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소녀들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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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왜 붙어 다니는지 전혀 알다가도 모를 두 여자아이가 시골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낸 뒤, 수녀들이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들어갔다가 사고 쳐서 쫓겨나고 도시에서 직업도 얻고 사랑에도 눈을 뜨고 이런저런 실패를 겪으며 성장하는 이야기.

 

말은 성장이라고 했는데, 정확히 아이들이 (나이 먹는 거 빼고) 어떤 면에서 성장을 이뤘는지 공감이 별로 안 된다. 핑계를 굳이 찾자면, 이 책은 캐슬린과 브리짓을 주인공으로 한 3부작의 첫 권이다. 작가가 노렸던 성장의 진정한 의미는 세 권을 모두 읽어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책만 보자면 뭔가 심심하다.

 

발표 당시, 자국인 아일랜드 내에서는 상당한 반향을 부른 작품이라고 한다. 불온하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하는데, 십대 여자아이와 성인 남성의 사랑을 묘사한 부분 때문일까. 이 작품보다 5년 앞서(1955) ‘나보코프롤리타(Lolita)를 펴냈으니 이 소설이 파격의 첨단을 걷는 작품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60년 당시 아일랜드 독자들은 모두 유교보이’, ‘유교걸들 뿐이었나. 그 정도는 아닌데.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설정들이 많다. 가장 궁금했던 게 두 여자아이가 겉으로 보면 절친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붙어다니는 걸까 내내 궁금했다. 딱 봐도 캐슬린은 브리짓의 먹잇감에 불과한데. 그리고 브리짓 부모가 얼마나 돈이 많길래 캐슬린까지 거두고 있나, 왜 저러지, 그럴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들고. 기타 등등.

 

묘사나 설명이 꼼꼼하지 못한 것도 다소 거슬린다. 예를 들어, 이야기 초반에 라일락을 꺾어서 선생님을 줘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어느새 캐슬린 손에 꺾은 라일락이 들려있고. 이런 생략이 가능하기는 한데, 너무 빈번하거나 독자들이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 이미지들을 그리는 걸 방해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작가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초심자의 실수인 걸까.

 

여하튼 이 작품 뒤를 잇는 나머지 두 작품이 번역, 소개된다면 읽을 의향은 있겠으나, 이 작품 자체가 만족스럽다거나, 이런 작가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거나, 그런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다.

솔까말’, 이 작품 자체로는 너무 평범하다. 그리고 익숙하다. 뭐가 됐든 이 작품만의 개성이 없다는 사실은 그 어떤 핑계에도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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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깨달을 뻔 - 인지심리학자가 본 에고의 진실게임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정신세계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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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저자의 주장을 총괄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당신이 갖고 있는 이미지 당신 자신은 아니라는 사실.(177)

 

말인 즉, 너는 네가 생각하는 너도 아니고 남들이 생각하는 너도 아니라는 것.

저자의 모든 주장은 여기서 출발한다. ‘나 자신은 우리가 여태껏 믿어왔던 방식으로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그건 그저 습관이나 관습에 의한, 나에 대한 생각을 나로 착각하는 것뿐이다.

스스로 믿는 자아상과 동일시할수록 사는 게 버거워질 뿐이며, 행복과 평화를 추구하는 길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바로 그것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 그 자체(29)라고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아닌 다른 뭔가가 되기를 바라는 바로 그 순간에 분열이 시작(246)되는데, 저자는 이를 긴장이라고 말한다.

에고를 파헤치겠다는 바로 그 생각을 놓으라. 거기에는 파헤쳐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나 자신을 찾겠다든지, 나를 더욱 단련시키겠다든지, 아니면 좀 더 영적인 사람이 되겠다든지 하는 따위의 모든 여정을 포기하라(31)”고 저자는 주문한다.

 

저자의 주장을 좇다보면, 세상은 텅 비어있는 것 같다. 나는 내가 아니고 너도 네가 아니니 아무것도 없다. 세상을 채우고 있는 실체란 그저 뇌가 감각하는 것을 근거로 만들어진 망상이다. 뇌는 무엇을 감각하는가. 뇌가 경험하는 바는 언제나 실재는 아니다. 저자도 지적하듯이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를 생각나게 한다.

