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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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여든세 번째 책.

 

★★★☆

 

❝어떤 죄악이 매우 끔찍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또한 그 뿌리를, 그것을 가능케 했던 맥락들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172쪽)❞

 

저자와 그의 아들, ‘카림’과의 대화를 통해 오늘날 지구촌의 기아(飢餓) 현실을 보여준다. 사회학자이면서 UN의 식량 조사관 자격의 인권 활동가로서, 생애에 걸쳐 현 인류의 기아와 빈곤 문제를 고찰하고 알린 ‘장 지글러’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기아’를 화두로 정치, 경제, 인류 등으로 관심을 확장하고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학술적인 태도를 견지하기보다는 독자들의 감정에 호소한다. 문답이라는 구성으로 호기심을 자극하고 질문하는 아들의 눈높이에 맞춘 평이한 문장으로 쉽게 읽히지만 사유는 깊고 보여주는 현실은 혹독하다. 책의 주요 목적은 기아 현실을 알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문제의식을 절감해 해결에 동참하도록 설득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기아가 단순히 먹을 것이 부족함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연적이고(기후 위기, 자연 재해 등) 경제적, 사회구조적인(부패한 정치, 무너진 경제, 사회 불균형과 심각한 양극화, 복지 제도의 맹점, 내전이나 전쟁, 등) 다양한 요인들이 많은 방식으로 기아 인구 양산에 기여한다. 원인으로서 이들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히고설킨 모양새로 굶주림을 심화시킨다. 권력자(정치인)의 무능, 자금에 허덕이는 구호 기구와 그들의 비리 같은 것들 역시 기아 상황을 악화시키는 원인이다. 국제 곡물 시장에서 횡행하는 덤핑 전략과 사재기 또한 문제 해결에 좋은 조건은 아니다.

기아는 또한 인류의 비인간성, 추악한 면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음식은 무기가 되고 협박과 테러의 도구가 되며 악덕의 빌미가 된다.

 

무분별한 개발과 산업화로 인한 삼림 파괴와 생태계의 균형 와해에 따르는 자연 재해, 그에 동반되는 기아는 어느 정도 자업자득의 측면이 있다. 자연(自然)은 이름 그대로 ‘저절로 그러하다’. 그것은 받은 것을 그대로 되돌려줄 뿐이다. 인간이 추구하는 편리함(利器)은 말 그대로 날카로운 무기(利器)가 되어 인간을 위협한다.

 

한편, 기아는 사막이나 가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네온이 눈부신 대도시에도 엄연히 존재한다. 농촌의 몰락과 대도시의 출현은 도시의 슬럼화를 야기한다. 일자리도 없고 몸 눕힐 공간도 없으며 사회 복지가 닿지 않는 사각(死角)의 그늘에 가려진 도시 빈민 역시 치명적인 배고픔에 시달린다.

 

‘기아’라는 현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원인들 저변에는 ‘자본’이 있다. 저자는 기아 발생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서 ‘자본의 횡포(글로벌 금융 자본의 과두지배)’를 꼬집는다. 다국적 기업의 제국주의적 운영이나 선진국들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Washington Consensus) 등은 약소국들의 정치적, 경제적 주도권을 빼앗고 상대를 새로운 형태의 식민지로 전락, 사회 불균형과 기아를 초래한다고 주장한다.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기아는 자국 내 구조적인 원인(내전 같은 국가 혼란, 정치적 부패)도 존재하지만, 더 크게는 신식민주의의 폐해라고 보는 시선이 문제 해결을 위한 근원적인 접근으로 보인다. 이는 권력의 ‘음모’에 비견할 만하다.

 

기아는 단순히 굶주림과 영양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마빈 해리스’가 저서 ≪음식 문화의 수수께끼≫에서 지적했던 대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옥수수의 상당한 양이 인간을 먹이는 대신 육류 생산에 쓰인다. 여기서 비롯된 문제 의식은 육류 소비와 동물 복지, 채식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국가의 기아와 경제적 독립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살바도르 아옌데’나 ‘토마 상카라’ 같은 지도자들이 살해당한 이유는 오늘날 환경, 기후 이슈가 좌파들의 정책, 이데올로기처럼 되어버린 현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두 명의 정치적 지도자들에게 닥친 비극에 작용한 정치와 경제의 유착, 자본과 시장의 논리라는 당의(糖衣)를 입힌 추악한 이기심,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권력욕 등이 오늘날 환경 운동가들에게 ‘좌파’라는 허울을 씌우고 그들을 공격한다.

 

이쯤에서 시선을 우리에게로 돌릴 필요가 있다.

우리 역시 일제강점기 시절의 곡물 수탈, 한국 전쟁 이후 혼란 속에서 극심한 빈곤과 굶주림을 겪었다. ‘보릿고개’란 말도 ≪전설의 고향≫ 같은 TV시리즈의 단골 소재였지만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현재의 80세 이상의 노인 세대는 그것에 대해 생생히 증언하곤 한다.

브라질은 ‘주요 식량 수출국인 동시에 기아 국가’라는 오명을 벗었다(1999년에 세상에 나온 책이라 내용에 현재(2026년)와의 간극이 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절대적인 기아를 경험하고 걱정해야 하는 국민은 전체 인구의 3퍼센트 미만.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난 게 2014년. 아이들의 무상 급식을 두고 설왕설래했던 어떤 정치인도 있었다. 우리는 안심해도 될까.

 

기아의 의미를 단순히 굶는 것을 떠나 영양의 불균형 문제까지 확장한다면, 냉동식품과 반조리 식품, 저질의 인스턴트식품 등으로 거의 매 끼니를 때우는 독거노인들과 1인 가구, 미래의 불안을 안고 사는 비정규직종의 사람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굶주림을 모면했다는 걸로 우리 사회는 만족할 수 있을까. 고립과 소외, 양극화의 문제는 그냥 모르는 척하면 되는 걸까.

오늘날의 기아는 굶주림과 빈곤의 문제를 벗어난다. 그것이 결국 ‘영양’과 ‘건강’의 문제라면, 서구화된 식습관, 과잉된 칼로리, 저질의 외식이나 건강하지 못한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이 초래하는 영양 불균형까지도 포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질적 기아). 우리 정부는 이런 문제를 알리고 호소하고 해답을 구하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는가. ‘섭식(攝食)’을 떠나 ‘섭생(攝生)’을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기아에 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13장)’를 통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거두고 서로를 향해 안테나를 세우길 촉구한다. 우리가 머나먼 타국의 기아를 대하는 것과 가까이 타인의 불행을 대하는 정서적 방식은 닮아 있다. 저자는 ‘맬서스 이론’이 부자와 권력자들의 논리로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를 정당화하고 강화한다고 비난했지만, 심리학적으로 일말의 진실은 존재한다. 양심의 가책을 없애고 불합리한 비극에 대한 분노와 아이러니를 상쇄하기 위해 끔찍한 현실에 대한 구실, 당위를 만듦으로써 일종의 심리적 쿠션이 만들어진다. 응급 밴드로 가릴 수는 있어도 상처가 아물려면 적절하고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기아’를 논하면서 시작된 책이지만, 저자가 최종적으로, 그리고 거듭 방점을 두는 건, 바로 ‘인류애’다. 그것은 공감하는 능력이고 동지애이며, 인간의 측은지심에 기댄다. ‘MBTI’에서 쉽게 소비되며 그 무게가 많이 훼손되고 희석되곤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아파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의 가치는 성경책 안에 머물러선 안 된다.

구호 단체, 기구들의 TV 캠페인 영상을 두고 ‘불행 포르노’라는 비난이 빈번하다. 과장된 건 맞다.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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