르고 널리 퍼진 미디어가 득세하고 모든 소통을 하나의 획일화된 평면에 내려 눌러 납작하게 만드는 위험을 감행하는 시대에서의 문학의 기능은 각기 다른 개체들이 소통하는 데에 있다.

 

단지 다른 개체들과 소통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서로와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소통하는 것이다.

 

이 소통은, 이들 사이의 다른 점을 서로 부디껴 마모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고, 이는 문자 언어의 진정한 본성을 따르는 것이다. -이탈로 갈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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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길 - 최명익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5
최명익 지음, 신형기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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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이 아닌, 어쩔 수 없이 북쪽에 남게 된, 어떻게 보면 오해받아 억울한 작가다. 이런 작가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늦게나마 그의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던 건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다.

 

이 책엔 작가가 남한에서 활동한 주요 시기인 30년대에 발표된 단편들로 주로 구성되었다.

일제강점기의 우울함과 무력감이 개인이 짊어진 가차 없고 예측할 수 없는 필연, 운명 등으로 그려진다. 동시에 당대인들의 소외감과 신구 세대의 대립 같은 것이 잘 표현되었다. 전체적으로 극적인 설정에 어둡고 외롭고 무기력한 이야기들 8편이 실려 있다.

 

작가의 모더니즘 3부작으로 알려진 <폐어인>, <비 오는 길>, <무성격자>가 가장 눈에 들어온다. <역설>을 읽으면서는 백 년 전 인물들의 모습에서 현대인들이 겹쳐 보였다. 사람들 사는 모습, 욕망, 오욕칠정에 시달리는 삶이 시간을 관통한다. 그 외에도 북한에서 발표한 작품으로 알려진, 체제순응적이고 프로파간다 문학 성격이 강한 <맥령> 등을 읽을 수 있다.

 

백 여 년 동안 한국어가 많이 변했음을 목격한다. 고어, 사어, 혹은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 읽는 데엔 큰 지장이 없으나 권미에 편집자가 일러두기를 두어 독서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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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김혜영 지음 / 그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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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애도에 관한 이야기인 <박수기정 노을><대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빈틈없이 꽉 찬 작품인 <자염>은 잊혀가는 자염(煮鹽)’을 소재로 전통과 역사, 부자 간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이 책의 백미이다. 서늘한 결말의 절박한 이야기인 <공가>도 좋다.

의료 사고 이후의 고통과 비극을 그린 <Baby in Car>, 지나친 반려견 사랑으로 붕괴된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너의 찰스>는 작가의 당대 시의적인 시선을 볼 수 있었다. 표제작인 <아보카도><지연>은 반전이 있는 TV단막극 같은 작품으로 박경리박완서의 단편을 떠올리게 한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단지 거대 출판사가 아니라서, 주류에 들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얼마나 묻혀 있는 걸까 생각하면 슬프다. ‘김미월의 작품이었던가. ‘읽히지 않은 소설을 소재로 한 단편이 생각난다.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 더 많은 작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자본의 횡포처럼 보인다.

 

******

 

25년 마지막 읽은 책이다.

작년 만큼 많이 읽지는 못 했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시월 경부터 독태기가 찾아왔다는 사실. 하지만 그것도 중요한 건 아니고 잘 넘겼다는 거. 딱히 다른 걸 시도한 건 아니었고, 그냥 읽으며 기다렸던 것 같다. 따로 재미를 붙인 일도 없고 새롭게 도전할 일도 없으니 그럴 수밖에. 자리를 지켰다기보다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게 맞는 것 같은데, 참으로 무미한 삶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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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해석전문가 - 교유서가 소설
부희령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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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삶과 경험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이야기 여섯 편.

전작보다 분위기가 다소 밝아졌달까, 한 가닥 빛줄기가 보인달까. 막연하지만 겁을 주는 시선에선 살짝 비껴나 있다. 전작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오정희의 단편 <중국인거리>를 생각나게 하는 <콘도르는 날아가고>, 돌고 돌아 결국 로 돌아오는 인물의 성장담인 <구름해석전문가>, 작가의 구도를 위한 작품처럼 보이는, 종교적이기까지 한 <완전한 집>, 속죄와 희생양 테마로 약간 초현실적인 분위기의 <내 가슴은 돌처럼 차갑고 단단하다> 등이 인상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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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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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독서는 저마다 무언가에 대한 저항 행위다. 그리고 그 무언가란, 다름 아닌 우리가 처한 온갖 우연한 상황이다.

-중략-

제대로 된 독서는 우리 자신까지도 포함하여 이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보다도 죽음에 맞서 책을 읽는다. (104)

 

프랑스에서는 읽다를 속된 말로 꼼짝없이 매이다라고 표현한다.

두꺼운 책은 흔히들 보도블록에 빗대기도 한다.

이러한 구속에서 벗어나면, 보도블록도 구름이 될 것이다. (163)

 

요즘 대학교수들은 작품의 윤곽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싶으면 그 작품을 철저하게 난도질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온갖 해답이 걸려 있는 연구 문제라도 풀듯이 말이다. 그로 인하여 학생들이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영원히 찾지 못하게 되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 플래너리 오코너, 존재의 습관에서. (188)

 

독서에 관한 에세이.

책 읽기에 대한 책에서 독자들이 예상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내용인데, 상당히 재미있다. 독서 습관이 한 인간에게, 특히 아동기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 습관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 수 있는지 풀어낸다. 책을 어떻게 읽는지(혹은 읽어야 하는지, 혹은 읽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독특하다.

작가가 전직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교육 현장에 대한 글이 많다. 이 책을 읽다 보니, 참고서 안쪽에 소설을 몰래 숨겨 놓고 읽어야 했던, 학창 시절의 야자 시간이 생각난다. 그 시간들을 보상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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