 

이 혼란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저자는 온전한 받아들임(258)을 권한다.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껴안으라고 주문한다.

저자는 부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든 긍정적인 상황을 간직하고 싶어하든 간에, 에고적 생각으로서의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261)”고 말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기(無爲)라는 대안을 제시한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그리 길지 않은 책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이 책은 뇌 과학과 인지심리학은 물론이고 다소 종교적인 일면도 갖는데다 어떤 부분에선 굉장히 영성을 돕는 책의 특징도 지닌다. 이 책을 어떤 범주에서 소개해야 할까. 온라인 서점에선 과학도서로 분류하고 있는데, 글쎄.

난 이 책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도서의 질적인 가치와 효용보다 각자의 이해도에 더 많이 의존할 것이다. 나도 물론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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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출근, 산책 : 어두움과 비 오늘의 젊은 작가 8
김엄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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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인물인 E는 직장인이다. 쉬는 날엔 집 근처 산책도 나가고 가끔 등산도 하는 것 같고 집안일도 적당히 신경 쓴다. 직장에 나가면 대놓고 졸고 점심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다. 퇴근 후엔 동료들과 술잔도 기울이고 안주 고르는 데 가격이나 가성비 따위 크게 따지지 않는 거 보면 경제적으로도 큰 압박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 내내 비가 내리고 집안의 곰팡이가 신경 쓰이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곰팡이가 귀찮으면 다른 집으로 가면 되는데, 이런 설정은 일종의 장치로 보인다. 주인공을 점점 잠식하고 숨 막히게 만드는 어떤 것의 은유.

이 사람은 뭐가 문제인 걸까.

 

모든 게 문제인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문제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에 대해 피상적인 정보 외엔 아무것도 알려진 게 없으니 이 사람에 대해 대강이라도 짐작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런데도 자꾸 힘들다, 힘들다, 한다. 일단 이 사람은 권태에 함몰되어 있는 건 맞다. 힘들다면서 뭔가 변화를 위해서나 다른 목적으로 위해서나 어떤 형태의 액션이 없는 걸 보면 천성적으로 나태한 사람 같기도 하다.

이 사람은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작가의 의도가 짐작이 간다. 희망도 없고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삶. 숨길 수도, 견딜 수도, 빠져나갈 수도 없는 일상의 굴레.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

 

투덜거리기만 하는 인물을 백오십 쪽 가까이 지켜보는 건 독자로서 고역이다. 연민도 안 생기고 응원하고픈 마음도 없다. 기술적으로도 서사 어쩌고, 소설 구조 어쩌고 얘기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색다른 관점을 작가가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세밀한 관찰로 디테일을 뽑아내는 것도 아니다. 뻔한 위로를 건네는 것도 아니다. 작가는 시종일관 그 세계에 거리를 두면서 피상만 읊어댄다. 인물의 내면에 단 한 순간도 가닿지 않는다. 결국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남는다.

 

작가가 이런 ()’의 결말을 의미했더라도 이 소설은 정말 공허하다. 그리고 무용하다. 이런 작품을 왜 읽어야 하나?

엔딩을 보라. 결국 우리의 주인공은 회피한다. 등을 돌리고 숨는다. 그게 자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꼬리를 감추고 내빼는 꼴이다. 비겁해 보인다.

 

우연찮게도 이 책 바로 전에 읽은 소설이 마르그리트 뒤라스동네 공원이었다. 분량도 비슷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이란 이슈도 비슷하다. 그럼에도 뒤라스의 소설엔 뭔가 있었다. 귀 기울일 뭔가가. 두 소설을 비교하면 삶이 어때야 하는지 말 하려는 건 가당찮지만, 소설이 어때야 하는지 말 하는 건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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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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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 분이 무슨 일을 하시든,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시간이 나중에는 그쪽 분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될 거예요. 그쪽 분은 황무지라고 말씀하시지만, 나중에 그쪽 분이 기억하실 지금이라는 시간은 눈부시도록 정밀하게 채워질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아직 시작되기 전인 거 같아도, 이미 시작되어 있거든요.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거 같아도, 이미 뭔가 하고 있거든요. 답을 찾으러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를 돌아보니까, , 답이 내 뒤에 있는 거예요. (41)

 

사는 게 힘들다는 거, 저도 알거든요. 그만큼 즐겁다는 것도 알고요. (93)

 

저는 스무 살인데요. 제가 세상에서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일이 이렇게 되도록 말예요?

그런 거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앞으로 세상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세요. (110)

 

 

 

 

백 여 쪽이 겨우 넘는 짧은 이 소설은 아이와 함께 산책을 나온 스무 살의 여자와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보잘 것 없는 물건을 파는 중년의 남자가 나누는 대화로 일관된다. 여자는 어느 부잣집에서 입주 도우미로 일하고 있고 남자는 집도 절도 없는, 매 끼니와 매일의 잠자리를 고민해야 하는 행상이다.

딱히 진행되는 이야기도 없고 여러 장소를 옮겨 다니지도 않고 긴 시간대를 아우르는 것도 아니다. 두 사람은 그저 앉아서 오후부터 해질녘까지 대화를 나눈다. 한 편의 연극 같달까.

두 사람의 대화는 끊임없이 흐른다. 다소 두서없기도, 자기 얘기만 하기도 하나. 논쟁은 없다. 토론에 가깝다. 서로를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반론하는가 하면 양보하고 타협한다. 정체된 이야기에서 뭔가 약동한다.

남자는 제법 삶에 만족하는 것 같다. 큰 욕심도 없고 하루를 그저 넘기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반면 여자는 목표가 분명한 편이다. 여자에게 결혼은 구원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는 것이 당장의 목표다. 토요일마다 가는 댄스홀은 기회의 장소다.

 

영화 유스(Youth, 2015)에서 한 인물은 삶에 대한 자세를 공포아니면 열정이라고 말한다.

물건을 팔기 위해 떠도는 걸 여행이라고 부르는 남자는 두려운 걸까.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다른 시도를 하지 않는 걸 공포때문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딘가 있을 더 나은 삶을 원하고 추구하는 여자에겐 열정이 있는 걸까.

 

세상에 !’하고 등장함과 동시에 우리에게 부여되는 이라는 것은 축복일까, 저주일까. 그것을 저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생일을 축하하는 걸 대부분의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우리의 권리일까, 아니면 아등바등 애를 써야 하는 과업일까. ‘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고들 하는 걸 보면 많은 사람들이 살아 있는 걸 더 좋아한다. 스스로 제 목숨을 포기하려는 사람을 보면 적극적으로 뜯어말린다. 과거, ‘자살은 사회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나쁘고 흉악한 이었다. 태어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을지언정, 계속 살아간다는 건 우리에게 일종의 의무인 셈인 거다.

 

그렇다면 이왕 사는 거,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사는 게 최선일 텐데,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여자와 남자가 주거니받거니 하는 말들은 결국 독자인 를 향한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데 문제는 나도 잘 모르겠는 거다.

두 사람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작가는 잘 알고 있을까.

아닌 것 같다. 결론도 없이 소설을 마친 걸 보면.

우리 다 같이 생각해 봅시다. 답은 없어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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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1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명우 옮김 / 해문출판사 / 198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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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에이미 레서런루이즈 레이드너부인의 보호와 치료를 요청받는다. 직업이 간호사라 치료까지는 이해해도 보호라는 말은 충분히 의아하다. 요청을 받아들인 레서런 간호사는 레이드너 부인을 본 첫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아름답고 지적인 레이드너 부인은 망상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

그렇게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프레드릭 레이드너박사가 이끄는 고고학 발굴단에 합류하게 된 레서런 간호사는 발굴단 사람들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을 눈치 채게 되고, 레이드너 부인의 첫 결혼에서 비롯된 그녀의 불행과 불안감의 정체를 알게 된다. 결국 밀실 상태의 숙소에서 레이드너 부인이 살해된 채 발견되고, 두 번째 살인이 이어진다.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던 작가 자신의 경험과 지식이 잘 녹아 있다. 두 번째 남편이었던 맥스 말로원의 영향으로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의 유적 발굴 현장에 적극적이고 활발하게 참여했던 작가는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을 무대로 하거나 고대 유적 발굴단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많이 써냈다. 죽음과의 약속(Appointment With Death), 그들은 바그다드에 왔다(They Came to Baghdad), 끝으로 죽음이 온다(Death Comes as the End)등의 추리소설은 물론이고 Come, Tell Me How You Live란 제목으로 유적 답사기 형식의 기행문을 애거서 크리스티 맬로원이라는 이름으로 출판한다(46).

 

이 작품은 그 시기의 경험이 녹아 있는 추리소설들 중에 가장 유명하고 성공적인 작품은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해외 평론가나 미스터리 연구가들에 의하면 이 작품은 큰 주목을 끌지 못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다소 평가절하된 면이 없지 않다.

 

인기 캐릭터 에르큘 포와로가 등장하고 밀실이라는 범행 현장이 호기심을 사로잡는다. 다채로운 성격의 용의자들이 등장하고 작가는 그들에게 설득력 있는 범죄 동기를 주는 데 성공한다. 범죄 방식은 평범하지만 진실을 숨기는 방식은 교묘하다. 첫 번째 범죄가 나오기까지 진행되는 드라마는 (크리스티의 다른 소설들이 그렇듯) 사건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포석을 깔고 밑밥을 뿌리는 과정이므로 꼭 필요하다. 그렇다고 의무적으로 끼워 넣은 장면들은 아니다. 분위기를 조성하고 인물들의 감정을 드러내어 갈등이 고조되는 과정을 절묘하게 연출한다.

특히 기억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얼마나 놀라운지. 작가가 인지심리학에 훤했을지는 차치하고 포와로의 입을 통해 전달되는 기억의 본질은 타인에 대한 큰 관심과 꾸준하고 세밀한 관찰을 통해 얻은 지혜로 보인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들엔 작가 만의 무엇이 있다. 그걸 크리스티다움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작품엔 그런 것들이 거의 빠짐없이 들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의 흠결을 굳이 찾자면 바로 그런 것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너무나 크리스티다워서 오히려 그게 클리셰가 된달까.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주변 인물들의 시선을 활용하여 레이드너 부인을 표현하는 방식과 그 캐릭터 자체는 후에 나온 백주의 악마(Evil under the Sun)를 생각나게 한다. 범인의 동기만 본다면 거의 말년의 작품 복수의 여신(Nemesis)과 거의 똑같다. 동기만 보자면, 저게 현실로 가능해? 라고 의심을 품지만 감정적, 정서적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간다. 이 작품의 결말에 깔리는 여운, 방점을 찍는 아련한 감정은 절대 이루지 못할 사랑, 함께 있어도 외롭고 쓸쓸한 사랑의 슬픔을 잘 대변한다. ‘모두가 다른 길을 가고 있다(259쪽)는 레서런 간호사의 생각처럼 타인은 영원한 타인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서, 한 창작자의 개성과 특질을 드러내는 게 어떤 경우엔 장점이 되고 어떤 경우엔 단점이 되는가. 그 차이점을 고민하게 되는데 떠오르는 생각들이 참 재미있다.

개성과 특질, 그것뿐이면 작품은 헐벗은 허수아비 같다. 뼈대만 보일 뿐이니 허술한 구성에 단조로운 이야기, 플롯은 기계적이다. 그런 낭패를 피하려면 그 외의 다른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이 작품이 다소 부족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나중에 라디오 드라마, TV 드라마, 그래픽 노블 등으로 재탄생한다.

 

이 작품이 출판된 36년엔 ABC 살인사건(ABC Murders), 테이블 위의 카드(Cards on the Table)등이 발표되기도 했다. 30~40년대는 크리스티가 가장 왕성하게 창작하고 출판한 시기였다. 작가의 대표작이 그 시기에만 포진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중요한 작품들이 많이 발표됐다는 말은 맞는 말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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